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를 기억해’ 이유영 “스릴러 퀸이요? 사실 공포영화도 무서워서 못 봐요”

입력 2018-04-19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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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를 기억해’로 돌아온 배우 이유영. 연기력을 인정받는 만큼 최근 그를 찾는 영화 제작진도 늘었다. 여러 제안 가운데 주로 어둡고 무거운 역할을 소화해온 그는 “이젠 밝게 웃어 보이는 연기로 관객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사진제공|오아시스이엔티

■ 영화 ‘나를 기억해’에서 스릴러 진수 이유영

“성범죄 경각심 깨우려 출연 결심
극한의 역할 빨리 빠져나오는 편
솔직한 쓴소리…동생은 내 멘토
쏟아지는 시나리오, 배우라 행복”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숱한 사람들과 관계 맺으면서 살아가야 하고, 사회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배우라고 예외는 아니다. 다만 일반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평소 ‘꿈꾸는 인물’을 연기로나마 그려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배우 이유영(29)의 삶은 상당히 만족스럽게 보인다. 그를 주목받게 한 영화 ‘봄’부터 신인상을 안긴 ‘간신’, 연기력을 확인시킨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까지, 지금껏 주연한 영화에서 언제나 자신이 중심이 돼 삶을 개척하는 인물을 그려왔다. 이유영은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에 많이 끌리는 게 사실”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현실에선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평소엔 주변에 조금끌려 다니는 편이다. 주체적이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런 답답함을 연기로 풀어보고 싶은 마음이 내가 선택하는 영화들에 묻어나고 있다.”

마치 노래를 읊조리는 듯 부드럽게 이어지는 이유영의 말투는 대화 상대를 그대로 빠져들게 하는 힘을 지녔다. 어느 작품에서든 그의 연기가 돋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목소리 덕도 있다.

그런 이유영은 실제 모습과 달리, 최근 스릴러 장르에 치중하고 있고, 대부분 흥행에도 성공했다. 19일 개봉한 새 영화 ‘나를 기억해’(감독 이한욱·오아시스이엔티)도 마찬가지. 지난해 주연한 OCN 드라마 ‘터널’을 통해 스릴러 장르에서 실력을 발휘했고, 앞서 참여한 영화 ‘그놈이다’로도 주목받았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스릴러 퀸’이라고 부른다.

“그 호칭에 나는 떳떳하지 못하다. 하하! 그런 평가에 맞게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른 작품이나 배우들과 나를 비교하는 일도 어렵다. 실은 스릴러나 공포영화를 못 보거든. 왜냐고? 악몽을 너무 많이 꾸니까. 슬프거나 무섭고 어두운 이야기는 웬만하면 거리를 둔다.”

영화 ‘나를 기억해’에서의 이유영. 사진제공|오아시스이엔티


● “고통스러운 역할 하지만 빨리 빠져나온다”

‘나를 기억해’는 이유영이 스릴러 장르에서 보이는 진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벌이는 성범죄, 그 가운데서도 몰래 촬영한 영상을 통한 무차별적인 피해 확산, 청소년까지 가담한 범죄의 심각성까지 드러내는 영화는 빈틈을 찾기 어려운 구성으로 사건과 인물을 설계했다.

이유영은 “여성 캐릭터가 시작부터 끝까지 이끌어나간다는 점, 결말이 안긴 충격, 사람들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기회가 될 거라는 마음”에 출연을 결심했다. 영화에서 성범죄 피해라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인물을 소화한 탓에 후유증을 겪지 않았을까 우려되지만 오히려 그는 “고통스러운 역할에선 빨리 빠져나온다”고 했다.

“며칠 전에 단막극(MBC ‘미치겠다, 너땜에!’)을 촬영했다. 작품의 영향인지 조울증인가 싶을 정도로 웃음이 터졌다. ‘터널’때 만난 스태프를 이번 촬영장에서도 만났는데 내가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하더라.”

연기자라는 직업의 영향일까. 여러 작품에서 서로 다른 인물로 살아갈 때가 많은 이유영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연기를 통해 계속 배워가다 보니 사람을 바라보는 이해심도 그만큼 넓어진다”고 했다. 뉴스나 다큐멘터리 속 사람들을 보면 특히 더 공감된다.

“그러면 안 되는데, 나쁜 일을 벌인 사람들의 마음이나 행동까지도 이해되는 때가 있을 정도다.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받아들이려 한다. 멈추지 말고 사람을 향한 이해까지 넓혀나가고 싶다.”

배우 이유영. 사진제공|오아시스이엔티


● 남동생의 쓴소리 “상처받지만 소중해”

이유영은 1남1녀 중 맏딸. 3살 어린 남동생은 올해 대학을 졸업했다. 나이차가 크지 않아 친구처럼 지낸다는 남매는 가족 관계를 넘어 “냉철한 조언자” 역할도 하고 있다. 이유영은 자신의 연기는 물론 입는 옷이나 외모까지 꼼꼼하게 평가해주는 남동생을 “나에게 쓴소리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으로 꼽았다.

“연기가 이상하다, 얼굴이 왜 그러냐 등등등. 나에 대한 가장 솔직한 말을 들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남동생이다. 처음엔 짜증나고 상처도 받았다. 하지만 동생만큼 솔직한 코멘트를 해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소중하다. 뭔가 판단이 안 설 땐 바로 동생한테 묻는다. 나의 멘토이다.”

이유영은 배우 김고은, 박소담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동기이지만 나이는 두 살 더 많다. 대학 진학보다 취업을 먼저 했기 때문. 중·고등학생 때 동대문이나 명동 거리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자주 받곤 했지만 연예계 활동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르고 키가 커서 그런지 사람 많은 동네 가면 기획사 명함들을 좀 받았다. 마음은 있어도 어떻게 연기자가 되는지도 몰랐다. 그땐 내가 예쁜 줄 알았다. 데뷔하기 전까지는 그런 줄 알았다. 하하!” 그러면서 자신의 유년시절을 ‘확인’시켜주려는듯 휴대전화에 담긴 어릴 적 사진 몇 장을 꺼내 보여줬다. 여배우는 아무나 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케 한 ‘모태미녀’ 시절의 사진들이 나왔다.

이유영은 ‘나를 기억해’를 시작으로 올해 영화 ‘허스토리’와 ‘풀잎들’로 연이어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출연하기로 마음먹은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하반기에는 로맨틱코미디 드라마 출연도 계획한 상태. 그는 “시나리오와 드라마 대본을 많이 받고 있어서 아직 전부 읽어보진 못했다”며 “이런 게 배우가 느끼는 행복인 것 같다”고 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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