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함께한 최은희·신상옥 ‘영화 같은 동행’

입력 2018-04-18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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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은희는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다.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통해 전통적인 한국 여인의 애틋한 삶을 보여줬고(왼쪽), 2001년에는 고 신상옥 감독과 뮤지컬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도 했다(오른쪽 아래).

배우·감독·여성 주례 1호 ‘화려한 이력’
78년 납북 후, 찾아나선 신상옥도 납치
‘소금’으로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

다큐 ‘연인과 독재자’에 생생한 탈출기
94년 남편이 칸 심사위원 위촉 기쁨도


원로배우 최은희가 향년 92세를 일기로 16일 타계한 뒤 그의 극적인 삶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미 2006년 세상을 떠난 남편 신상옥 감독과 함께 이어간 결혼 생활과 납북과 탈북 등 화려하면서도 신산했던 삶은 마치 영화처럼 그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오랜 잔향으로 남아 있다.

1926년생인 최은희는 열여덟의 나이에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에 나선 그는 1950년 전쟁의 와중에 고 신상옥 감독을 만나 3년 뒤 결혼했다. 하지만 1977년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힘겨운 삶은 이듬해로 이어졌다. 1월 홍콩에서 납북된 것이다. 그가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을 접한 신 감독은 일본과 프랑스 등을 돌며 전처를 직접 찾아 나섰다. 하지만 그마저도 8월 일본에서 잠적됐다는 소식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결국 그 역시 7월 이미 납북된 사실이 알려졌다. 두 사람의 납북 사실은 1984년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돌아오지 않은 밀사’, ‘소금’과 ‘탈출기’ 등 1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특히 최은희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두 사람은 1986년 3월 독일 베를린 국제영화제 참석을 기회로 파리를 거쳐 오스트리아에서 일본 교도통신 기자 등과 함께 빈 주재 미국 대사관을 통해 탈출했다.

두 사람의 납북과 탈출 과정은 2016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연인과 독재자’에 자세히 담겨 있다. 영국 출신 로버트 캐넌과 로스 애덤 감독이 연출한 98분 분량의 ‘연인과 독재자’는 신상옥·최은희의 만남부터 납북, 북한에서의 생활, 8년 후 목숨을 건 탈출 과정이 생생하게 담겼다. 특히 납치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육성이 담겨 있다. 또 두 사람이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포함돼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연인과 독재자’. 사진제공|엣나인필름


신 감독은 영화 속에서 목숨을 걸고 김정일의 육성을 녹음한 이유에 대해 “남한으로 돌아가게 되면 우리의 이야기를 믿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진실을 밝혀줄 유일한 증거”라고 말했고, 최은희는 “김정일을 만날 때마다 핸드백에 녹음기를 몰래 숨겨갔다”고 말했다.

최은희는 돌아와 신상옥 감독과 여생을 보내던 1994년, 남편이 제47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 기쁨을 맛봤다. 한국 영화인으로는 처음으로 심사위원이 된 신 감독은 심사위원장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과 함께 레드카펫을 밟았다.

최은희는 1965년 ‘민며느리’ 등 세 편의 영화를 연출한 여성감독이기도 했다. ‘민며느리’로 연출과 연기의 1인 2역을 해내며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1972년 10월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 스카이라운지에서 결혼하는 후배 연출가 이장호 감독의 결혼식에 한국 최초의 여성 주례로 나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감독이 신상옥 감독의 조감독이었던 인연으로 최은희가 남편 대신 주례에 나섰다.

이처럼 최은희는 한국 최고의 여성배우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동시에 극적인 삶 속에서도 이어간 다양한 이력으로 늘 관심을 모아왔던 스타였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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