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음모론 출발→도난 위기까지…‘직지코드’ 기승전결 탄생기

입력 2017-06-21 17: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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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만에 끝난다고 했는데 3년 걸렸습니다.”

영화 ‘직지코드’를 연출한 우광훈 감독은 21일 서울 중구 장충단로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린 영화 ‘직지코드’ 기자간담회에서 위와 같이 고백했다. 그의 멘트에서 ‘직지코드’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경이 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직지코드’는 고려시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를 둘러싼 역사적 비밀을 밝히기 위해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 유럽 5개국 7개 도시를 횡단한 제작진의 여정과 놀라운 발견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데이비드 레드먼이 출연하고 우광훈 감독이 연출했으며 정지영 감독이 제작했다.

데이비드 레드먼은 그간 구텐베르크의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과 달리 프랑스에 고려가 만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문화적 충격을 받고 다큐멘터리 기획을 결심했다. 그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갔는데 직원들도 직지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한국의 국보인데도 아무도 모른다는 것에 매우 기분이 상했다”며 “서양인에게 직지를 알리고 싶은 동기로 시작했다. 이에 프랑스 영화사에 접촉했으나 반응이 미지근했다. 다시 한국 영화사를 찾아갔다. 정지영 감독에게 제안했고 2주 간의 고생 끝에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정 감독의 마음에 들기 위해 피나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어렵게 영화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정지영 감독 또한 ‘직지의 고향’ 청주 출신으로 평소 직지에 관심이 많았다고. “몇 년 째 ‘직지 축제’ 홍보대사도 하고 있다”는 정 감독은 “어느날 데이비드가 찾아와서 영화화를 제안했다. ‘직지가 구텐베르크에 영향을 반드시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단서를 찾아가는 추적 다큐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함께 몇 년에 걸쳐서 고생하다가 간신히 ‘직지코드’를 찍게 됐다”고 털어놨다.

‘직지코드’의 연출을 맡아 제작진에 합류한 우광훈 감독은 “정지영 감독이 획기적인 기획이 있다고 ‘직지코드’를 제안했다. 객관성을 유지하되 다빈치코드처럼 박진감 넘치는 추적 다큐를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4개월 정도 걸린다기에 용돈 벌이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3년 걸렸다”고 고백했다.


오랜 준비 끝에 유럽으로 떠난 제작진은 뜻밖의 위기를 겪었다. 유럽 촬영 마지막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서로 토론하는 장면을 찍는 와중에 차량에 있던 촬영 장비와 촬영본이 담긴을 도난당한 것.

우 감독은 “살면서 이것보다 더 크게 힘든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더라. 데이비드는 당시 ‘삶을 마감하고 싶다’고 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못 만날 뻔 했다. 동행한 여배우도 너무 침체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유럽 경찰들도 비협조적이었다.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면서 도와주지도 않고, ‘알아서 찾으라’는 식이었다. 결국 우리는 습득물을 관장한다는 집시 군락의 수장을 찾아갔다. 너무 위험한 동네라 유럽 가이드도 빠지고 우리끼리 갔다. PD님은 유서까지 써놓고 갔다”고 떠올렸다. 우 감독은 “그럼에도 못 찾았다. 낙담해 있는데 정지영 감독님이 ‘재촬영을 생각해봐라’고 하더라. 돌이켜보면 오히려 이 위기 덕분에 극적인 이야기가 생겼다. 우리의 메시지를 더 전달할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더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레드먼은 “그때는 정말 죽고 싶었다. 너무 충격 받은 상태였는데 정지영 감독이 위로해주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해줘서 감동받았다. 사고가 있었지만 필름 몇 개는 남아 있었고 영화를 만들 때 넣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전했다.

정 감독은 “처음에는 황당했는데 나보다는 감독과 PD와 스태프의 감정을 생각해봤다. 다시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영화 한 편을 도둑맞은 셈이다. 되팔면 돈이 되는 카메라는 잃어버려도 콘텐츠는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로마 대사관까지 연결해서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못 찾는다는 것을 알았다”며 “그렇다면 방법은 재촬영 밖에 없었다. 제작비 때문에 촬영 일정과 스태프를 줄이고 진행했다. 나는 스태프를 고생만 시킨, 죄인”이라고 고백했다.


45일동안 진행한 인터뷰를 3일 만에 재촬영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직지코드’. 이 영화는 구텐베르크가 발명했다는 금속활자에 대한 음모론과 더불어 ‘서양이 쓴 역사를 그대로 믿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전혀 다른 이야기로 끝을 마무리한다. 역사적 증거와 함께 동서양의 오랜 교류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연구 가능성을 제시한다. 정지영 감독은 간담회 말미 ‘직지코드’ 후속편을 예고하기도 했다.

데이비드 레드먼은 “‘직지코드’를 만들면서 즐겁고 때로는 힘들었다. 정지영 감독과 스태프들의 인내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정지영 감독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다”며 “박물관에는 아직 개방되지 않은 자료가 많다. 연구할 부분도 충분히 많다”고 전했다. 정 감독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영화지만 일반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우리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당부했다.

정지영 감독이 제작하고 우광훈 감독이 연출, 데이비드 레드먼이 출연한 ‘직지코드’는 6월 28일 개봉한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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