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의 법칙] 언니쓰 ‘맞지’가 확인시켜준 가요계 빈부격차

입력 2017-05-12 18: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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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

빈부격차에 따른 부익부빈익빈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UC버클리의 행동경제학자 폴 피프(Paul Piff)는 TEDxMARIN 강연에서 서로 알지 못하는 100쌍의 학생을 대상으로 1:1 모노폴리 게임을 시킨 후 그 반응을 살피는 실험을 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진행한 1:1 모노폴리 게임은 평범한 모노폴리 게임이 아니다. 동전던지기를 통해 한 쪽에는 1개의 주사위를 더 주고, 두 배 많은 초기 자본을 제공하며, 두 배 많은 월급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게임을 진행했다.

결과는 '당연히' 100이면 100, 유리한 조건으로 게임에 임한 쪽이 승리를 거뒀다.

이 실험은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금수저와 흙수저'로 표현하는 빈부격차에 따른 부익부빈익빈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빈부격차에 따른 부익부빈익빈 문제는 가요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언니쓰'의 성공이다.

'언니쓰'는 KBS2에서 방송되는 '언니들의 슬램덩크'를 통해 결성된 프로젝트 걸그룹으로, 1기에서는 라미란, 김숙, 홍진경, 민효린, 제시, 티파니가 멤버로 활약했고, 2기에서는 김숙, 홍진경, 강예원, 한채영, 홍진영, 공민지, 전소미가 멤버로 출연중이다.

그리고 1기가 발표했던 'Shut Up!'과 2기가 발표한 '맞지'는 모두 음원차트 1위에 오르며 '대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언니쓰의 입장에서 성공의 요인을 보자면, 꿈을 향해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가는 멤버들의 노력이나 개성넘치는 멤버 조합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팀워크 등을 언급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건 '언니쓰의 입장'에서의 말이지, 진짜 성공요인은 '방송매체라는 든든한 배경'이다.

물론 저들이 노력을 하지 않았다거나 노력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언니쓰의 멤버들은 자신이 가진 최선과 최고를 뽑아내기 위해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음원차트 1위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반대로 생각해 언니쓰가 아닌 다른 걸그룹은 이런 노력을 하지 않아서 1위를 못하는 것인가? 절대 아니다. 실제로 지금 이순간에도 곳곳에서는 수많은 소녀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피, 땀, 눈물 섞인 트레이닝을 수 개월을 넘어 수 년간 이어오고 있다.

다만, 이들과 언니쓰 사이에는 이런 노력의 과정을 보여줄 '도구'를 지니고 있었느냐 아니냐라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제 아무리 최고의 명곡, 명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이 때문에 콘텐츠 산업에서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릴 도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언니쓰는 매주 고정적으로 방송을 통해 트레이닝 모습을 보여주었고, 또 하루가 멀다하고 각 언론 매체를 통해 포탈사이트의 연예 섹션 메인 페이지를 장식해 방송을 보지 않는 사람에게도 자신들의 이름을 각인 시켰다.

단 한 번이라도 포탈사이트의 연예 페이지에 이름을 올리고, 지상파 TV에 출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아부어야하는 중소기획사의 가수들과 비교하면, 언니쓰는 애초에 엄청나게 유리한 조건을 보장받고 게임을 시작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언니쓰의 '맞지'는 음원 차트 1위에 오르는 '당연한 결과'를 받아들였다.

글의 초반 언급한 모노폴리 게임의 진짜 흥미로운 점은 게임이 끝난 후 실험에 참여한 학생들의 태도에 있다. '승리할 수 밖에 없는 게임'에서 승리를 거둔 이유를 묻자 이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전략을 짜고 재산을 불려나갔는지를 설명했고 처음 가지고 있었던 조건의 차이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졌다.

폴 피프(Paul Piff)는 부가 늘어날수록 점점 상대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은 희미해지고, 자신에 대한 권리와 자기만족을 찾는 성향이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언니쓰의 기획자에게 언니쓰의 성공 요인을 묻는다면, 이런 전략과 저런 노력의 결과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두지만 언니쓰의 성공요인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조건이 달랐기 때문에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조건의 차이는 겨우 3~4%를 오가는 저조한 시청률에도 싸이와 아이유를 제치고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할 수 있을 만큼 막강한 것이다.

언니쓰뿐만 아니라, '무한도전 가요제'가, '쇼미더머니'가, 또 다른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 발표한 '금수저 곡'이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할 때마다 가요제작자 입장에서는 씁쓸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이런류의 방송을 못하게 할 수도 없고, 모든 가수들이 노력에 맞는 정당한 대가를 받게 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방송사는 성공을 하기 위해 훨씬 더 풍족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이들이 성공을 할수록 많은 가수들은 자원과 가능성, 기회가 줄어든다는 사실에 적어도 경각심은 지닐 필요가 있다.

'변화'는 '문제의 인식'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동아닷컴 최현정 기자 gagnr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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