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칠레와의 평가전을 마친 뒤 축구팬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9월에 치른 두 차례의 A매치는 모두 만원 관중의 뜨거운 응원과 함께 성공적으로 끝났다. 스포츠동아DB
우리는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을 통해 국가적 축제를 즐겼지만, 이후엔 그런 기회를 잡지 못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원정 첫 16강의 즐거움을 만끽한 것도 잠시, 이후 두 차례 연속으로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실망감을 안겼다.
침체기는 오래갔다. 투쟁심 넘치던 한국축구의 색깔은 온데 간 데 없었다. 팬들은 등을 돌렸다. 태극전사들은 고개를 숙였다. 대한축구협회는 욕받이가 됐다. 다만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승리(2-0)는 희망의 불씨였다. 냉소의 그림자가 걷히는 듯 했다.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을 통해 급반전이 일어났다. 금메달을 딴 것도 의미가 컸지만 온 힘을 다해 뛴 태극전사들의 헌신적인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더 이상의 비난은 없었다.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황인범-김문환-김진야(왼쪽부터). 사진|스포츠동아DB·대한축구협회
손흥민, 황의조, 이승우, 조현우 등 이름이 잘 알려진 선수들 뿐 아니라 황인범, 김문환, 김진야 등 그동안 묻혀있던 보석들도 찾아냈다.
금맥의 기운은 국가대표팀이 이어받았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까지 지휘봉을 쥐는 파울루 벤투 감독이 코스타리카 및 칠레와 평가전을 통해 신고식을 했다. 다행히 기대 이상의 경기력이었다. 무실점으로 1승1무를 기록했다. 한국축구는 달라졌다. 공수에 걸쳐 안정감을 되찾았다. 벤투 특유의 색깔도 보여줬다. 그래서 희망을 봤다.
팬들은 경기장을 찾아 힘을 보탰다. 코스타리카전(고양)과 칠레전(수원) 모두 만원 관중이었다. A매치 2경기 연속 만원관중은 7년 만이다. 경기장은 응원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수원에서 펼쳐진 휴대전화 불빛 응원과 파도타기 응원은 근래 보기 드문 장관이었다. 특히 눈길을 끈 건 젊은 여성 팬들이 많이 보였다는 점이다. 여성 팬들의 증가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시청률도 한국축구를 반겼다. 코스타리카전 14.1%에 이어 칠레전은 무려 20.2%를 기록했다.
팬들의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9월의 한국축구는 그렇게 활짝 웃었다. 이전까지의 극심한 부진 탓인지 그 웃음의 향기는 더욱 진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기성용이 쐐기를 박았다. “지난 10년 동안 분위기가 좋다가도 고비가 왔다. 항상 그랬다. 좋은 분위기를 좋은 경기력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옳은 얘기다. 이 분위기를 어떻게 이어가느냐가 중요하다. 대표팀은 대표팀대로, 또 한국축구의 근간인 프로축구는 프로축구대로 좋은 경기력으로 보답해야한다. 특히 K리그가 팬들의 관심을 붙잡는 게 절실하다. 그래야 한국축구의 경쟁력이 덩달아 커진다.
그동안 K리그의 관심은 바닥을 모르고 떨어졌다. 당장의 기쁨에 취해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탓이 컸다. 기회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깨달았다. 이번에 모처럼 제대로 된 기회가 왔다. 이 기회를 잘 살려야한다. 경쟁력을 갖춘 K리그 멤버들도 충분하다. 당장 이번 주말에 K리그1 28라운드가 열린다.
우리는 그동안 충분히 헛발질했다. 이제 한국축구의 재건을 위해 정신 똑바로 차리자.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체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