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홍창기. 스포츠동아DB
2001년생 고졸 투수 소형준(KT 위즈)과 이민호(LG 트윈스)가 앞서가던 2020시즌 KBO리그 신인왕 경쟁에 복병이 등장했다. 1993년생 대졸 5년차 홍창기다. 사실상 올해가 본격적인 프로 첫 시즌인 중고신인으로, 경쟁이 치열한 LG 외야의 한 자리를 꿰차고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했다.
23일까지 올 시즌 81경기에서 타율 0.264, 3홈런, 21타점을 기록 중인 홍창기는 “야구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후보로 언급되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말하지만, “신인왕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받으면 더 좋을 것”이라며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안산공고~건국대를 거쳤고, 2016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LG의 2차 3라운드(전체 27순위) 지명을 받았다. 2016시즌 후 경찰청에 입대해 일찍 군복무를 마쳤다. 2017년 퓨처스리그(북부리그)에선 사상 7번째로 시즌 4할 타율을 작성했다.
백업 요원으로 올 시즌을 맞았지만, 이천웅의 부상으로 중견수에 고정된 뒤 기대이상의 활약이다. 이천웅이 복귀하더라도 주전경쟁을 펼칠 수 있을 만한 기세다. 월별 성적을 살펴보면 잘 드러난다. 5월 1할대(0.167) 타율에서 출발해 6월 0.216, 7월 0.275로 상승곡선을 그리더니 8월(18경기)에는 3할을 넘어섰다. 8월에만 63타수 20안타(타율 0.317) 2홈런 10타점이다. 8월 OPS(출루율+장타율) 또한 1.013으로 팀 내 4위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4구를 골라내는 능력이다. 올 시즌 팀 내에서 가장 많은 46개의 볼넷을 얻고 있다. 김현수, 로베르토 라모스(이상 36볼넷) 등 그보다 최소 100타석 이상 더 소화한 타자들보다 많다.
현대야구에선 출루율이 점점 더 중요한 요소로 평가받는다. 홍창기는 “학생야구 때부터 내가 생각하는 공이 아니면 치지 않고 지켜보던 성향이었다. 경기 때 내가 미리 설정해놓은 스트라이크존에서 멀어지는 공을 치지 않다보니 차츰 나만의 타격 존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LG는 홍창기의 잠재력을 인정해 일찌감치 ‘트레이드 불가’라고 선언했다. 갈수록 가치를 인정받자 그는 “야구가 재미있다. 요즘에는 더 과감하게 타격 포인트를 앞에 두고 치려고 한다”고 털어놓았다. 수비도 마찬가지다. 빠른 발을 이용해 어지간한 공은 다 잡아낸다. 넓은 잠실구장을 사용하는 LG에는 최적화된 선수다.
흔히들 선거의 승패는 바람이 가른다고 한다. 1987시즌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은 유력한 신인왕 후보였지만, 연속안타 기록을 세우며 바람을 일으킨 빙그레 이글스 이정훈에게 추월을 허용하고 말았다. “내 기준으로 본다면 데뷔 첫 시즌에 잘하는 선수가 진짜 신인왕”이라고 감독 류중일은 말하지만, LG로선 신인왕 후보가 많을수록 기뻐할 일이다. 홍창기가 과연 끝까지 상승세를 이어가 올해 신인왕 투표에서 역전승을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