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송승준, 21세기 ‘베테랑’을 말하다

입력 2018-08-0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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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송승준은 ‘베테랑’ 대열에 합류한 지 오래지만 한참 어린 후배들과의 소통에도 큰 어려움이 없다. 선배로서의 권위보다 후배를 챙기는 ‘진심’을 앞세운 게 비결 아닌 비결이다. 스포츠동아DB

세상이 달라졌다. 더 이상 나이와 지위만으로는 어린 후배들을 통솔할 수 없는 시대다. 서로의 마음이 통해야 한다.

롯데 자이언츠 베테랑 송승준(38)은 후배들의 사소한 이야기에도 귀를 바짝 가져다 댄다. 걸 그룹을 주제로 한 대화가 이뤄지면 곁에서 잠시 듣고 있다가 “나도 안다”면서 슬그머니 대화에 참여하는 식이다. 괜히 분위기를 서먹하게 만드는 ‘아재 개그’도 고이 접어 넣어뒀다. 대신 후배들에게 적절히 눈높이를 맞춰주는 편안한 선배다.

롯데 마운드가 유독 젊기에 더욱 그렇다. 김원중(25), 박세웅(23), 윤성빈(19) 등 어린 선발진이 팀의 미래를 이끌어가야 한다. 송승준 역시 “나는 더 이상 팀의 중심이 아니다. 후배들 뒤에 서서 잘 받쳐주고 밀어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며 듬직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것이 롯데가 진정으로 강해질 수 있는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소통 못하는 베테랑은 왕따?

-덕아웃에서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옛날엔 선배들이 워낙 무섭고 하니 소통이 많지 않았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 선배라고 해서 함부로 후배들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면 오히려 반감만 산다. 별 것 아닌 듯 해보여도 후배 마음이 편해야 선배에게 먼저 다가와 이야기를 꺼낸다. 선배가 무서우면 앞에선 따를 수 있지만, 뒤에선 찾지 않는다.”


-어린 선수들과의 소통도 고참들에겐 중요한 과제가 된 것 같다.

“그렇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면 후배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걸 못 알아들으면 다음부터는 내 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 그래서 틈틈이 인터넷으로 젊은 후배들이 뭘 좋아하고 어떤 말을 쓰는지 알아보기도 한다. 이제 신조어도 조금 안다. 요즘 친구들은 줄임말도 많이 쓰더라. 일상생활에서부터 후배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눠야 야구장에서도 단합을 할 수 있다.”

롯데 송승준.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후배들이 먼저 다가오는 편인가?

“내가 먼저 다가가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은 못하겠다. 야구엔 정답이 없다. 사람마다 생각도, 방식도 다르다. 우리 세대엔 형들이 말하면 ‘네’하고 대답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냥 내 경험을 말해준다. ‘내 생각은 이런데 네가 한 번 해보고 너와 맞지 않다 싶으면 하지 마라. 맞는다면 네 것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식이다. 내 조언은 그저 어린 친구들이 응용할 수 있는 플러스 옵션일 뿐이다.”


● 오랜 노하우가 강팀을 만든다



-선발과 구원을 막론하고 팀을 위한 모든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송승준은 2일 현재 올 시즌 15경기에서 3승2패 평균자책점 5.51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곧 마흔이다. 내가 중심이 될 순 없다. 개인적으론 선수 생활을 하면서 FA(자유계약)도 해봤고, 한 시즌에 10승 이상씩도 해봤다. 통산 100승도 이뤘다. 오직 우승만 못해봤다. 어린 선수들이 팀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고참들이 뒤에서 조언도 해주고, 정신적으로 흔들리지 않게 도와줬을 때 시너지가 일어날 것 같다. 그렇게 우승도 하게 되면 후배들이 잘 해준 덕분에 우승컵도 한 번 들어보는 거지.”


-후배들 뒤에서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

“후배들이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걸 보면 ‘지금 저 선수가 멘붕이 왔구나’를 쉽게 느낀다. 나도 그런 상황을 수없이 겪어봤으니까. 내가 어릴 때는 그런 상황에서 ‘너 칠대로 쳐라’면서 던졌다. 이후엔 그 시간들을 정말 많이 후회했다. 7점 내줄 것을 5~6점으로 막고, 5회까지 어떻게든 버티면 타자들이 10점을 뽑아 승리투수가 될 수도 있는게 야구다. 이제 후배들에겐 ‘마운드에서 내려오기 전까지는 정신 줄 놓지 말고 끝까지, 할 때까지 해봐라’라고 말해준다.”


-후배들로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겠다.

“나는 30대 초반에야 깨달았지만, 원중이만 해도 20대 중반 아닌가. 내가 해준 이야기로 7~8년의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또 10~15년 후 후배들도 나처럼 나이를 먹으면 팀에서 고참이 돼 후배가 생길 거다. 내가 해준 이야기들을 응용해가며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챙겨주고, 또 그런 노하우들이 전통적으로 이어져야 강팀이 된다고 생각한다.”

롯데 송승준.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 안 될 거라고? 난 돼!

-중위권 싸움이 한창이다. 여러 팀이 아시안게임 브레이크 전까지를 승부처로 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단기전이다. 정말 기본적인 것 하나하나에 승패가 갈릴 것 같다. 기본이 잘 되어있는 팀은 기복이 심하지 않다. 롯데는 분위기를 많이 탄다. 얼마든지 뜨겁게 올라갈 수도 있지만, 거꾸로 바닥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 선수들도 잘 알고 있다. 기본이 모여 큰 것이 만들어질 수 있게끔 하다보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힘을 가진 팀이다.”


-2017년에도 ‘5강은 어려울 것’이란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2017년 원중이의 휴식을 위해 대체 선발(4월 25일 한화 이글스전)로 나선 경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모두들 ‘쟤는 안 되는데 왜 선발로 올리지?’라고들 했다. 혼자 비웃었다. ‘내가 어떻게 던지는지 잘 봐라’ 하면서. 그날 승리투수(시즌 첫 승)가 됐고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모두가 ‘끝났다’고 했지만, 2017시즌 11승을 했다. 누가 ‘안 된다’고 하면 꼭 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2017년 (후반기 초반만 해도) 아무도 롯데가 포스트시즌에 오른다고 예상하지 않았지만, 선수단에선 ‘우리는 간다’고 생각했다. 올 시즌에도 보란 듯이 5강에 가서 ‘모두들 안 된다고 했지만, 우리는 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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