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속았다’ · 전직 담당기자가 본 이장석

입력 2018-06-0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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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 이장석 전 대표. 스포츠동아DB

왜 모두가 ‘빌리 장석’에게 속았을까.


불과 2016년까지 넥센 히어로즈는 고교야구 선수들이 가장 가고 싶은 구단이었다. 입단식 때 1차지명 선수부터 드래프트 마지막 10라운드 선수의 부모까지 모두 초청해 대표이사가 감사인사를 하고 “우리 구단은 모든 신인에게 최소 3년의 시간을 보장한다”고 약속하는 팀이었다. 메이저리그의 꿈을 향해 함께 뛰는 팀, 과감히 신인에게 기회를 주는 구단으로 보였다. 현재 프로야구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타 팀의 한 선수도 고3 때 “갈 수만 있다면 넥센에 가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구단 중 유일한 오너 경영자였던 이장석(52) 전 넥센 히어로즈 대표이사는 한때 한국스포츠의 산업화를 이끄는 개척자로 불렸다. 미디어는 칭송했고 팬들도 놀랍게 강해지는 팀 성적을 보며 열광했다.


기자도 속았다. 2015년 그의 혁신적 경영과 야구를 바라보는 혜안에 대해 칭송하는 기사를 두 차례 썼다. 한번은 매우 긴 분량으로 주간지에 기고도 했다. 물론 당시만하더라도 이 전 대표의 불법적인 횡령, 규약을 어긴 현금 트레이드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다시 기사를 찾아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히어로즈 이장석 전 대표. 스포츠동아DB


기자는 2009년 처음 넥센 히어로즈를 담당했다. 당시 이 팀은 ‘넥센’이라는 메인 스폰서도 없었다. 그해 시즌을 앞두고 이 대표는 전신 현대의 마지막 사령탑이었던 김시진 감독을 다시 영입했다. 선수들의 연봉 정상화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사기꾼’ 이미지를 바꾸기 위함이었는지 담당 기자들과 자주 만났다.


담당기자로 첫 인사를 나누던 자리에서 느낌은 이랬다. ‘왜 미국 교포도 아닌데 영어억양이 이렇게 강할까. 이 사람 유학도 미국이 아닌 프랑스(인시아드 MBA)로 다녀왔으면서….’ 얼마 후 목동구장 한쪽에서 홀로 경기를 보는 이 대표를 근처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이 대표는 경기 내용이 마음에 들면 감탄사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국말로 욕설을 내뱉었다. 자주 주먹도 불끈 쥐었다. ‘과도한 몰입’, 혹은 ‘진정한 야구사랑’ 어느 쪽이 맞는지 헷갈렸다.


두 번째 꽤 긴 시간 대화를 나눴을 때 ‘달변가’란 생각을 했다. 자신감으로 가득하지만 오만하지는 않았다. 선수출신, 지도자, 베테랑 기자 등 앞에서도 자신의 야구 이론을 적극적으로 앞세우며 토론을 즐긴다. 상대방을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과 동화시키기 위해 애쓴다. 생각보다 상대의 벽이 높아도 절대 초조해 하지 않는다.


이후 자주 마주한 이 전 대표는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이 보였다. 어려운 질문을 던져도 웃으며 ‘좋은 질문이야, 왜 이제 물어봐?’라는 듯한 표정으로 답변을 쏟아냈다.


대표이사로는 파격적으로 매년 신인지명회의 테이블에 스카우트들과 함께 앉았다. 80여명의 고졸, 대졸 신인들에 대한 온갖 정보를 다 외우고 있었다. 신문사가 주최하는 고교야구대회에서도 수차례 마주했다. 솔직히 그보다 고교선수에 대해 잘 몰라 말문이 막힌 적도 있다.


2009시즌이 끝난 후 넥센은 주축 전력을 현금을 받고 대거 트레이드했다. 그 영향으로 2010년 넥센은 3할대 승률로 7위에 그쳤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이 대표는 “2013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더 나아가 우승에도 도전하는 해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절로 “정말 자신 있느냐”고 물었다. 속으로는 ‘무슨 자신감이야? 선수들 다 내보내서 전력이 이 모양인데’라는 흉을 봤다. 그런데 넥센은 2013년 가을야구에 진출했고, 한국시리즈까지도 갔다. 강정호(피츠버그)와 박병호를 미국으로 보내고 이적료를 받아 막대한 매출도 올리는데 성공했다. 구단 경영자로서 이 전 대표가 절정의 시간을 보낼 때다.


그때 이 전 대표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사기꾼이라고 하더니 다음에는 바보 소리를 들었다. 이제 조금씩 인정을 받는 것 같다. 히어로즈는 절대 팔지 않는다. 영원히 행복한 구단주로 남고 싶다.” 기자라는 직업은 언제 어디서나 비판의식으로 철저히 무장해야 하지만 아무도 이루지 못한 성과를 보며, 그리고 굉장히 소탈한 모습에 점점 더 높은 평가를 했다.


그렇게 당했다. ‘사기꾼은 절대 사기꾼 티가 나지 않는다’는 말을 이제 공감한다. 혁신가로 행동하며 뒤에서는 온갖 역겨운 행동으로 대한민국의 큰 자산인 KBO리그 전체를 농락했다. 이제 모든 것을 철저히 밝히고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때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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