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장인들이 만드는 ‘장인들의 이야기’

입력 2018-04-0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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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일 국가무형문화재 김인-황영보 백동연죽장-박기하 상쇠(왼쪽부터). 사진제공|수류산방

■ 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 자서전

무형문화재 전승자 20명 구술 받아 정리
방대한 ‘날것’의 데이터를 20권 전집으로
“해야만 하는 일”…‘수류산방’ 소신 눈길


오늘은 공연이 아닌 책 이야기를 좀 들려드릴까 합니다. 참 희한한 책입니다.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합니다. 실은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을까”가 더 궁금할 지경입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 자서전’이라는 책입니다. 무려 스무 권짜리 전집이죠.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에서 발간을 했습니다.

어떤 책인지 감이 오시나요. 우리나라에는 많은 무형문화재와 전승자 분들이 계시죠. 역사와 전통의 의미가 있는 특정분야의 장인들이십니다. 안타깝지만 상당수가 ‘마지막 장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형문화재 전승자 스무 분으로부터 구술을 받아 정리했습니다. 방대한 날것 데이터를 스무 권으로 추리는 작업도 큰일이었을 겁니다.

스무 명의 전승자들은 대부분 20세기 초반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8.15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6.25전쟁, 5.18민주화운동을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를 몸으로 관통해온 분들이십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구술을 받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고령인 분들도 계십니다.

이 시리즈 첫 권의 주인공은 갓일 국가무형문화재(제4호)이신 김인 선생이십니다. 바둑계의 원로이신 김인 국수와 동명이지만 여성분이시죠. 갓일은 갓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위로 튀어나온 부분(총모자)을 만드는 장인이시죠. 무려 세 명의 장인이 들러붙어야 만들 수 있는 게 갓입니다. 테두리(양태) 만드는 장인이 따로 있고, 양태와 총모자를 엮는 장인이 또 있습니다.

푸른 오동으로 금을 만드는 이영수 악기장(제42호), 대나무를 엮어 짠 채상을 만드는 서한규 채상장(제53호), 장도의 전통을 구현한 박용기 장도장(제60호), 담뱃대를 만드는 황영보 백동연죽장(제65호)의 인생도 만날 수 있습니다.

“배뱅이가 왔구나”의 서도명창 이은관(왼쪽)-12가사를 완성한 이양교. 사진제공|수류산방


시리즈의 후반부 절반은 소리꾼, 춤꾼의 이야기입니다. 강릉 농악의 박기하 상쇠(제11-4호), 강령탈춤 전수자 김실자(제34호), “배뱅이가 왔구나”의 서도명창 이은관(제29호), 12가사를 완성한 이양교(제41호) 등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가 우리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것들이 우리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에 젖게 됩니다.

그리고 또 궁금해집니다. 도대체 이런 책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수류산방이란 곳입니다. ‘나무들이 흘러 숲을 만들겠다’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아는 사람들은 수류산방을 두고 ‘누가 만들어도 잘 팔리는 책’보다는 ‘누군가는 만들어야 하는, 그것도 잘 만들어야 하는 책’을 만드는 곳이라고 합니다. ‘예술사 구술 총서’, ‘모시한산: 언저리의 미학’, ‘이웅노의 집 이야기’, ‘20세기 건축의 모험’ 등을 냈죠. ‘예술인·生’으로 코리아디자인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시리즈의 각 권을 한 장 한 장 넘깁니다. 스무 권이 끝이 아니랍니다. 올해 추가로 열다섯, 내년에 열넷. 도합 29명의 이야기가 더 남아 있답니다. 장인들이 만드는 장인들의 이야기. 말만 들어도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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