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의 라스트 씬] 메시를 슈퍼스타로 키운 건 8할이 꿈이었다

입력 2018-07-16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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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과 함께 꿈은 어느새 아스라한 추억으로만 돋아나는 것일까. 꿈을 부여잡고 살아가기 힘겨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꿈을 꾸며 지나온 세월이 아니었다면 추억 역시 헛될 터이다. 살아가야 할 앞날은 그리 팍팍하지 않기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꿈 하나로 버거운 세상을 버텨온
무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처럼
메시의 마지막 꿈인 월드컵 우승
늘 그랬듯 그 꿈의 무게를 견뎌라


“위대한 선수의 교대!”

영국 BBC는 리오넬 메시(31)와 킬리안 음바페(20·파리 생제르맹)의 포옹 장면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1일(한국시간) 2018 러시아월드컵 16강전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경기가 끝난 뒤였다. 이날 프랑스는 아르헨티나를 4-3으로 무너뜨렸다. 메시와 음바페는 서로를 격려하며 안았다.

경기를 지켜본 전 세계 축구 팬들은 아마도 BBC의 시선에 공감했을지 모른다. 메시는 이번 월드컵에서 이렇다 할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반면 이날 음바페는 두 골을 넣고 페널티킥을 이끌어냄으로써 ‘축구황제’ 펠레 이후 또 한 명의 천재가 태어났음을 알렸다.

메시의 쓸쓸한 퇴장 그리고 혜성처럼 떠오른 ‘무서운’ 신예 음바페가 서로 껴안는 모습은 분명 한 시대가 떠나고 또 다른 한 시대가 다가옴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질 만했다.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리오넬 메시(왼쪽)와 프랑스 축구대표팀 킬리안 음바페.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슈퍼스타의 ‘최초, 최고, 최다…’

음바페는 이날 경기에서 “우사인 볼트가 200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9.58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울 때 평균 속도 37.58km/h”를 연상케 하는 “스프린트 스피드 38km/h”(독일 베르너모젠포스트 보도)로 질주했다. 그의 폭발력을 막을 자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프랑스 ‘아트사커’의 또 다른 표상인 티에리 앙리의 뒤를 잇는 스타플레이어로, 어느새 메시가 내어준 ‘슈퍼스타’의 자리로 뛰어올랐다.

음바페가 꿈꾸는 선배 티에리 앙리는 2010년 메시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볼과 함께 그런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 상대를 완전히 무력화시킨다. 그것도 정말 쉽게 말이다. 내가 아무리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도 결국 안 될 것이다. 그는 언제나 한 발 나아갈 때마다 볼을 터치한다.”(위키백과)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리오넬 메시는 오랜 세월 ‘슈퍼스타’의 이름에 값해왔다.

그는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축구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상을 무려 다섯 번이나 거머쥐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명문 클럽 FC바르셀로나 소속인 그는 2017-18 시즌만 해도 36경기 출장에 34득점, 12도움, 46공격포인트 등 모두 1위의 성적으로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의 라이벌로 꼽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전 레알마드리드)의 27경기 출장, 26득점, 5도움, 31공격포인트를 크게 앞지르는 성적이다.

2003년 16세의 나이에 프로 1군의 세계로 뛰어든 메시는 프리메라리가 2008-09시즌에서 당시 펩 과르디올라 감독으로부터 인정받은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프리메라리가 정규 리그는 물론 ‘코파델레이’로 불리는 국왕컵,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의 우승 트로피를 모두 안는 ‘트레블’을 이뤘다. 2014-15 시즌에서 다시 한번 그 영광을 재현했다. 그 이전과 이후 그가 지닌 ‘최초, 최고, 최다…’의 기록은 숱하다.

하지만 메시는 2014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에서 눈물을 흘렸다. 독일과 맞붙은 결승전은 마리오 괴체의 골이 승부를 갈랐다. 연장 후반 8분이었다. 메시와 그의 조국은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메시는 대회 최우수선수로 꼽혔지만 침울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골든볼’ 트로피를 받았다. 그리고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뒤이어 아르헨티나는 코파아메리카에서도 개최국 칠레를 뛰어 넘지 못하고 준우승했다.

