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백’, 단단하면서도 따뜻하게 쌓아올린 ‘약자의 연대’

입력 2018-10-04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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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쓰백’의 한 장면.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현실에 자비란 없다. 삶이 지독할지라도 그걸 견뎌야 하는 책임이 있을 뿐이다. 다만 작은 희망이 있다면 서로 손을 맞잡고 고통에 맞서는 사람과 사람의 ‘연대’다. 판타지를 거둬내고 냉정하리만치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끝내 따뜻함을 잃지 않은 영화 ‘미쓰백’이 담은 메시지이자, 이 작품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여기 ‘미쓰백’이라고 불리는 여자가 있다. 한겨울 혹한에도 맨손으로 세차 일을 하는 그녀는 또 다른 일터인 마사지 숍에서도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박박 닦고 박박 빤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엄마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부음을 전한 형사 장섭을 향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일갈했지만, 그녀는 곧 걸레를 들고 방바닥을 박박 닦기 시작한다. 마치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어떻게든 닦아 내려는 몸부림처럼 말이다.

처음엔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영화에 곧 한 소녀가 등장하고, 그때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지은’이란 이름이 있지만 제대로 불린 적은 없는 그 소녀의 몸은 학대의 흔적으로 얼룩져 있다. 미쓰백은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본능은 어쩔 수 없이 소녀로 가 닿는다. 그렇게 미쓰백은 지은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과 마주하고, 끝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지켜줄게.”

11일 개봉하는 영화 ‘미쓰백’(감독 이지원·제작 영화사 배)은 올해 나온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묵직한 주제와 메시지를 담은 수작이다.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 삼은 영화는 단 한 장면도, 단 한 명의 인물도, 허투루 쓰지 않는 집중력을 발휘한다. 아동학대와 이를 대하는 어른의 무관심을 다루면서도 끝까지 책임감을 잃지 않는 성숙하고 따뜻한 태도도 견지한다. 어떻게든 서로를 보듬고 살아가려는 약자들의 연대를 세심하면서도 단단하게 그려낸 점에서 ‘올해의 영화’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다.

영화 ‘미쓰백’의 한 장면.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 마음을 닫은 여자와 버려진 아이가 쌓아가는 ‘연대’의 힘

미쓰백의 이름은 백상아(한지민). 어릴 때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그녀는 스스로를 지키려다 전과자가 된 신세다. 그런 과거를 아는 형사 장섭(이희준)이 곁을 맴돌지만 백상아는 세상의 누구도 믿지 않겠다는듯 마음을 주지 않는다.

영화는 성급하지 않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상처를 지닌 백상아로 시작해 학대받는 소녀 지은이 등장하고, 뒤이어 소녀의 친부와 그의 동거녀가 나타나면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비춘다. 굳이 보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없어지지 않는 현실의 일들이 펼쳐진다.

아동학대의 그늘을 들추는 영화는 실화사건을 모티프 삼았다는 사실에서 섬뜩함을 더한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이지원 감독은 “몇 년 전 옆집에 살던 아이가 도움이 필요해보였지만 상황 때문에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는 죄책감을 떨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미쓰백’은 그렇게 시작된 영화다.

아동학대를 소재로 삼았지만 이를 ‘사건’이나 ‘상처’로만 바라보지 않는 사실도 ‘미쓰백’을 지나칠 수 없게 한다. 세상에 마음을 닫은 여인과 버려진 소녀가 우정을 나누고, 그렇게 작은 힘을 모으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움이 밀려와 눈시울이 붉어진다.

‘미쓰백’의 완성도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주역은 한지민이다.

착실하게 한길을 걸어온 배우가 차곡차곡 쌓은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내면서 지금과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모습을, 한지민은 이번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 거친 얼굴, 담배를 피워 무는 등의 외적인 변화가 먼저 시선을 끌지만 그건 극히 일부의 모습일 뿐이다.

백상아와 지은의 연대를 묵묵히 지켜보는 장섭을 연기한 이희준, 짧게 등장하면서도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장섭의 누나 후남 역의 김선영도 발군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들이 만들어낸 ‘보호의 카르텔’은 또 다른 울림을 만든다.

스포츠동아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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