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만 돈버는 이상한 한국영화

입력 2017-02-15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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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대 영화만 히트…개봉 예정 10여편도 대작
30억 이하 19편 수익률 -41%…시장구조 불균형

한국영화의 대작 편중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큰 돈을 투자한 만큼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대작이 급증하면서 상대적으로 50억원 안팎의 중급영화 제작은 크게 줄어들어 다양성의 기반이 더욱 황폐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최근 순제작비 규모 100억원을 넘어서는 영화가 크게 늘고 있다. 올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한국영화 ‘더 킹’, ‘공조’, ‘조작된 도시’는 물론 상대적 비수기로 통하는 2월 개봉작도 100억원이 넘는다.

현재 촬영 중이거나 개봉을 앞둔 작품 가운데서도 순제작비가 100억원 이상인 작품은 10여편에 이른다. ‘강철비’, ‘남한산성’, ‘공작’, ‘대립군’, ‘택시운전사’, ‘군함도’ 등 적게는 100억에서 많게는 220억원의 순제작비가 투입되는 작품들이다. 1부와 2부를 동시에 촬영 중인 ‘신과 함께’는 무려 300억원에 이른다. 이 같은 경향의 배경은 ‘투자 대비 고수익률’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2016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 상업영화 82편 가운데 제작비 80억원 이상 작품의 평균 수익률은 53.9%에 달한다. 전체 평균 8.8%에 견줘 월등히 높다. 반면 50억원 이상∼80억원 미만의 중급영화는 1.1%에 불과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톱10 가운데 100억원 미만은 ‘검사외전’, ‘럭키’ 단 두 편 뿐이다.

제작비가 낮을수록 평균 수익률의 적자폭은 더욱 커진다. 지난해 제작비 10억원 미만 영화는 30편. 단위별 분포(표 참조)로는 제작편수가 가장 많지만, 평균 수익률은 -45.6%로 최저치다. 10억원 이상∼30억원 미만 영화 19편의 평균 수익률 역시 -41.2%다.

돈을 많이 들일수록 더 많은 돈을 벌 것이라는 기대가 큰 제작 환경이 고착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영화계에서는 이런 현상이 2012년부터 본격화했다고 보고 있다.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나란히 12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한국영화의 연간 관객수가 처음으로 1억명을 넘어선 해이다. 한국영화 관객이 크게 늘어나면서 그만큼 수익 ‘파이’의 크기가 커졌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는 “이처럼 한국영화가 원금 회수 측면에서 안정적 투자처로 주목받으면서 교직원공제회, 우정사업본부 등 기관투자자나 운용자산이 있는 공적 기구의 직접 투자도 확산됐다”고 밝혔다.

한쪽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낸다. 다양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비교적 새로운 시도를 해볼 만한 제작비 30억원 이상∼80억원 미만의 중급영화는 2015년 34편에서 지난해 23편으로 급감했다. 올해는 그 감소폭이 더 클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이 같은 규모의 다양한 영화가 탄탄하게 ‘허리’를 받쳐주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산업 전반도 균형 있게 성장하지 못하게 할 거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영화제작자는 “지나치게 수익성에 의존한 나머지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작품 제작은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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