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 “부임 첫해 잘린 뻔…전북과 12년 동행은 내 운명”

입력 2017-10-1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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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최강희 감독이 K리그 통산 3번째 ‘200승 사령탑’ 반열에 올랐다. 오롯이 한 팀에서 이룬 대업이기에 더욱 의미가 남다르다. 10월 8일 제주 원정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둔 뒤 메가폰을 잡고 대기록 소감을 말하는 최강희 감독.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 단일팀 첫 200승 최강희 감독의 소회

‘떠나라’는 팬들에 장문의 편지 띄웠던 기억들
이동국·김상식 영입 후 2009년 우승 첫 키스
지난 8일 부임 402경기만에 역사적인 200승
“못된 감독 밑에서 선수들이 만들어 준 결실”

8월 중순이었다. 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 전북현대의 클럽하우스를 찾은 어느 팬이 최강희(58) 감독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전북 김제시에 사는 이 팬은 틈날 때면 경기장과 클럽하우스를 찾아와 선수들을 격려해왔다.

“이제 꼭 4승 남았네요.” 최 감독의 K리그 통산 200승이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는 이야기였다. 구단 사무국에서도 200승 기념행사를 조용히 계획해왔지만 정작 본인은 깜빡 잊고 있었다. 매순간 고독하고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하는 거친 승부의 세계에서 의식할 틈도 없었다.

그제야 최 감독은 자신이 돌아온 길을 되돌아봤다. 백수 신분이던 2005년 여름 박항서(57) 감독과 독일 시골마을에서 한가로이 골프를 치다 감독직을 제안하는 구단의 연락을 받은 순간부터 영욕으로 점철된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부임 첫 시즌(후반기) 2승에 그치면서 역대 최단명 사령탑을 걱정할 때, 2008년 대대적인 선수단 리빌딩 여파로 개막 이후 5경기 무승(1무4패)에 그치자 시즌 뒤 사퇴를 결심하고 “팀을 떠나라”고 아우성치던 팬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낸 기억, 이동국과 김상식(현 전북 코치)을 동반 영입해 반전을 거듭하다 우승 트로피에 처음 키스한 2009년의 추억 등이 두루두루 떠올랐다.

전북 최강희 감독. 사진제공|전북현대


30여년 역사의 프로축구는 사령탑의 200승 달성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역대 K리그에서 200승을 넘긴 감독은 유공∼울산현대를 거치며 210승을 거둔 김정남 감독(한국OB축구회 회장)과 한일은행∼울산∼수원삼성∼대전 시티즌에서 207승을 쌓은 김호 감독 등 오직 2명만 영예를 누렸을 뿐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최 감독과 사제관계다. “한 분(김호)은 날 국가대표로 만들어주셨고, 다른 분(김정남)은 국가대표로 뽑아주셨다. (감독이 돼) 다시 돌이켜봐도 정말 위대하고 감사한 스승님들이다.”

10월 8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 유나이티드와의‘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33라운드 원정(정규리그 최종전)에서 1-0으로 이기며 드디어 최 감독과 전북은 새 역사를 썼다. 올 초 이적료 130만 유로(약 16억원)에 영입한 측면 수비수 김진수가 결승골을 뽑아 스승에 큰 선물을 안겼다. 9월 17일 포항 스틸러스 원정에서 통산 199승을 만들었고, 제주를 200승 제물로 삼았다. 최 감독이 부임한지 402경기 만에 얻어낸 값진 결실이다. 상주상무∼대구FC로 이어진 홈 2연전을 전부 놓쳤고, 수원삼성 원정에서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전북이지만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전북 최강희 감독. 사진제공|전북현대


올 시즌 내내 치열한 선두권 다툼을 벌여온 제주 원정에서 거둔 승리라 의미는 더했다. 제주와의 앞선 2차례 대결에서 모두 무릎을 꿇은 전북은 팀당 5경기씩 펼치는 스플릿 라운드를 앞두고 분위기를 되살렸다. 공교롭게도 전북은 2014, 2015시즌 정상에 섰을 때마다 전부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우승 트로피에 키스했다. 최 감독은 감회에 젖었다.

“오기로 버텼고, 마음을 비우고 채움을 반복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모질고 못된 감독을 만나 선수들이 고생해 만들어준 역사다. 불명예스럽게 떠날 뻔한 순간도 정말 많이 있었다. 격세지감이다.”

‘전북 최강희호’의 기록이 대단한 것은 단순히 역대 3번째 200승 지도자의 반열에 올랐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오직 한 팀에서 롱런해, 또 최단기간에 일군 역사이기에 훨씬 값지다. 최 감독은 “능력이 안돼 다른 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고 하지만 실은 다르다. 국내외에서 숱한 러브 콜이 쇄도했다. 중국 슈퍼리그와 중동 클럽들이 강하게 손짓했다.

물론 그는 떠나지 않았다. 시련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은 감독은 묵묵히 자신의 그림을 그렸고, 구단은 감독을 꾸준히 기다려주고 믿었기에 가능한 200승이다.


이렇듯 모든 구성원의 노력이 더해지자 그저 그런 중소 클럽에 불과했던 전북은 아시아 무대를 제패하는 현시대 최강으로 발돋움했다. 전북 선수들은 “감독님이 떠나면 나도 팀을 떠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9월 20일 상주전 패배 뒤 “올 시즌 후 거취를 심각하게 고민 하겠다”며 최 감독이 사퇴를 암시하는 발언을 하자 어느 선참 선수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적어도 지금이 헤어질 시간은 아니다. 감독님 없는 전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나도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 같은 생각을 하는 동료들도 많다. 물론 팀도 방향을 잃고 한동안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했다.

즉흥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우직하게 한 팀에 머문 스승과 그의 부름을 받고 온 제자들이 오랜 시간 미운 정과 고운 정이 쌓이고 서로 신뢰를 주고받았기에 가능한 얘기다. 그만큼 최 감독이 자신의 인생을 걸고 전북에 남겨온 발자취는 깊다. 이를 최 감독은 ‘운명’이라고 했다.

“선수생활은 (포항에 입단한 1983년 데뷔 시즌만 빼고) 울산에서 보냈고, 코치는 수원에서 처음과 끝을 지냈다. 대표팀 임시 지휘봉을 잡은 것을 제외하면 (감독으로서는) 전북에서만 보냈다. 한 팀과 오래 동행하는 건 아마도 내 운명인 것 같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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