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영 감독님, 올림픽 메달 따면 기분이 어때요?”

입력 2017-12-1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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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아테네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배영 종로구청 감독이 13일 강원도 원주시 남원로 원주엘리트체육관에서 열린 ‘강원랜드 레전드 초청 스포츠꿈나무교실’에 참석해 역도 꿈나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기념촬영을 한 꿈나무들과 이배영 감독. 원주|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레전드 초청 강원랜드 스포츠꿈나무 교실
원주 학성초에 뜬 ‘투혼의 力士’ 이배영

유원주 일일코치와 점프·바벨 드는 법 교육
“큰힘 들이지 않고, 아프지 않게 들어야 해”
역도 꿈나무들과 퀴즈쇼·피자타임 등 즐겨
“아이들 상대 강연 정말 떨리고 긴장되더라”


“좋은 일은 언제든 OK지만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괜히….”

기우였다. 한 시절, 우리 국민들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안긴 스포츠 영웅의 지도방법은 남달랐다. 준비돼 있었다. 서울에서 강원도 원주까지 직접 차를 몰아 2시간여를 달려왔음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특유의 환한 미소로 열성 어린 레슨을 진행한 선생님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낸 미래의 꿈나무들은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스킨십을 나눴다. 4시간 동안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영웅과 아이들의 만남은 그 어느 때보다 긴 여운을 남겼다.

2004아테네올림픽 역도 남자 은메달리스트 이배영(38)은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역도대표팀 코치를 거쳐 지금은 종로구청 여자역도선수단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레전드 초청 강원랜드 스포츠 꿈나무 교실’에 재능기부를 할 담당자들을 섭외하기 위해 “동참해주실 수 있느냐”는 의향을 물었을 때 그는 흔쾌히 재능기부를 약속했다.

당시 이 감독의 걱정은 딱 하나였다. 원주 학성초등학교 역도부 학생 전부가 만족할 프로그램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두 아이의 아빠이지만 많은 아이들을 상대로 강연을 해본 것은 언젠가 역도 종목 소개를 위한 딱 한번이다. 정말 떨리고 긴장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벽했다. 13일 원주 엘리트체육관에서의 공식 행사가 끝난 뒤 진행된 미니 사인회는 마치 인기 아이돌과 열성 팬들의 만남을 방불케 했다.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사인을 해주고, 휴대폰 카메라로 셀프 촬영을 하는 시간에만 30여분이 필요했다. 함께 사진 찍고 또 찍어도 뭔가 부족한 듯 학생들은 좀처럼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이배영 감독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환한 미소로 꿈나무들을 지도했고 어린이들과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나눴다. 원주|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종로구청 소속으로 현역 선수로 활약하는 유원주(23)를 일일 보조코치로 데려온 이 감독이 직접 사온 따스한 초콜릿 음료와 함께 던진 첫 인사말부터 남달랐다. “얘들아, 사람이 살다보면 넘어질 수도 있어. 힘든 순간, 어려움이 끊이질 않는다는 의미야.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게 뭘까? 넘어져도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서려는 노력, 자세가 아닐까?”

사실 그의 삶이 그랬다. 2000시드니올림픽 7위에 이어 2004년 아테네에서 16년 만에 한국역도에 올림픽 메달을 안긴 이 감독은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도 아주 유력한 메달 후보였다. 인상 한국기록(155kg)을 세웠다. 시상대가 아른거렸다. 그러나 이어진 용상 1차시기에 생전 처음 다리에 쥐가 났다. 무게를 높여 벌어놓은 짧은 대기시간에 바늘로 다리를 찌르며 응급처치를 해봤지만 무리였다. 마지막 3차시기. 결국 다리가 풀려 다시 고꾸라졌다. 그 순간까지도 바벨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선한 웃음을 짓고 무대를 떠나던 그는 대기실로 되돌아가며 고함을 지르고 가슴을 쳤다. 국민 모두를 울린 이 장면은 지금도 국제 역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회자된다. 물론 아이들도 레슨 중간 휴식시간을 이용해 ‘선수 이배영의 2008년’ 영상을 봤다.

이날 이 감독은 새싹들에게 두가지를 강조했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아프지 않게 기구를 들어야 해!” “기구랑 몸이 하나가 돼야 해! 기구를 사랑해주고, 몸에 최대한 붙여!” 힘 빼는 연습으로 레슨이 시작된 건 아이러니가 아니다. 핵심 요령이다. 역도를 잘하려면 몸의 힘을 최대한 빼야 하며 다리에만 힘을 주되, 팔은 바벨을 들어올린 순간에만 힘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역도 꿈나무에게 가장 필요한 순발력을 키우기 위해 달리기를 시키고 있는 이배영 감독. 미래의 역도 올림픽메달리스트를 꿈꾸는 꿈나무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원주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가볍게 바벨을 들어올리고 쉬운 동작으로 시범을 보인 유원주 일일코치에게 탄성을 내지른 아이들은 그야말로 정신없이 뛰어놀았다. 매트 위에서는 다리 벌리며 앞뒤 구르기를 하며 유연성을 길렀고, 왕복 달리기로 민첩성을 키웠다. 마무리는 두 발과 팔을 닿게 하는 점프 훈련. “내 몸무게보다 무거운 무게를 들어올리는 것이 멋있어 보여서” 역도에 입문했다는 학성초 5학년 최시호 군은 “(이배영) 감독님을 직접 만나 너무 좋다.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봤다. 귀에 쏙쏙 잘 들어 왔다”며 환하게 웃었다.

퀴즈 쇼와 선물 증정을 겸한 피자타임도 대단했다. 옹기종기 이 감독 주변에 모여든 학생들은 이것저것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인상·용상 합계 최고기록은 뭐죠?” “2008년 다리 부상은 다 나았어요?” “국가대표가 되려면 어떻게 하나요?” “올림픽 메달을 따면 기분이 어때요?” “금메달이 진짜 금인가요?” “역도 이외 취미는 뭡니까?” “역도는 왜 시작했어요?”진지하게, 또 재미있게 성심성의껏 답변을 남긴 이 감독은 아이들에게 쉽지만 굵직한 당부 메시지도 빼놓지 않았다.

“여러 분과 저는 ‘역도’라는 한 줄을 타고 함께 움직이고 있어요. 이 줄이 끊어지지 않게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역도는 모든 운동의 기초이자 기본이죠. 그래서 나중에 다른 운동을 하더라도 모두 잘할 수 있어요. 다만 힘들어도 즐거워야 한다는 것 잊지 말자고요!”


# 학성초등학교는?

강원도 원주 학성초등학교는 ‘역도 여제’ 장미란(34)의 모교로 유명하다. 역도부는 지난해 10월 창단됐다. 남녀학생 10명(6학년 2명, 5학년 8명)으로 이뤄진 역도부 선수단의 성장은 굉장히 가파르다. 4월 양구에서 열린 강원도 소년체전에서 은12·동3개, 11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강원교육감기대회에서 금6·은2·동1개를 획득했다. 2004아테네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배영(38) 종로구청 여자역도선수단 감독이 나선 ‘레전드 초청 강원랜드 스포츠 꿈나무 교실’에 학생들을 인솔한 이상윤(30) 교사는 “전문체육보다 즐기는 체육이 학교 방침이지만 확실히 가능성이 있는 친구들도 많다”며 활짝 웃었다.

원주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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