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이 일본에서 계획하고 있던 방송 프로그램 일정이 연이어 취소됐다. 얼마 전 멤버 지민이 입은 셔츠의 디자인을 문제 삼고 있다. 한·일 감정이 격화되는 가운데 국내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CNN “원자폭탄 셔츠 분노 풀고 있어”
美 빌보드 “정치·문화적 배경에 뿌리”
BBC “강제징용피해자 배상 보복성”
비난 화살속 ‘전범국’ 알리는 결과도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둘러싸고 한·일 감정이 격화되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출연하기로 한 일본 음악 프로그램 측에서 잇따라 “출연 취소” 통보를 하자, 각국의 팬들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격앙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해외 주요 외신들도 갑작스러운 방탄소년단의 방송 취소 사유에 대해 촉각을 드러내며 그 배경에 관심을 쏟고 있다.
최근 일본 지상파 TV아사히 ‘뮤직스테이션’ 측은 방탄소년단 출연을 하루 앞두고 갑작스럽게 취소 통보를 한 데 이어 12월 말 방송예정인 같은 방송사 ‘뮤직스테이션 슈퍼라이브’도 방탄소년단의 출연을 검토하다가 백지화했다. 12월 방송예정으로 방탄소년단의 출연 논의를 진행 중이던 각 프로그램 측에서도 모두 출연 취소를 결정했다. NHK는 12월31일 방송하는 ‘홍백가합전’에 방탄소년단의 첫 출연 방안을 검토했지만 보류했고, 같은 달 5일과 12일 방송하는 후지TV ‘FNS가요제’ 측에서도 취소했다.
각 방송사 측의 이 같은 취소 결정은 한 멤버가 입은 ‘셔츠 디자인’ 때문이다. ‘반일 감정’을 조장한다는 게 이유다. 방탄소년단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며 글로벌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그룹이라 ‘견제’의 의미로 풀이된다.
문제의 ‘셔츠 디자인’은 멤버 지민이 지난해 한 팬에게 선물 받아 입은 옷으로 1945년 광복을 맞아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원자 폭탄이 터지는 장면의 흑백사진과 함께 ‘애국심’, ‘우리의 역사’, ‘해방’, ‘코리아’ 등의 영문 문구가 써 있다. 지민뿐만 아니라 RM이 2013년 광복절을 맞아 트위터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독립투사 분들께 감사하다. 대한독립만세”라고 글을 올린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멤버들이 티셔츠를 입고 글을 올린 지 1년이 지난 후 뒤늦게 논란이 불거졌고,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그룹에게 출연 하루 전 취소 통보를 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분위기다. 여기에 최근 우리나라 대법원의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징용 배상판결도 여파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정치적인 이유로 BTS의 방송 출연을 취소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고 부적절한 일”이라며 “민간 교류에 자꾸 정치적 잣대를 갖다대는 것은 한일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 역시 “일본의 자기중심적인 역사인식과 편협한 문화 상대주의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한다”고 말했다.
미국 빌보드를 비롯해 CNN, BBC, AFP 등 주요 외신들도 이번 사태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며 “한일 양국의 오래된 역사, 정치적 배경이 있다”고 보도했다.
빌보드는 “‘티셔츠 논란’은 양국의 오랜 정치적, 문화적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티셔츠 문제가 방송 취소의 유일한 이유가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CNN은 “원자폭탄 티셔츠의 분노를 BTS에게 풀고 있다”고 보도했고, BBC는 “최근 한일 관계가 더 진장됐다”며 최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 판결을 거론하며 사태가 커졌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방탄소년단은 11일 일본으로 건너가 13일부터 예정된 일본 돔투어를 진행한다. 일단 공연 입장권이 예매를 시작하고 일찌감치 매진된 만큼 공연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