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브룩스 레일리. 스포츠동아DB
브룩스 레일리(31·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게 이 이름은 ‘불운의 대명사’처럼 여겨진다.
레일리는 3일 사직 두산 베어스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음에도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비단 이날만의 일은 아니다. 2015년부터 KBO리그에서 활약한 레일리가 퀄리티스타트(QS·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하고도 승리를 챙기지 못한 건 무려 14번에 달한다. 같은 기간 양현종(KIA 타이거즈), 라이언 피어밴드(전 KT 위즈)에 이어 최다 3위다. 여기에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고 마운드를 내려갔을 때 불펜이 이를 날린 것도 15차례나 된다.
레일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마운드 위에서 ‘욱’하는 것까지 숨길 수는 없다. 그러나 레일리는 늘 웃는다. “내 목표는 KBO리그 TOP 5의 선수다. 승이나 패는 내 몫이 아니다. 매 경기 QS를 한다면 팀 승리 확률이 높아진다. ‘에이스’로서 그 역할만 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자세다.
5년차 장수 외인. 하지만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부터 이러한 시간을 꿈꾼 것은 아니다. 레일리는 2015시즌을 앞두고 ‘입단 동기’ 조쉬 린드블럼(두산), 짐 아두치(전 시카고 컵스) 등과 함께 “사직구장이 너무 낡다. 1년 열심히 하고 미국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롯데 유니폼을 입고 있다. 미국에서 러브콜이 있었음에도 선택은 롯데였다. 그는 “팬과 선수가 가족처럼 맺어져 있다. 단언컨대 이러한 환경은 어느 나라에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에게 장수 외인의 조건을 물었다. 그는 신중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내 고향은 텍사스주의 작은 마을이다. 인구가 1만5000명 정도에 불과하며 아파트도 없다. 바비큐 파티 정도가 낙인 동네다. 하지만 롯데 선수로 사직구장에서 뛴다면 이런 한적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없다. 열광적인 팬들과 함께라는 생각으로, 미국적 정서인 개인주의를 버려야 한다. 팬들의 적극적인 스킨십에 적응한다면,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라면 한국 생활은 굉장히 행복한 경험일 것이다.”
9위. 연봉 최고액 팀인 롯데에 걸맞지 않는 순위다. 결국 양상문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고 공필성 대행이 팀을 이끌고 있다. 롯데는 후반기 4연패 후 4연승으로 상승세의 요건을 마련했다. 한켠에서는 2017년 후반기(58경기 39승18패1무)의 기적을 얘기한다.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적어도 그때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만큼은 롯데 팬 모두의 바람이다. 레일리도 “2017년 후반기는 ‘미친 시간(crazy time)’이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지속성”이라며 “올해는 그런 상승세나 모멘텀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기적을 만들지 말란 법은 없다”며 환히 웃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