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인 “떨렸던 오프닝 무대, 웃음 가득했던 北 가수들…아직도 꿈꾸는 것 같아요”

입력 2018-04-11 06:57: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평양 공연에 참여한 가수 정인은 마지막 무대를 마치고 북측 가수들과 가진 환송 만찬 후일담을 꺼내며 “서로 언니, 동생 하면서 술잔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남북한 가수들은 훗날 만나면 편안한 호칭을 쓰자고 약속했다. 사진제공|미스틱엔터테인먼트

■ ‘봄이 온다’ 평양 공연 마치고 돌아온 정인

‘오르막길’ 시작의 의미로 선곡된 듯
北 가수들과 ‘언니’ ‘동생’ 하며 수다
남편 조정치에겐 평양술 사다줬죠


북한에서 ‘평화의 봄’을 알리고 돌아온 가수 정인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했다. 13년 만에 평양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 공연이 한반도를 촉촉이 적신 지 열흘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꿈꾸고 있는 것” 같단다.

10일 서울 한남동에서 만난 정인은 평양공연 준비과정부터 두 차례 공연과 마지막 날 열린 만찬까지, 평양공연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3월 중순 정부로부터 북측 공연을 제의받고 공연을 하기까지 제대로 연습하기도 부족한 날이었지만 “떨리는 마음을 감추고 최대한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노래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정인은 1일 동평양대극장과 3일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 공연 - 봄이 온다’에서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피아니스트 김광민의 연주곡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를 허밍으로 부른 후 자신의 노래 ‘오르막길’을 열창했다. 이후 동료 가수 알리와 ‘얼굴’을 듀엣으로 들려줬다. 2012년 ‘월간 윤종신’으로 발표된 ‘오르막길’은 1월 문재인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 시작 전 회견장 내에서 흘러나온 노래기도 하다.

‘한 걸음 이제 한 걸음일 뿐 / 아득한 저 끝은 보지 마 /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 그러면 견디겠어 / 사랑해 이길 함께 가는 그대여…’라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우리가 갈 길이 힘들겠지만 흔들리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자는 내용이 남북한의 상황을 잘 대변해준다는 의미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 공연 최종 리허설에서 ‘오르막길’을 열창하고 있는 정인. 사진|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정인은 “곡이 가진 의미가 ‘시작’이라는 느낌이 있어 선곡된 것이 아니겠느냐”며 “희망찬 느낌이 잘 맞아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남측 예술단 수석대표인 가수 윤상은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최고의 오프닝이었다. 정인이 없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허밍으로 포문을 열고 ‘오르막길’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정인은 자신이 공연 오프닝을 맡게 된 것을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조용필 기획사 YPC프로덕션에서 진행한 합동연습에서 처음 알았다. 공연 순서를 보자마자 “오!” 하고 짧은 감탄사가 나왔단다. 오프닝에 대한 부담이었다.

“아무래도 공연의 시작이라 부담스러웠다. 우리(가수)끼리는 농담으로 ‘빨리 하는 게 낫다’고 했지만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과거 북한 관객의 호응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매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터라 “호응이나 반응을 생각하지 말고 노래에만 집중하자”고 다짐했다.

“사실 제가 그동안 해왔던 공연도 반응이 크게 없었던 적도 많았다.(웃음) 관객의 호응은 두 번째 공연에서 남북한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무대에서 크게 느꼈다.”

정인을 포함해 조용필, 이선희, 최진희, 백지영 등 총 11팀(명)의 가수들은 3월31일 전세기를 타고 평양에 도착했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륙한 지 40분 만이었다.

“도착했을 때도 별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각 가수마다 2명씩 안내원이 전담해 주의사항을 전해주고 편의를 봐줬다. 4일간 함께 다니며 친분도 조금 쌓았다. 하하!”

가수 정인. 사진제공|미스틱엔터테인먼트


1일 첫 공연을 마쳤고, 2일에는 3일 열리는 공연을 위해 남북 가수들과 함께 리허설을 진행했다. 리허설 후 옥류관에서 먹은 평양냉면은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잊지 못할 추억 중 하나다.

“맛있었다. 스타일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동남아에서 음식을 먹으면 다른 느낌이 들지 않나. 하지만 평양냉면은 다른 문화권에서 음식을 먹는 느낌은 아니었다.”

3일 밤 열린 환송 만찬도 마찬가지다.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주재로 열린 환송 만찬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지정석이라 딱딱한 분위기일 거라 생각했다. 노래도 같이 하고 술도 마시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북측 가수들하고도 서로 ‘언니’ ‘동생’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나중에 볼 일 있으면 꼭 언니나 동생으로 부르자고 했다. 북측 삼지연관현악단 현송월 단장이 여러 사람에 술을 권하느라 꽤 술을 마셨는데, 결국 마지막엔 술을 남겼다. 저는 술을 마시느라 귀담아 듣지는 않았지만 ‘개성 있는 목소리’라고 칭찬해주는 건 들렸다. 하하하!”

1일 공연은 3일 공연보다 관객 수도 적었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참석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당시 정인은 김 위원장이 관람한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관객의 박수소리가 오래 들렸는데 그때 온 것 같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님도 뉴스에서 보던 분 아닌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제 자연스럽게 관심은 ‘가을이 왔다’에 쏠린다. 김 위원장이 ‘봄이 온다’ 공연을 관람한 후 남측에 가을 공연을 제안하면서 거론한 공연 제목이다.

“물론 제의가 온다면 기꺼이 또 참석하고 싶다. 하지만 새로운 가수들이 출연하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공연이 아니지 않나.”

가수 정인. 사진제공|미스틱엔터테인먼트


정인은 이제 본업 겸 부업인 육아와 새 앨범 작업을 하고 있다. 정인이 평양 공연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육아를 맡은 남편 조정치에게 “미안해”서 평양에서 맛있는 술 한 병을 사왔지만 아직까지 회포를 풀지 못했다. 그는 “40도가 넘는 술인데 정말 맛있더라. 남편에게 고생했다고 한잔 따라줘야겠다”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