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청순하고 단아한 매력을 뽐내온 배우 수애는 영화 ‘상류사회’에서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로 출연한다. 그는 “지금껏 가보지 않은 세계에서 내가 채우지 못한 걸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변신의 배경을 설명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욕망의 다른 이름은 열정!
누구든 욕망을 가지고 있잖아요
극중 노골적인 오수연처럼…
‘상류사회’ 통해 날 돌아보는 계기
나만의 뭔가를 위해 현재 여행중!
해도 해도 만족할 수 없는, 오히려 갈증이 커지는 직업 가운데 하나는 배우인 것 같다. 경력을 쌓아가는 배우들 가운데 자신의 연기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이를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도리어 연기는 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다고 털어놓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배우 수애(39)도 “배우로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파격’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역할로 영화 ‘상류사회’(감독 변혁·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에 과감하게 나선 이유다. 청순의 아이콘이자, 단아한 매력으로 오래 사랑받은 그이지만 “지금껏 가보지 않은 세계로 가면 내가 채우지 못한 걸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했다.
영화 ‘상류사회’에서의 수애.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베드신? 충분히 논의했고, 촬영은 원활했다”
‘상류사회’는 노골적인 제목처럼 이야기도, 등장인물도 ‘속물’에 가깝다. 그들만의 ‘룰’을 통해 견고한 카르텔을 꾸린 상류사회로 진입하려는 중산층 부부의 이야기가 큰 줄기다. 수애는 재벌가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의 부관장. 그의 남편(박해일)은 대중적 인기를 얻어 국회의원 공천을 받은 경제학 교수다. 남부러울 것 없는 부부는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를 욕망에 휘말려 더 높은 곳을 향해 질주한다.
영화 속 수애는 무척 낯선 모습이다. 이번처럼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을 소화한 적은 없다. 욕망을 감추지도 않는다. 수애는 “호기심이 생겼다”고 했다.
“오수연이란 인물이 가진 당당함이 매력적이다. 게다가 진짜 상류사회가 어떤 곳인지 나는 알 길이 없지 않나. 일그러진 욕망으로 야망을 좇는 이야기가 궁금했다. 2등인데 굳이 1등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베드신을 소화하는 과정도 부담이 크지 않았다. 옛 연인이자, 잘나가는 아티스트(이진욱)와의 짧은 외도는 극 흐름에 전환이 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수애는 “촬영 전부터 감독님과 충분히 논의했고, 덕분에 촬영 현장에선 원활하게 찍었다”고 돌이켰다.
사실 누구에게나 욕망은 있다. 크든 작든, 실현하든 포기하든, 저마다 가진 욕망의 무게가 다를 뿐이다. 수애는 “욕망의 다른 이름은 열정 아닌가”라고 수긍했다.
“난 욕망이란 단어가 싫어 그걸 열정이라고 말해왔다. 영화에서 남편을 향해 ‘네 꿈은 원대한 꿈이고, 내 꿈은 ‘X밥’이냐’는 대사를 한다. 태어나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욕지거리였다. 하하! 바로 그 대사가 나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금수저’의 세계로 진입하는 건 불가능하다. 영화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금수저의 세계를 향해 ‘어퍼컷’을 날릴 기회는 있다. 영화에서 수애가 이를 실현한다. 그가 왜 그토록 이번 작품을 욕심냈는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배우 수애.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요즘 염두에 두는 건 편안함…명상과 여행 즐겨”
수애는 영화 한편을 찍고 나면 자신을 돌아볼 때가 있다. 이번 ‘상류사회’를 마치고서는 자신을 돌아봤다고 했다. 함께 호흡한 배우 박해일로부터 받은 영향, 촬영 현장에서 새삼 느끼는 자신의 위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박해일은 수애의 ‘상류사회’ 도전에 힘을 보탠 결정적인 존재다. 수애에게는 “늘 함께 연기하고 싶었던 선배”인데다, “영화를 대하는 자세에서도 배울 게 많았다”고 했다. 어느덧 제작 현장에서 ‘선배’의 위치가 된 수애는 점차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요즘 가장 염두에 두고 추구하는 건 편안함이다. 선배의 입장이 됐는데 후배들이 나를 볼 때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박해일 선배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 나는 과연 후배들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늘 배움의 과정이다. 반성도 많이 한다.”
‘현재’를 담담하게 꺼내는 수애는 지나온 ‘과거’도 덤덤하게 풀어냈다.
“첫 드라마가 MBC ‘베스트극장’이었고 그 뒤 드라마 ‘러브레터’를 할 때도 중저음 목소리 때문에 제약이 많았다. 감독님이 ‘너 때문에 채널 돌아간다’면서 목소리 톤 높이라고 혼을 내기도 했다.”
핸디캡이 될 수도 있었지만 수애는 그 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목소리가 좋다고 했다. 단아한 이미지도 자신에게 다양한 기회를 안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환경이 바뀌는 건 당연지사. 수애는 “지금은 (작품)선택의 폭이 줄어든다. 그런 환경에서 내면을 단련하고,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물론 여유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도 했다.
배우 수애.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얼마 전부터 초월명상을 배우고 있다는 그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혼자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있다. ‘상류사회’ 촬영을 마치고는 혼자 벨기에를 다녀왔다. “배우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만의 ‘뭔가’가 필요해 명상과 여행을 한다”고 했다.
요즘은 세계 어딜 가든 한국인을 만날 수밖에 없다. 알아보는 이도 많을 텐데 어떻게 혼자여행을 즐길까.
“아무도 못 알아볼 정도로 꽁꽁 싸매고 다닌다. 모자 푹 눌러쓰고 운동복에 운동화 신고 다니면 아무도 모른다. 하하! 혼자 다니면 동전을 많이 줍는다. 언젠가 친구한테 동전 줍는 얘길 했더니 ‘넌 땅만 보고 걸어서 그렇다’고 하더라. 그 말에 깜짝 놀라기도 했고, 조금 서글프기도 했다.”
그래도 혼자 하는 여행을 멈출 생각은 없다. 수애는 “‘이 순간을 즐겨라’라는 말을 실천하긴 쉽지 않지만, 더 단련해 나중엔 모자 벗고 혼자 다닐 여유를 갖고 싶다”고 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