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스포츠영웅’ 차범근이 한국축구에 건네는 메시지 ‘헌신과 희생’

입력 2017-10-18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차범근. 스포츠동아DB

스포츠 스타와 영웅의 차이는 무엇일까.

무 자르듯 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판단으로 스타는 경기력으로 완성될 수 있지만, 영웅은 한발 더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단기간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시대적 산물로서 영웅은 탄생되고, 그 영웅을 통한 메시지가 사회에 투영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애국, 저항, 극복, 희망 등의 메시지는 언제나 묵직하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라면 마땅히 예우가 필요한데, 그 예우 중 하나가 명예의 전당이다.

10월 16일 대한체육회가 발표한 2017년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에 차범근(64)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선정됐다. 축구인 출신으로는 처음이다. 그는 2005년 대한축구협회가 선정한 명예의 전당 헌액자 7명에도 뽑힌 바 있다.

차범근을 스포츠영웅에 선정된 이유는 ‘분데스리가의 전설’로 불리며 역사상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다는 점이 부각됐다.

사실 기록으로만 따지면 차범근은 한국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다.

1970년대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를 호령했고, 1980년대에는 세계 최고 무대인 독일 분데스리가로 건너가 정상급 선수로 뛰었다. 10년간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며 308경기에서 98골을 넣었고, 두 차례 UE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대표팀 감독과 프로축구 사령탑으로도 업적을 남겼다.

선수 시절 차범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런데 차범근의 가치를 이런 숫자에 가둬두면 안된다. 한국축구에 기여한 보이지 않는 부분을 들여다봐야한다. 그의 50여년 축구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사명감’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사전적 의미로 사명(使命)은 맡겨진 임무다. 사명은 단기간의 역할은 아니다. 일생을 바쳐서 해야 할 일이다. 힘들다고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려워도 뚫고 나가야하는 게 사명이다.

차범근의 사명은 한국축구의 발전과 선진화였다. 축구를 통해 성공했고, 축구 덕분에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축구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이 언제나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차범근이 처음 독일로 떠날 때는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무모하리만치 저돌적이었던 도전정신은 후배들에겐 동기부여가 됐다. 가진 것 별로 없었던 20대 중반의 나이, 독일행은 아무래도 개인의 목표와 이익이 우선이었겠지만, 이와 함께 가슴 속 한편에 또 다른 목표가 자리 잡았다. 한국축구가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끊임없이 고민했던 것이다. 그걸 찾기 위해 애쓰면서 독일에서 버틸 수 있었다.

차범근은 1998프랑스월드컵 본선 도중 경질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국내 프로축구의 승부조작 발언 파문으로 바닥까지 떨어졌다. 그의 축구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지점이다. 축구계를 떠난다손 치더라도 이상할 게 없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조용히 돌아왔다. 결코 떠날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한국축구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이후 유소년에 투자를 해야만 한 나라의 축구가 강해질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축구교실 운영에 더욱 매진했다. 이와 더불어 축구상 시상도 30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그는 한국축구가 원하는 일이라면 자신이 조금 희생하더라도 언제든 달려갔다. 이런 행동은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요즘 한국축구가 많이 힘들다. 조용할 날이 없다. 열정이 부족한 태극전사도, 지도력 논란에 휘말린 감독도, 미숙한 행정력의 대한축구협회도 모두 도마에 올라있다. 한국축구의 뿌리가 되는 각급 연령별 성적도 신통치 않다. 프로축구 K리그에 대한 관심도 별로다. 어느 것 하나 기분 좋은 얘기가 들리지 않는 총체적 난국이다.

하지만 축구는 오늘만 하고 그만두는 게 아니다. 내일도, 모레도 둥근 공은 굴러간다. 이럴 때일수록 축구인 스스로가 희생과 헌신이라는 메시지를 가슴에 품고 책임감을 가졌으면 한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다. 한국축구를 구해줄 영웅을 기다리는 건 비단 나만의 바람일까.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