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의 듀얼인터뷰] 남은 이에게 손 내미는, ‘생일’ 감독과 제작자

입력 2019-04-05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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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개봉한 영화 ‘생일’을 만든 이종언 감독(왼쪽)과 제작사 레드피터 이동하 대표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우리가 있어’라는 작은 위안이 되고 싶었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어린 자식을 잃고, 친구를 잃고, 이웃을 잃은 이들의 손을 맞잡고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나누는 일에 과연 어떤 이유가 필요할까. 여기저기서 날선 대립과 공격을 보이지만 상처받은 이들을 감싸 안는 조건 없는 애도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다.

전도연과 설경구가 주연한 영화 ‘생일’은 소중한 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월호 유가족과 그들의 친구, 이웃을 그렸지만 꼭 참사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뜻하지 않는 사고와 재난으로 갑자기 가족을 잃은 이들에 손을 내미는 작품이다. 감정을 자극하지 않은 채 담담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의 출발은 2015년이다. 연출을 맡은 이종언(45) 감독이 경기도 안산의 치유공안 ‘이웃’에서 “설거지도 하고 사진도 찍는” 자원봉사를 시작하면서다. 이듬해 영화사 레드피터 이동하 대표(50)와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 그리고 이창동 감독이 제작에 나섰고, 5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3일 개봉한 영화는 관객으로부터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 공개 직전 이종언 감독과 이동하 대표를 3월2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났다.


-‘생일’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이종언(이하 종) “알려졌다시피 치유공간 ‘이웃’에서 유가족 분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동의를 구한 뒤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2015년 11월 도서관 책상에 앉아 쓰기 시작해 다음해 2월에 제작사에 글을 보냈어요. 처음엔 굉장히 거칠었어요.”


이동하(이하 동) “2016년 여름에 이창동 감독님과 이준동 대표님한테 세월호 관련 이야기를 의논하러 갔다가 이종언 감독의 시나리오에 대해 들었습니다. 함께 작업하기로 하고 감독님과 이후 10개월 정도 시나리오 개발했어요.”


-두 분의 인연은 처음이 아닌데요.


“‘여행자’(2008년) 때 제가 프로듀서, 이종언 감독님은 연출팀이었고요. 영화 ‘시’(2010년) 때는 프로듀서, 조감독이었어요. 이종언 감독님은 ‘밀양’(2007년) 연출부도 했고요.”


-배우 전도연은 “‘밀양’ 때는 ‘종언아’라고 불렀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존경하는 마음까지 생겼다”고 말하던데요.


“하하! 감독님의 비범함은 제가 먼저 알아봤죠. 스태프로 같이 일하면서 10년을 지켜봤으니까요. 현장은 규모가 작든 크든 늘 여러 변수가 생깁니다. 이종언 감독님은 그때 현장의 문제를 바로바로 파악해 해결하는, 뚝심 있고 강건한 분이었죠.”


“그런 말씀은 진작 좀 해주지 그러셨어요.(웃음)”


“이런 말 할 틈도 주지 않았잖아요. 하하! 일할 때도 대단했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글을 쓸 줄은 몰랐어요.”


-제작에 동참하기까지 결심이 필요했을 텐데요.

“이번 작업에 참여한 누구나 그렇겠지만 (세월호에 대한)좌절감이 있어요. 비록 재능이 미천하지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각자의 방식으로 고민을 했습니다. ‘생일’을 내놓았지만 이걸로 우리의 부채의식, 죄책감을 상쇄하려는 마음은 아니에요. 제작을 시작할 무렵 여기저기서 ‘세월호 피로감’을 꺼냈고 유가족도 외롭게 싸우고 있었어요. 관객에 손을 내밀고 싶었어요. 꼭 세월호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이야기일 수 있잖아요.”

3일 개봉한 영화 ‘생일’의 한 장면. 사진제공|NEW


이동하 대표는 ‘생일’ 시나리오를 처음 본 뒤 여러 생각이 스쳤다고 했다. “하고 싶지만 과연 할 수 있을까”로 시작해 “영화화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접근하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했다.

이종언 감독에게 ‘생일’은 연출 데뷔작이다. 상업영화 시스템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그리는 일은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는 작업. 주변의 시선은 물론이고 끊임없는 자기검열도 필요하다. 그런데도 꼭 ‘생일’을 내놔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참사를 처음 접한 날, 허리디스크 수술 치료를 하던 중이라 종일 집에 있던 때였어요. 몇날 며칠 TV를 끄지 못하고 거실과 침실만 오가면서 지내는데. 그 때 마음이…, 진도에 가야만 할 것 같았죠.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제가 할 일도 없지만 그곳에 가서 물이라도 한 잔 떠 드려야 할 것 같았어요. 훗날 치유 공간 ‘이웃’이 만들어졌고 제가 아는 분들이 동참하고 있었어요. 일손이 필요하다고 해서 찾아가 설거지하고 도왔어요.”


