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1996년 선동열과 2020년 차우찬의 사라진 자신감

입력 2020-07-14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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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찬. 스포츠동아DB

선동열이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했던 첫 해인 1996년이었다. KBO리그 출신의 첫 해외진출을 놓고 여론조사까지 했던 터라 우리 야구팬들의 기대는 컸다. ‘국보급 투수’가 일본에서도 보란 듯이 본때를 보여주라고 응원했다. 선동열도 “내가 한국야구를 대표한다”며 선전을 다짐했지만 뜻밖에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당시 취재기자들도 믿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KBO리그 유일의 시즌 0점대 평균자책점 투수가 자주 난타를 당했다. 도쿄돔에선 한 이닝에 홈런 2방도 맞았다. 유독 히로시마 카프 타선에 약했는데, 마무리투수에서 중간계투로 밀려나서는 한 경기에 7실점하는 수모도 겪었다.

왜 선동열이 부진할까.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따돌리고 선동열을 ‘모셔갔던’ 주니치도 당황했다. 이유를 찾았다. 당시 일본 취재진과 주니치 코칭스태프가 전해준 사실을 종합하면 이유는 3가지였다. 첫째 “공의 회전이 반대”, 둘째 “어떤 공을 던질지 상대 타자들이 쉽게 안다”, 셋째 “볼끝이 나쁘다”였다. 선동열의 불펜피칭 때 다양한 각도에서 지켜본 전문가들은 “팔의 스윙이 나빠서 몸쪽 또는 바깥쪽으로 던진 공이 거꾸로 회전하면서 홈플레이트 한가운데로 몰린다”고 지적했다.

스피드건에는 시속 150㎞가 넘게 찍혔고, 그 숫자에 관중은 함성을 내질렀지만 정작 일본 타자들은 무서워하지 않았다. 요즘처럼 첨단기기를 동원해 분석했다면 아마도 회전수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들이 말했던 볼끝도 마찬가지였다. 수직 무브먼트가 좋지 않았다. 타자 앞에서 살아 꿈틀대던 느낌의 포심패스트볼이 종전보다는 얌전했다.

구위보다 더 큰 문제는 선동열의 마음이었다. 일본진출을 앞두고 모친상을 당했다. 그 바람에 완벽한 준비를 못한 채 시즌을 맞았다. 국내에서라면 그래도 선동열이라는 이름에 타자들이 먼저 물러서 문제가 없었겠지만, 일본은 달랐다. 쉽게 삼진을 당하지 않았다. 어떤 공이 들어와도 도망가지 않고 쳐내려고 했다. 그 모습에 선동열의 자신감은 떨어졌다.

투수가 상대 타자를 두려워하면 자기 공을 던질 수 없다. 당시 선동열이 그랬다. 사라진 자신감을 회복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1996시즌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뒤 2군에서 새로 시작했던 선동열은 1997시즌 들어서도 안심하지 못했다. 주변에선 “이제 괜찮아졌다”고 격려해도 “시즌 10세이브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못 믿겠다”고 털어놓았다. 다행히 어렵게 자신감을 회복해 일본프로야구의 별이 됐고, 지금도 나고야의 팬들은 기억한다.

요즘 LG 트윈스는 토종 에이스 차우찬의 부진이 아쉽다. 프리에이전트(FA) 계약 마지막 해에 잘하고 싶겠지만 최근 성적은 기대이하다. 2군행을 자청한 그가 언제 1군으로 컴백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류중일 감독은 빨리 정상으로 돌아와 19일 잠실 한화 이글스전에 선발등판해주길 바라지만 상황은 유동적이다.

류 감독은 차우찬의 1군 복귀 조건으로 “자신감의 회복”을 언급했다. “공이 마음대로 가지 않는다고 한다. 팔도 아프지 않다는데 이런 상태라면 자신감의 문제다. 그렇다면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평소에도 참 열심히 뛰는 선수다. 이제는 베테랑이니까 스스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공을 던지다가 어느 순간 좋았던 감각을 되찾을 때가 있다. 일단은 마운드에서 많은 생각보다는 자신감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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