[인터뷰] ‘판도라’ 정진영이 밝힌 #원전의 위험 #입소문 #시국

입력 2017-01-05 16: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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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진영이 영화 ‘판도라’가 흥행에 성공한 공을 관객에게 돌렸다.

정진영은 지난달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판도라’ 인터뷰에서 “개봉 후 의미심장한 관객 추세를 봤다. 호불호는 엇갈리겠지만 좋게 봐준 분들이 많더라. 우리 영화가 입소문으로 흥행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굉장히 좋다”며 크게 기뻐했다.

‘판도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한반도를 위협하는 원전(원자력발전소) 사고까지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국내 최초로 원전 소재를 다룬 초대형 재난 블록버스터로 4일까지 누적관객수 447만 관객을 동원해 손익분기점 440만명을 넘어섰다.

정진영과 ‘판도라’의 첫 만남은 2014년 6월의 어느날 밤. 당시 ‘판도라’는 주요 배역도 투자사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진영은 시나리오를 읽고 다음날 이른 아침 제작사에 “무조건 한다”고 출연 의사를 전했다. ‘판도라’에 가장 먼저 캐스팅된 정진영은 작품의 첫인상을 떠올리며 “마치 운명 같았다. 원전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다고 하니 짜릿하더라”면서 “소재나 장르가 이전에 비해 다양해지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원전을 다운 영화는 한 번도 본 적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이야기해왔지만 사회적 의제가 되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정진영은 원자핵 물리학자를 장래희망으로 꿈꾸던 아들을 계기로 원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아들의 초등학교 시절 꿈이 원자핵 물리학자였다. 이를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 있는데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에서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홍보물을 찍자’고 연락 왔다. 이전에는 나도 원전에 대해 ‘안전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받은 자료를 들여다보니 결코 안전하다고 판단할 수 없었다. 그때의 기억이 오래 남아 있었다”고 고백했다.


출연은 선뜻 결정했지만 ‘판도라’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4년의 기획 과정을 걸친 ‘판도라’는 부산에서 촬영 중 찬반에 밀려 강원도 고성으로 촬영지를 옮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외압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정진영은 “알기로는 카르텔이 국제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원전 영화는 할리우드도 쉽게 만들지 못한다고 하더라. 그만큼 ‘판도라’는 쉽지 않은 영화였다”면서 “시나리오를 영화로 구현하려면 많은 예산이 필요했다. 이야기 자체가 작은 규모로 만들 수 없는 영화였다. 투자자 문제로 우려했는데 고맙게도 NEW가 나서줬다. 배우로서는 문제없었지만 제작진은 섭외와 촬영 등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고군분투 끝에 완성된 ‘판도라’는 기막힌 시기에 대중을 만났다. 당초 박정우 감독은 ‘연가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보고 ‘판도라’를 기획했다. 원전에 대해 다룬 영화지만 예상과 달리 ‘판도라’는 두 개의 곁가지로 화제가 됐다. 원전 사고의 시작인 ‘지진’과 현 시국과 맞닿은 ‘무능한 정부’가 그것. 특히 지진은 ‘판도라’ 기획 당시 한반도에서 낯선 소재였지만 2016년 9월 12일 처음 발생한 ‘경주 지진’은 2017년 1월 5일 오전 7시까지 총 558회 발생했다. ‘판도라’ 제작발표회에서 제작진도 배우도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진영은 “시국에 관련해서는 전혀 몰랐다. 지진은 시간적 거리를 두고 가상으로 만든 이야기인데 현실로 다가오니까 우리도 당혹스러웠다. 관객들의 관심이 높아진 건 호재일 수 잇으나 그만큼 책임감이 무거워졌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원전의 이야기가 중요한 영화인데 관객들이 부제인 시국에 대입해서 보는 것 같더라. ‘시국에 얹혀서 가는 영화가 아닌가’ 의심을 받기도 했다. 박정우 감독이 그런 시선이 싫고 불편해서 대사를 빼기도 했다더라”고 덧붙였다.


‘판도라’는 무섭도록 현재의 대한민국과 닮았다. 관객들 사이에서 ‘영화 속 초유의 재난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올 정도. 정진영은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부디 두려워하지 말고 같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우리 대부분은 원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진도 안 나는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하지만 원전은 한번 터지면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이다. 지구상에 안전하게 둘 시설도 없으며 방사능이 없어지기까지 20만년이 걸린다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겁먹기보다 같이 의논했으면 좋겠다. ‘판도라’를 통해 원전이 사회의 의제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있겠나. 밥 달라는 게 아니라 이제 불을 때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정진영은 “각 분야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입소문으로 힘을 받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빅히트는 우리가 내는 게 아니라 관객에 의한 것”이라면서 “스코어와 무관하게 ‘판도라’가 가진 울림은 클 것”이라고 남겼다. ‘판도라’ 만큼이나 뜨거운 울림을 전하는 말이었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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