2005년 U-20 월드컵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우승컵과 금메달을 조국에 바친 영광도 그저 지난 일일 뿐이었다. 메시는 조국의 국기 속 흰색과 하늘색의 줄무늬가 굵게 새겨진 유니폼‘알비셀레스테’를 벗으려 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국민들은 그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

리오넬 메시.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꿈인 채 살아가기를

그러기까지 그가 흘린 눈물은 수없다. 아르헨티나의 철강노동자 아버지와 청소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메시는 축구를 좋아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공을 찼다. 키와 몸집이 작았지만 일찌감치 천재 소리를 들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성장 호르몬 결핍증이라는 희귀병은 미래를 어둡게 했다.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약값은 너무도 값비쌌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주사를 맞히기 위해 스페인으로 이주했다. 바르셀로나는 그를 받아들였다. 170cm의 단신으로, 공을 왼발에 달고 뛰는듯 수비수들의 틈새를 파고들어 공간으로 치고 나가는 솜씨와 정교한 킥 등 기량은 그런 어려움 끝에 쌓인 것이었다.

그렇게 ‘슈퍼스타’로서 그를 키워낸 건, 아니 스스로를 키운 건 주사가 아니라 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이전에 꿈 자체를 지니고 산다는 건 또 얼마나 힘겨운가.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내기에도 버거운 세상은 꿈이라는 단어를 간직하는 것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수안보의 촌스런 나이트클럽 무대 위에 오른 성우와 그의 밴드에게도 꿈은 언감생심이었을까. 음악을 꿈꾸고, 록 뮤지션을 바랐던 청춘과 이미 일찌감치 멀어진 그들. 시골동네의 고희연과 이런저런 향토축제만이 그들을 찾을 뿐이다. “음악 한번 해보겠다”며 이 꼴 저 꼴 다 봐가며 왔던 길이었다. “실력 있는 밴드, 한강 이남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밴드”를 꿈꿨지만 “야간업소의 비틀즈”로만 불릴 뿐이다. 밴드는 어느새 “7인조에서 하나둘 다 떨어져나가고. 이제 4인조”, 다시 3인조가 되어 알량한 무대를 지키고 있다.

결국 모두를 떠나보내야 할 위기에 놓인 채 성우는 룸살롱 노래 반주자로서 벌거숭이인 채로 연주를 해야 하는 비굴함을 맛보는데, 그때 흐르는 눈물은 회한인가, 패배의 아픔인가. “반주기에 번호만 딱 때려 넣으면 자기가 알아서 반주 다 해주는” 새로운 무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쉬움인가, 억울함인가.

메시가 음바페의 질주 앞에서 주저앉을 때 내보인 깊은 눈망울 속 복잡한 표정은 또 어떤 것인가. 세상은 그에게 ‘너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지 않느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지상파 방송의 한 해설위원은 프랑스를 이기지 못한 아르헨티나를 바라보며 29.2세(프랑스 26세)의 “평균 연령”을 운운했다. 그 ‘비논리적인’ 언급은 27.9세인 크로아티아의 결승행을 두고 ‘투혼’이라 말할 것인가.

성우에게 친구는 물었다. “우리들 중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 너밖에 없잖아.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하면서 사니까 행복하냐”고. 꿈인 채로 지나왔던 세월. 그래! 꿈은 이미 멀리 떠나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꾸어왔던 꿈으로써 행복했다면 앞으로도 오르지 못할 무대는 없을 터이다.

4년 뒤 카타르에서도 ‘알비셀레스테‘를 입은 멋진 메시의 모습을 보고 싶은 까닭이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최근 ‘리틀 포레스트’로 잔잔한 반향을 몰고 온 임순례 감독의 2001년 극영화 데뷔작. 고교 시절 록 뮤지션을 꿈꿨던 기타리스트 겸 보컬 성우(이얼)와 그가 이끄는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멤버인 키보드주자 정석(박원상), 드러머 강수(황정민)의 이야기. 무명밴드의 아픔과 설움 위에서 겪는 팍팍한 세상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어 더 아프고 서러운 이들이다. 박해일이 성우의 고교 시절을 연기하며 데뷔한 무대이기도 하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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