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영의 어쩌다] ‘정준영 나오면 다 지워!’ 방송사들 이례적인 VOD 삭제 조치

입력 2019-03-25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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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 나오면 다 지워!’ 방송사들 이례적인 VOD 삭제 조치

지상파 3사부터 케이블 채널(CJ ENM 등)까지 ‘정준영 지우기’에 나섰다. 방송가에는 처음부터 ‘정준영’이라는 이름 석 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에 대한 흔적을 지우고 있다.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 촬영·유포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구속돼 경찰 조사를 받는 가수 정준영(30)이 등장하는 프로그램 VOD(다시보기)를 삭제(서비스 중단)하고 있다.

먼저 KBS는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3’ 467회부터 478회(2016년 ‘전 여자친구 몰카’ 혐의로 정준영 일시 하차 당시 회차)까지를 제외한 시즌3 전체 분량 VOD를 삭제했다. 시즌3가 2013년 12월 시작한 만큼 삭제된 분량은 무려 5년 치가 넘는다. 그런데도 KBS 입장은 단호하다. 재편집 계획은 현재로서 없다. 방대한 양을 다시 편집하는 것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다른 프로그램도 정준영이 게스트로 출연했던 분량이 삭제되고 있다. 다만,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 일부 프로그램 VOD에서는 여전히 정준영이 등장한다.

상황은 MBC와 SBS도 마찬가지다. MBC는 정준영이 고정 출연한 ‘우리 결혼했어요’ VOD를 모두 삭제한 상태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듀엣가요제’, ‘뜻밖의 Q’ 등 게스트로 출연한 분량 일부는 아직 VOD 서비스 중이다. 정준영이 라디오 DJ로 활동한 ‘로이킴, 정준영의 친한 친구’(2013), ‘정준영의 심심타파’(2014~2015) 다시듣기도 삭제됐다. 다만, 팟캐스트에는 다시듣기 일부가 남아 있다. SBS 역시 정준영이 출연한 프로그램 VOD 대부분을 삭제했다. ‘정글의 법칙’, ‘남사친 여사친’, ‘패션왕 코리아’ 등 일부 프로그램은 여전히 VOD 서비스된다.

정준영을 가수로 만들어준 CJ ENM은 더욱 ‘파격적’(?)이고 단호하다. 정준영 출연이 확인된 자사 각 채널 프로그램 VOD는 모조리 삭제하고 있다. 이미 tvN ‘짠내투어’는 정준영이 편집된 67, 68회를 제외한 전체 회차 VOD를 삭제한 상태다. tvN ‘집밥 백선생’ 시즌2와 온스타일 ‘정준영의 BE STUPID’ 등은 프로그램 이름만 존재할 뿐, VOD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유령 같은 프로그램이다. tvN 웹예능 ‘FC앙투라지’도 각 플랫폼 채널에서 모든 콘텐츠 삭제가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정준영이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약 1년간 진행을 한 Mnet ‘엠카운트다운’ 방송분도 삭제된다. 정준영의 가수 데뷔를 이끈 Mnet ‘슈퍼스타K4’ VOD도 삭제될 예정이다.

CJ ENM 한 관계자는 동아닷컴에 “정준영 관련 콘텐츠와 프로그램 VOD를 삭제하고 있다. 아직 삭제되지 않은 콘텐츠와 VOD는 해당 채널 담당자를 컨택해 삭제될 수 있도록 진행할 예정이다. 최신 콘텐츠와 VOD부터 삭제하고 있지만, 양이 많아 시간이 소요되는 점 양해 바란다”며 “다만, 삭제된 콘텐츠와 VOD를 재편집해 다시 올릴 계획은 아직 없다. 우선 삭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시청자들과 이용자들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정준영 지우기’에 열을 올리는 지상파 3사, CJ ENM과 달리 JTBC는 관련 프로그램 VOD를 삭제를 놓고 내부 논의 중이다. 정준영이 JTBC에서 주요 출연자로 출연한 프로그램은 ‘헌집줄게 새집다오’, ‘히트 메이커’ 등이다. 이밖에도 많은 프로그램 게스트로 참여한 바 있다. 이들 프로그램 VOD는 아직까지 정상 서비스 중이다.

JTBC 한 방송관계자는 “VOD 삭제 등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다. 승리가 출연한 ‘아는 형님’ 출연 분량만 현재 VOD를 삭제한 상태다. 정준영이 출연한 프로그램 VOD 건에 대해서는 현재 논의를 진행하는 만큼 향후 관련 내용에 따라 삭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방송사들이 수많은 연예인 사건·사고에도 프로그램 VOD를 전체를 삭제하는 일은 전례가 없을 정도니 이례적인 이슈임이 틀림없다. 출연자 하차 정도에 그쳤던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만큼 각 방송사가 ‘정준영 사건’(몰카 혐의)을 얼마나 심각하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2016년 유사한 사건으로 정준영에 대해 검증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를 다시 받아준 것에 대한 내부 반성이다. 일부 관계자들은 검증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찰 등 사생활 논란이 불거질 소지가 크다. 일반인 출연자 검증 문제로 시끄러울 당시에도 관련 시스템 도입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번번이 무산된 이유도 효과보다 도입으로 인한 후폭풍이 크다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현재 각 방송사는 자체 규정에 따라 출연자에 대한 출연 여부를 결정한다. 지상파 3사 규정은 케이블 채널보다 비교적 엄격한 편이다. 반대로 케이블 채널은 비교적 느슨하다. 그렇기에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이 주로 케이블 채널로 복귀해 활동 범위를 넓힌다. 이를 두고 꾸준히 문제 제기가 있지만, 시정은 없었다. 출연자 윤리 규정에 대한 표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강제성을 띄어야 한다고 목소리도 있지만, 이를 각 방송사가 모두 수용할지 미지수다.

한 방송관계자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숙제가 많다. 정준영으로 인한 ‘방송가 쇼크’는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 어떤 방송사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은 곳은 없는 것 같다. 그냥 상황을 지켜보고 이후 유사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분위기만 감지된다. 또 무엇이 터질지 다들 조마조마한 눈치다. 방송가는 요즘 매일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불안 불안하다”고 귀띔했다.

한편 정준영은 2015년 말 승리 등이 포함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등에서 여성들과의 성관계 사실을 언급하며 몰래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전송하는 등 불법 촬영물을 지인들과 수차례 공유한 것으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입건돼 두 차례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지난 21일 구속됐다. 다만, 정준영은 아직 검찰로 송치되지 않았기에 구치소가 아닌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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