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K리그 형제선수들의 추억

입력 2018-01-2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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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부터 전북에서 한솥밥을 먹는 홍정남(오른쪽)-홍정호(왼쪽)형제. 사진제공|전북현대

프로축구가 태동한 1980년대만 하더라도 형제가 함께 K리그에서 뛰는 경우는 드물었다. 운동만으로 먹고 살기 힘든 시절, 부모 입장에서는 형제 가운데 한쪽이 운동을 하면 다른 쪽은 공부나 기술을 가르쳤다. 운동해서 인생역전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기에 진로를 달리했다. 또 누군가는 집안을 먹여살려야한다는 생존본능이었다. 혹여 함께 운동을 했더라도 10대 초반부터 프로무대까지 어깨동무하고 올라간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데 요즘 K리그에는 형제선수들이 부쩍 늘었다. 운동하는 환경이 좋아진데다 운동으로 성공한 케이스가 많아지다 보니 집안에서도 팍팍 밀어주는 모양이다. 형제가 함께 프로 무대를 밟는다는 건 집안의 경사다. 뒷바라지는 힘들지라도 형제 프로선수는 운동 시키는 부모들의 간절한 염원이다.

그런데 역대 K리그 기록을 살펴보면 형제가 한꺼번에 스타덤에 오른 케이스는 흔치 않다. 둘 중 한쪽이 성공하면 다른 쪽은 비교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런 게 그들이 겪는 가장 큰 스트레스일지도 모르겠다.

K리그 최초의 형제선수는 김성남-김강남-김형남이다. 김성남-김강남은 쌍둥이다. 특히 이들은 4형제 축구선수 집안으로 유명하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김정남이 큰 형이고, 김형남은 막내다. 1954년 7월19일생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김성남-김강남은 홍콩 무대에서 뛰다가 국내 프로리그가 출범한 1983년, 늦은 나이에 유공(현 제주)에 입단했다. 이듬해 이적(대우)도 같이 했다. 김강남은 2시즌 16경기 1골, 김성남은 3시즌 18경기 1골을 각각 기록했다. 김형남은 포철에서 2시즌(1983~1984년)을 보냈다.

5형제 축구가족 유동기-유동관-유동춘-유동옥-유동우. 동아일보DB


한국축구사엔 4형제보다 더 많은 5형제 축구가족도 있었다. 유동춘-유동관-유동우-유동기-유동옥이 그 주인공인데, ‘군산의 명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 중 프로에 입단한 형제는 유동관과 유동우다. 유동관은 포철에서 10시즌을 뛰며 207경기에 출전했고, 1995년 전남에 입단한 유동우도 수비수로 7시즌을 활약했다.

1990년대 형제 스타는 골키퍼 차상광-공격수 차상해다. 1990년대 초반 둘 다 태극마크를 달았다. 1986년 럭키금성(현 서울)에 입단한 차상광은 1997년 성남에서 은퇴할 때까지 226경기를 뛰었다. 은퇴 이후 줄곧 골키퍼 코치를 하고 있다. 1989년 럭키금성에 입단한 차상해는 당시로선 보기 드문 191cm의 큰 키를 자랑한 스트라이커로 주목을 받았다.

남궁도-남궁웅 형제. 스포츠동아DB


남궁도-남궁웅도 이름깨나 알려진 형제다. 남궁도는 2001년 전북에 입단해 2014년 안양에서 은퇴했고(통산 254경기), 남궁웅은 수원~성남~강원을 거쳤다. 여승원-여동원도 쌍둥이다. 2004년 인천에 함께 입단한 가운데 여승원은 인천~상무~수원을 거치며 78경기를 뛴 반면 여동원은 2군리그에서 2시즌을 보냈다.

한 팀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형제선수들은 2018시즌 개막을 손꼽아 기다린다. 중국 슈퍼리그 장쑤 쑤닝에서 임대로 K리그에 둥지를 튼 홍정호와 홍정남은 전북 유니폼을 입은 형제다. 2007년 전북에 입단했던 형 홍정남은 인고의 세월을 거쳐 지난 시즌 주목 받은 골키퍼고, 동생 홍정호는 국가대표를 지낸 수비수다.

제주 이창근-이창훈도 올 시즌이 기대되는 형제다. 프로 7년차인 형은 골문을 지키는 수문장이고, 프로 신인인 동생은 상대 골문을 열어젖혀야하는 공격수다. 경남은 지난해 말 신인자유선발로 아주대 김준선(형)-연세대 김준범(동생)을 동시에 영입해 화제를 뿌렸다.

K리그엔 외국인 형제도 있는데, 일본 출신의 와다 아츠키-와다 토모키가 서울 이랜드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상대 팀 소속으로 부딪쳐야하는 운명의 형제도 있다.

이범영(오른쪽)-이범수(왼쪽)형제.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출신의 하대성(서울)과 일본을 거쳐 올해 K리그로 복귀한 하성민(경남)은 적으로 만난다. 둘 다 미드필더여서 맞대결이 흥미롭다. 같은 포지션(골키퍼)으로 상대하는 이범영(강원)-이범수(경남)의 대결도 볼만하다. 이들은 K리그 최초의 형제 골키퍼다.

1부와 2부 리그로 나뉘어 서로의 승리를 염원하는 형제도 있다. 신태용호의 핵심 미드필더 이재성(전북)과 이재권(부산)의 경우다. 이밖에 박선용(아산)-박선주(강원), 이광훈(전 수원FC)-이광혁(포항), 한홍규(전 안산)-한석종(인천) 등도 함께 프로무대를 밟은 케이스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그들은 범상치 않다. 형제선수를 통해 나올 수 있는 스토리는 무궁무진하다. 올 시즌 K리그를 더욱 풍성하게 해줄 이야깃거리를 이들 형제들이 많이 쏟아냈으면 한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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