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내 욕심 때문”…봉준호와 ‘옥자’, 보이콧의 무게를 견뎌라

입력 2017-06-14 11: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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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멀티플렉스의 ‘보이콧’이라는 암초에 부딪혔지만 ‘옥자’는 묵묵히 제 갈 길을 간다.

‘옥자’ 측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포시즌스호텔 그랜드볼룸에서 내한 기자회견을 열고 국내 취재진을 만났다. 이날 행사에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틸다 스윈튼, 안서현, 스티븐 연, 변희봉, 최우식,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 등이 참석했다.

틸다 스윈튼은 “아름다운 ‘옥자’를 한국에 데려왔다. 이제 내가 한국 영화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고향에 온 기분이다. 봉준호 감독과 함께해 더욱 기쁘다”고 내한 소감을 말했다. 스티븐 연은 “이 자리에 와서 너무나 영광이고 자부심도 느낀다. 내가 태어난 나라에 영화인으로 돌아왔는데 이렇게 훌륭한 영화인들과 함께 영화를 소개하게 돼 영광”이라면서 “꿈이 실현된 것 같다. 내 영화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이라고 벅찬 마음을 드러냈다.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라 더 특별하다. 봉 감독과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밝혔다. 다니엘 헨셜은 “이 영화에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다. 한국에 와서 따뜻한 환대를 받아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전했다.

해외 배우들과 기자회견에 나선 변희봉은 “사람이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 것 같다. 내가 이 나이에 칸 영화제에 참석해 별들의 잔치를 보고 왔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정말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라면서 “칸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고 돌아왔다. 칸에서 ‘70도 기운 고목나무에서 꽃이 핀 기분’이라고 말했는데 고목나무에 움이 생긴 것 같다. 비가 와서 움이 커지면 고목나무가 60도 쯤 올라서리라고 생각한다”는 말했다.

최연소 배우 안서현은 “모든 배우가 쉽게 갈 수 없는 자리에 훌륭한 감독님, 세계적인 배우들과 손잡고 걸었다. 앞으로 연기하면서도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행복했다. 감사하다”고 의젓한 멘트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는 비밀을 간직한 채 태어난 거대한 동물 ‘옥자’와 강원도 산골에서 함께 자란 소녀 ‘미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넷플릭스와 플랜B 엔터테인먼트, 루이스 픽처스, 케이트 스트리트 픽처스 컴퍼니가 함께 제작한 글로벌 프로젝트 ‘옥자’는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폴 다노,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 스티븐 연, 릴리 콜린스 등 할리우드 배우들과 함께 안서현, 변희봉, 최우식 등 한국 배우가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봉 감독은 “문화적인 경계를 넘고 싶거나 다양한 문화를 섞어서 만들려는 의도는 없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에 따라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라면서 “‘옥자’는 우리 주변에도 많은 다국적 거대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아시아 깊은 산 속에 있는 소녀와 맨하탄의 다국적 기업 CEO가 연결돼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다국적 배우들이 함께하게 됐다. 문화적인 철학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니다. 나는 항상 내가 찍고 싶은 스토리가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글로벌 프로젝트라고 해서 힘들지는 않았다. 영화를 만드는 메커니즘은 어느 나라든 다 비슷하다. ‘괴물’을 찍을 때도 해외 스태프와 함께했고 ‘설국열차’와 ‘옥자’는 말할 것도 없다. 이미 익숙해졌다. 스티븐 연을 비롯해 통역하는 분들의 도움을 잘 받았다. 언어적인 문제는 한국 배우와 뜻이 맞지 않을 때 더 힘들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다양한 문화가 충돌하고 뒤섞여 있다. 프로야구와 농구만 보러 가도 외국인 선수들이 있지 않나. 모두 뒤섞여 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의 ‘옥자’를 둘러싼 가장 큰 화두는 국내외 극장과의 갈등이다. 지난달 제70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는 프랑스극장협회의 반대에 부딪혔고, 국내 개봉을 앞둔 현재에는 국내 멀티플렉스와 대립을 이루고 있다.

봉 감독은 “‘옥자’는 가는 곳마다 논란을 몰고 다닌다”면서 “그러나 논란을 야기함으로서 새로운 규칙이 생기고 있지 않나. 영화가 외적으로도 기여할 수 있다면 이것이 타고난 복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옥자’가 초청되기 전에 프랑스 내부에서 법적으로 정리가 됐어야 했는데 우리를 초청해놓은 상태에서 논란을 만드니 가는 사람이 민망해졌다. 정리해놓고 우리를 초청해야 하지 않나. 우리가 프랑스 법까지 공부하면서 영화를 찍을 수는 없지 않나”고 지적하면서 “영화제는 이슈와 논란이 필요했을 것이다. 올해는 라스 폰트리에 감독 같은 분이 없어서 ‘옥자’가 논란의 대상이 된 것 같다”고 농담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제70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당시 프랑스극장협회는 “극장 개봉을 하지 않는 넷플릭스 작품이 극장 상영을 원칙으로 하는 칸 영화제에 진출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반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칸 영화제 운영회 측은 내년부터 반드시 극장에서 개봉하는 작품만 영화제에 출품할 수 있도록 규정까지 바꿨다.

국내 극장들도 비협조적인 것은 마찬가지. 봉준호 감독은 넷플릭스와 계약을 체결할 때부터 ‘국내 극장 개봉’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웠지만 그의 바람은 ‘반쪽 실현’으로 그쳤다. 하지만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국내 멀티 플렉스는 “‘옥자’는 극장 개봉 최소 3주 후 VOD 등으로 서비스하는 원칙을 어겼다”면서 보이콧을 외쳤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옥자’는 서울 대한극장 등 전국 7개 극장에서 넷플릭스와 동시 개봉을 준비 중이다.

봉 감독은 “한국의 경우 프랑스와 논란의 양산이 다르다. 멀티플렉스의 입장은 이해한다. 극장 산업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 당연하다. 넷플릭스는 스트리밍과 동시에 개봉하는 원칙을 내세웠는데 이것 또한 이해한다. 넷플릭스는 가입자로부터 받은 이용료로 영화를 만드는데 가입자들의 우선권을 뺏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왜 이런 논란이 생겼나 생각해보니 내 영화 욕심 때문인 것 같다. 논란의 원인 제공자는 나”라면서 “칸에서처럼 ‘옥자’ 이후에 스트리밍 영화와 극장 개봉에 대해 세부적인 룰이 생길 것 같다. 그 룰이 오기 전에 영화가 먼저 도착한 것 같다. 한국에서도 ‘옥자’가 규정을 정리하는 데 신호탄이 된다면 좋은 역할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봉 감독은 “이 논란에 본의 아니게 휘말려서 피로했을 업계 관계자들에게 미안하다. 멀티플렉스는 아니지만 곳곳의 도시의 극장에서 ‘옥자’를 상영하게 됐다. 작지만 길게 여러분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옥자’는 넷플릭스 스트리밍과 더불어 서울 대한극장 등 전국 7개 극장에서 6월 29일 동시 개봉한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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