-제목이 처음부터 ‘생일’이었나요.


“네. 생일날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하루하루 살아내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해서요.”


-만들면서 지키고자 한 게 있나요.


“가장 중요했던 건 ‘있는 그대로’였어요. 개인적인 해석, 주관이 개입되는 걸 경계하면서 말이죠. 이 영화로 생각지 못한 아주 작은 상처가 생겨나는 걸 원치 않으니까요.”


“제작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요나 과잉의 시선을 최대한 배제하고 이야기로서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해야했어요. ‘우리 제대로 가고 있나?’ 이 질문을 가장 많이 했죠. 자칫 과잉처럼 보이면 냉정하게 버렸어요.”

‘생일’을 본 관객 반응 가운데 ‘따뜻한 위로가 됐다’는 의견이 많다. 영화는 꼭 유가족의 시선에만 머물지 않는다. 상처를 나누려는 이들의 연대로도 시선이 향한다. 후반 30분 분량을 채우는 생일 장면은 영화를 상징한다. 배우와 스태프 50여명이 모인 가운데 3대의 카메라를 설치한 제작진은 단 한번도 끊지 않고 30분의 장면을 촬영했다. 이런 방식을 3일간 이은 끝에 생일 장면을 완성할 수 있었다.


-왜 이런 촬영방법을 택했나요.

“이전에 했던 다큐멘터리의 경험 때문에요. ‘이웃’에서 진행한 ‘세월호 세대와 함께 상처를 치유하다’라는 프로젝트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어요. 실제 생일 모임 역시 카메라 3대를 놓고 찍었어요. 물론 그런 방식을 극영화에서 한다는 게 자신 없었죠.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전날 모두 모여 리허설을 하고서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중지시키지 않아도 될 만큼 배우들이 서로 대사를 주고받으면서 진짜의 감정으로 그 시간을 채웠어요.”

3일 개봉한 영화 ‘생일’의 한 장면. 사진제공|NEW


‘생일’은 감독만큼이나 제작자의 역량도 중요했다. 여전히 계속되는 참사의 상처를 다뤄야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동하 대표의 역할은 상당했다. 처음 출연을 거절했던 전도연이 끝내 ‘생일’에 동참하기까지도 그의 몫이 컸다. ‘생일’ 뿐 아니라 이동하 대표는 최근 영화계에서 가장 두각을 보이는 제작자로 통한다. 1000만 흥행작인 ‘부산행’은 물론 11일 개봉하는 배우 김윤석의 연출 데뷔작 ‘미성년’도 그가 제작했다.

그런가 하면 “중·고등학교 때 학교를 빠져나와 근처 극장에서 오우삼의 액션영화”를 보면서 영화에 푹 빠졌다는 이종언 감독의 세계는 사려 깊고 따뜻하다. ‘생일’에서 전도연·설경구 못지않게 비중이 상당한, 이들 부부의 딸 예솔 역할을 맡은 9살 연기자 김보민과의 작업 이야기에선 감독의 섬세함이 다시 느껴졌다. 감독은 영화 대본을 김보민의 부모에게만 건넸다. 대신 촬영현장에 한 시간 먼저 도착해 그날 찍어야 할 상황을 충분히 대화하는 방식으로 9살 연기자와 촬영을 이어갔다.

이동하 대표는 “보민이 어머님이 늘 현장에 있었지만 아이가 모르는 순간 받아들이는 감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 상담사도 함께했다”며 “촬영이 끝나고도 어머니와 상의해 6개월 정도 심리 상담을 받도록 도왔다”고 했다.

관객에 영화를 내놓은 지금, 감독과 제작진의 바람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처음 글을 쓸 때 마음이 지금과 똑같아요. 유가족에게 ‘우리가 있어’라고, 작게나마 위안이 되고 싶었어요. 동시에 저는 그 때 상처 입은 우리 모두, 다같이,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았으면 했고요. 관객이나 일상을 사는 모든 분들에게 자기의 상처와 고통, 소중한 기억이 있잖아요. 이 영화를 보다 보면 그런 자신과 만날 거라 생각합니다.” (종)

“‘생일’이 그분들 이야기를 100만분의 1도 담지 못했을 수 있어요. 다만 감정을 공유하길 원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 상처를 받은 분들에 시선을 두고 ‘손 한번 잡아 주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게 제 바람이죠.” (동)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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