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유재석의 30년 ①] 이병헌 “초심으로 채운 30년”…유재석 “무명 설움이 나의 힘”

입력 2020-01-10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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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각자의 분야에서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배우 이병헌(왼쪽)과 개그맨 유재석. 1991년 데뷔한 이들은 꾸준하면서도 과감한 도전으로 한국 엔터테인먼트를 이끄는 주축으로 꼽힌다.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기회를 찾는 시도가 ‘30년 롱런’의 비결이다.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MBC

■ 주말기획|이병헌·유재석의 ‘30년 롱런’ 이야기

무선호출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1991년부터 스마트폰으로 VR(증강현실)까지 즐기게 된 2020년까지 무려 30년. 한국 엔터테인먼트를 상징하는 배우 이병헌과 개그맨 유재석이 연예계에서 보낸 시간이기도 하다. 올해 데뷔 30년차를 맞은 이들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분야는 달라도 두 사람을 설명하는 공통의 키워드, ‘도전’이다. 이들의 30년을 되짚는다.

‘뵨사마’로 한류시대 불 지핀 이병헌
명연기로 스캔들 딛고 미국 진출까지

‘버라이어티 예능’ 새 역사 쓴 유재석
끊임없는 변신…수년간 기부 천사도

● 이병헌의 1990년대…드라마 장르화 주역

“30년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 데뷔한 지 1년이 된 기분으로 일하고 있어요.”

지금이나 30년 전이나 연기할 때 마음은 늘 같다는 설명이다. 한양대 불문과 재학 중 KBS 14기 공채탤런트로 데뷔해 불과 1년 만에 ‘해뜰날’의 주연으로 발탁됐다. 1992년 KBS 연기대상 신인상과 다음해 우수상으로 ‘초고속 성공’을 거뒀다. ‘스타’를 원한 무대의 ‘X세대’였다.

당시 규모를 키우고 장르를 다변화해가는 드라마 흐름에 올라 기대 이상 활약으로 경쟁력을 높였다. 1995년 미국에서 촬영한 SBS ‘아스팔트의 사나이’로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시대를 열었고, 1998년 첩보 대작인 SBS ‘백야 3.98’도 완성했다.


● 유재석의 1990년대…‘와신상담’의 무명 시절

“데뷔 30주년이요? 거기서 무명 9년 빼면 21년입니다.”

제1회 ‘KBS 대학개그제’로 데뷔했지만 짧지 않은 시간, 주목 받지 못했다. “단역만 전전”했고, “‘난 왜 매일 집에만 있냐’며 TV도 켜지 않”았다. 하지만 훗날 “지칠 때면 떠올리는”, 활동의 원동력이 된 시간이다. “초심을 잃고 ‘나 혼자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아픔이 주어져도 가혹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명 시절의 다짐도 여전히 유효하다.

● 이병헌의 2000년대…한류 시대, ‘뵨사마’ 시작

스타파워를 과시하며 연기하는 힘을 견고히 쌓았다. 드라마로 촉발한 한류의 중심에 ‘뵨사마’(이병헌의 일본 애칭)도 있다. 2003년 SBS ‘올인’도 불을 지폈다. 덕분에 2006년 일본 도쿄돔 단독 팬미팅으로 4만 관객을 동원했다. 활약은 2009년 제작비 200억 원의 첩보액션 대작인 KBS 2TV ‘아이리스’로 이어졌다. ‘이병헌 프리미엄’에 힘입어 일본을 포함해 아시아 7개국에도 판매됐다.

동시에 내공을 다진 시기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달콤한 인생’까지 배우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 영화가 이 시기에 나왔다.

배우 이병헌(왼쪽)-방송인 유재석. 사진제공|스포츠동아DB·KBS


● 유재석의 2000년대…‘버라이어티 예능’의 장르화

훨훨 날기 시작했다. ‘버라이어티 예능’을 방송가에 안착시켰다. 복수 출연자가 각종 게임을 하며 웃음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이끌며 전성기를 열었다. 첫 단독 진행에 나선 2000년 MBC ‘목표달성 토요일-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이 무대였다. 그룹 신화, 클릭비 등 스타들을 ‘쥐락펴락’하는 진행 실력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2006년부터 12년 동안 이끈 MBC ‘무한도전’은 ‘국민MC’ 호칭을 안겨줬다. 명실상부한 “대표작”이다. 수많은 도전 아이템을 다루며 변화무쌍함을 과시했다. 28.9%의 최고 시청률과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 순위 최다 1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과시했다.

● 이병헌의 2010년대…할리우드 진출, 주연까지 우뚝

안주하지 않고 넓은 세상으로 향한 선택은 ‘롱런’의 비결이다. 2009년 ‘지.아이.조’로 할리우드에 진출해 2013년 2편을 거쳐 2016년 ‘매그니피센트7’의 주연으로 발돋움했다.

할리우드 안착을 위한 전략은 적중했다. 2012년 ‘레드2’ 개봉 당시 “내가 알려지지 않은 곳(미국)에서 원하는 역할을 맡으려는 건 욕심”이라며 “악역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진짜 원하는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밝혔다.

한때 스캔들에 휘말려 ‘위기설’도 나돌았지만, 작품과 연기로 우려를 잠재웠다. 올해도 분주하다. 22일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개봉하고 2월 영화 ‘비상선언’ 촬영에 돌입한 뒤 10월부터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히어’에 동참한다. 박찬욱 감독과 새 영화 작업도 논의하고 있다.

● 유재석의 2010년대…‘시대의 아이콘’

작년까지 14개의 연예대상을 품에 안았지만 ‘영역 확장’은 계속된다.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SBS ‘런닝맨’으로 ‘한류예능’ 시대를 열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해외투어를 매년 돌고 있다. tvN ‘유 퀴즈 온더 블럭’과 MBC ‘놀면 뭐하니?’로 변화의 의지를 드러내며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고, 드러머와 트로트가수로도 변신했다. “트렌드를 만들 생각은 없지만 따라갈 생각도 없다”며 예능프로그램의 다양화에 앞장서겠다는 포부다.

‘선한 영향력’도 빼놓을 수 없다. 밥상공동체 연탄은행과 나눔의 집 등 다양한 단체 등을 통해 수억여원을 기부해왔다. 사건사고 많은 연예계에서 오점 없는 자기관리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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