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18.44m] SK의 봄은 어떻게 다시 왔을까

입력 2018-04-26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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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힐만 감독. 스포츠동아DB

#주말 사직 3연전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려는 22일 밤, 부산역에서 ‘뜻밖에’ SK 선수들을 만났다. 원래 그 시간이라면, 인천행 구단버스를 타고 있어야 했다. 선수단 전체가 역에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 구단 운영팀이 KTX 한 칸을 통째로 예약한 것도 아니었다. SK 트레이 힐만 감독의 방침이었다. “일요일에 원정경기가 끝난 뒤 일찍 집으로 가고 싶은 선수는 굳이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된다. 알아서 기차표를 끊어서 올라가라”는 약속을 했고, 처음 시행한 것이다. 힐만 감독도 통역과 함께 부산역에 나타났다. 삼삼오오 자기가 예약한 기차로 향하는 선수들의 표정에서 ‘이렇게 따로 움직여도 되나?’라는 불안감은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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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식회사’라는 책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고어텍스, 할리데이비슨 같은 회사들이 통제가 아닌 자율의 가치를 도입해 어떻게 효율성을 올렸는지를 다룬 책이다. ‘최고의 성과는 지시 받았을 때가 아니라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이유와 목적을 이해했을 때 나온다’고 설파했다. 즉 ‘기꺼이 움직이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느냐가 조직의 성패를 가른다는 논점이다. 책은 ‘아무리 뿌리 깊은 조직문화라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SK에 관점을 맞추면, 이 팀이 그 조직문화를 바꾸는데 약 1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그 시절 SK의 가치관은 왕조의 영광을 안겼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며 SK도 방식을 바꿔야 했다. 시행착오는 괴로웠지만 SK는 변화를 택했고, 이제 수확의 시간이 오고 있다.

2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2018 신한은행 마이카 KBO리그’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가 열렸다. 연장 10회말 2사 3루에서 SK 노수광이 끝내기 스퀴즈 번트를 성공한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018시즌 초반, SK는 두산과 양강 체제를 이루고 있다. 홈런을 많이 치고 선발은 강력하다. 2017시즌 동기 대비 관중증가율은 10개 구단 중 단연 1위다. 성적, 흥행, 팀 컬러가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가장 주목할 지점은 ‘어떻게 SK가 변했는가’에 있다. 선수의 자율성을 끌어내는 코칭, 위계가 아닌 소통으로 움직이는 클럽하우스 문화, 약점보다 장점을 부각하는 관대함 등이 바닥에 깔려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팀 배팅 강박증’을 탈피해, 자기의 플레이를 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야구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SK는 25일 1위 두산을 연장 10회 접전 끝에 7-6으로 잡았다. 불안요소도 적지 않지만 그 이상의 긍정이 이 팀을 휘감았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SK가 야구를 하는 의미를 재설정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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