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리뷰] 헌신·희생·용기…‘시라노’가 말하는 ‘사랑’에 관하여

입력 2017-08-07 0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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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프로스랩

●뮤지컬 ‘시라노’ 리뷰

“이 작품은 굉장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 이야기 속에 진짜 용기가 뭔지, 정의가 뭔지, 희생이 뭔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새 여러 가지로 많이 힘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희망도 보면서 서로 위로를 할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뮤지컬 배우 류정한이 ‘시라노’로 첫 프로듀서로서 데뷔를 하면서 이같이 말한 바 있다. 무대 위에 올려진 ‘시라노’를 보니 이 메시지만큼은 잘 전달이 된 것 같다.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인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시라노’는 연출 구스타보 자작과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등의 손을 거쳐 한국 관객에게 처음 찾아왔다.

문무의 재능을 겸비한 호쾌한 귀족 시라노는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온 록산을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기형적으로 크고 못생긴 코를 가진 추남인 ‘시라노’는 그에게 선뜻 사랑 고백을 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록산은 시라노의 부대에 배속된 잘생긴 젊은 청년 크리스티앙과 사랑에 빠졌다. 크리스티앙 역시 록산을 사랑하지만 잘생긴 외모만큼 교양이 없고 문학적 자질이 없는 그를 대신해 시라노는 록산에게 연애편지를 쓰며 록산을 향한 사랑을 전달한다.

하지만 록산을 짝사랑하는 드 기슈의 음모로 크리스티앙은 시라노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게 되고 록산은 시라노에게 크리스티앙을 지켜달라고 한다. 전쟁터에서도 록산에 대한 사랑을 잊지 못하던 시라노는 목숨을 걸고 크리스티앙의 이름으로 록산에게 편지를 보낸다. 크리스티앙의 편지를 받고 더욱 더 깊어진 사랑에 록산은 전쟁터까지 오게 되고 이로 인해 두 남자는 록산이 사랑하는 사람은 편지 속에 담긴 한 사람의 순수한 마음임을 깨닫는다.

사진제공=프로스랩


뮤지컬 ‘시라노’는 한 남자가 한 여성을 짝사랑 하는 이야기다. 이곳에는 백마 탄 미모의 왕자도 없고 그런 왕자를 오매불망 기다리기만 하는 여성도 없다. 뻔한 이야기의 구조를 탈피하지만 그 안에는 전형적인 사랑과 희생 그리고 용기를 담아낸다. 또한 희비극으로 전혀 다른 분위기의 극을 만들어냈다. 큰 그림으로 본다면 1막은 희극, 2막은 비극이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의 고전적인 대사는 재치가 넘치지만 부르는 넘버는 진지하고 숭고하다. 이에 뮤지컬 경험이 생소한 이들에겐 다소 낯선 경험일 수 있다.

작품은 원작의 메시지를 담기 위해 충실했지만 만듦새는 좀 아쉽다. 마지막 장면에서 시라노에게 갑작스런 사랑 고백을 하는 록산의 모습은 쌩뚱맞게 보인다. 극의 대부분을 크리스티앙을 향한 사랑만을 말하던 록산이 모든 편지의 작성자가 시라노라는 사실을 안 순간 “당신만을 사랑했다”라는 내용은 원작에도 있는 내용이지만, 무대 위에서는 개연성을 더해줬으면 더 나았을 거란 아쉬움을 남긴다. 또 일종의 극중극 형식인 ‘달에서 떨어진 나’는 ‘달’과 ‘시라노’의 연결점을 보여주기 위함이지만 몰입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시라노’ 역을 맡은 홍광호는 이번 작품을 통해 그의 도전정신을 돋보였다. 평소 초연 작품과 창작뮤지컬에 관심이 많은 그는 이번에도 ‘시라노’라는 인물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해 로맨티스트이자 시대에 저항할 줄 아는 인물 ‘시라노’를 탄생시켰다. 특히 그의 솔로곡인 ‘나 홀로’는 그의 풍부한 성량으로 무대를 꽉 채워 감동을 더한다.

많은 이들이 그의 ‘시라노’를 보며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가 떠오른다고 한다. 아마 ‘시라노’의 모험심과 괴짜 같은 구석이 그렇게 보였으리라. 또한 한 여성을 향한 해바라기 사랑을 보면서 ‘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도’가 떠오른다. 그 만큼 이번 ‘시라노’에서는 홍광호의 축적된 경험이 무대 위에서 고스란히 보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진제공=프로스랩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은 한 여름의 무더위도 잊게 해줄 듯 하다. 청량함이 넘치지만 기억에 남는 곡은 없어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뮤지컬 ‘시라노’는 거대하거나 웅장한 작품은 아니다. 심오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작품도 아니다. 하지만 ‘시라노’는 가장 중요한 ‘사랑’에 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먼발치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는 것, 그를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 역시 사랑임을 말하고 있다. 사랑을 적극적으로,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사랑’에 대해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할 작품이다. 10월 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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