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봉준호 “구상 중인 7편, 죽을 때까지 영화를…”

입력 2017-07-10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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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옥자’의 봉준호 감독은 7편의 영화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죽을 때까지 영화만 찍었으면 좋겠다”는 그는 배우 송강호와 다시 손잡고 영화 ‘기생충’을 만든다. 제목이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가족의 이야기다. 사진제공|NEW

■ 개봉 2주 연속 흥행 4위 ‘옥자’ 봉준호 감독

“넷플릭스 투자금으로 ‘미국 대자본’ 풍자·비판
작품의 흥행보단 찍고싶은 장면에 대한 집착 뿐
틸다 스윈튼은 7년간 가장 큰 에너지를 준 사람”


역시 ‘봉준호 팬덤’은 강하다. 그의 영화 ‘옥자’는 고작 100개가 조금 넘는 스크린에서 상영하는데도 개봉 2주 연속 흥행 4위를 지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봉준호(48)의 힘이다. 봉준호 감독은 연령과 세대를 불문한 지지를 받는다. 단순히 ‘인기’로 표현하기 어려운 ‘팬덤’의 힘. 그는 “기대를 일부러 박살내려 몸부림 칠 필요도 없고 충족시키려 해도 되지 않는 걸 잘 안다”고 했다.

무엇을 물어도 예상 그 이상의 답을 내놓는 봉 감독과 인터뷰는 한 시간으론 턱없이 부족했다. “당이 떨어진다”면서 아이스크림을 주문한 그는 접시에 담긴 세 덩이를 단숨에 털어 넣고 말을 빠르게 이었다.

“‘설국열차’ 땐 930만을 동원했는데 1000만 관객에 실패한 봉준호라는 소릴 들었다.(웃음) 실패한 이유를 막 분석하는데, 사실 영화가 꼭 1000만을 해야 하나? 모르겠다. 모든 걸 충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다.” 그는 “난 이런 장면을 찍고 싶다는 집착 밖에 없다”며 “어느 영화제에 진출하고, 예매율은 얼마가 돼야 하고. 외적인 걸 스스로 덧씌우는 목표를 갖진 않는다”고도 했다.

그보다 앞으로 만들어낼 영화에 대한 구상이 그의 머리를 채우고 있다. 7편이나 된다. “송강호 선배가 출연할 ‘기생충’은 100% 한국어 영화다. 그 다음엔 작고 똘똘한 사이즈로 미국 배우와 스태프로 구상한 100% 영어 영화를 할 계획이다. 10년간 생각한 공포영화에 가까운 작품도 있다. 평균 3년에 한 편씩, 21년이 걸린다. 다 찍을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찍기만 하면 좋겠다.”

여러 나라 관객을 상대하고 싶지만 한편으론 조용한 지방 도시의 관객 평가도 기다려진다. “전북 고창이나 전남 고흥 같은 지역의 작은 영화관에서 ‘옥자’가 상영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어떠한 정보도 없이 ‘옥자’를 본 뒤에 ‘귀여운 돼지가 나오네’처럼 반응해준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봉준호 감독. 사진제공|NEW

‘옥자’의 제작비는 5000만 달러, 우리 돈 577억원. 미국 동영상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가 전액 투자했다. 봉 감독은 그 돈을 받아 ‘미국 대자본’으로 상징될 만한 식품기업의 탐욕을 그려냈다. “만약 맥도날드 풍자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맥도날드가 투자를 한다면 난 그 돈을 받아 쿨하게 찍을 거다. 대자본을 비판하는 영화는 무조건 크라우드 펀딩으로 찍어야 하나. 아니다. 풍자와 비판의 영화를 더 안정적으로 찍는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게 ‘옥자’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든든한 힘이 된 존재는 배우 틸다 스윈튼. ‘설국열차’와 ‘옥자’를 함께 했다. “6∼7년간 가장 큰 에너지를 준 사람”이라고 했다. “기차에 4년, 돼지에 또 4년을 쏟으면서 타인의 돈 1000억원을 썼다. 자신의 상상력을 실현하는 과정에 남의 돈 1000 억원을 쓴다는 것은 부담이 큰 과정이다. 그때 틸다가 무한한 에너지를 줬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 찍을 때 송강호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머리 속에 온통 영화 밖에 없는 것 같은 그에게 일상의 모습을 조금 공개해 달라고 했더니 “요즘 말로 ‘병맛’ 돋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딱히 하는 게 없다. 운동, 골프 같은 거 안 한다. 취미도 없고. 영화 안 찍을 땐 영화를 본다. 굳이 찾자면 만화 정도.”

근사한 작업실에서 시나리오를 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마음에 드는 몇 곳의 카페를 찾아 전전한다. “딱 보면 ‘각’이 나온다. 사람 거의 없고 노트북 전원 꽂아 등지고 앉을 수 있는 곳. 그런데 내가 작업하면 얼마 뒤에 그 카페들은 없어진다. 조용한 곳 찾아 다녀 그런 것 같다. 봉준호가 카페에 나타나면 그 카페에는 적신호인 거다. 하하!”

늘 다른 장르, 다른 이야기를 쓰지만 그가 시나리오에 고집스레 넣는 내용은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장면. 물론 ‘옥자’에도 있다. “밥을 같이 먹어야 진짜 가족이다. 촬영 날 아침에 일어나 세수할 때부터 빨리 찍고 싶은 두 가지 장면이 있는데 밥 그리고 취조 장면이다.”

● 봉준호

▲1969년 9월14일생 ▲1993년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한국영화아카데미 11기 입학 ▲1994년 단편영화 ‘백색인’, ‘지리멸렬’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상업영화 데뷔 ▲2003년 ‘살인의 추억’ 대종상·대한민국영화대상·디렉터스컷 감독상 수상 ▲2006년 ‘괴물’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2009 년 ‘마더’ 미국비평가협회 외국어영화상 ▲2014년 ‘설국열차’ 올해의 영화상 작품상·감독상 ▲2016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오피시에)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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