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 ‘승자의 저주’, 이번에는?

입력 2021-06-23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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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매각을 위한 본입찰이 25일로 다가온 가운데 통상적 절차를 무시하고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 대주주 KDB인베스트먼트의 움직임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제기되고 있다. 대우건설 노조의 반발도 예상되면서 또다시 ‘승자의 저주’가 되풀이되는 게 아니냐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대우건설 사옥인 을지트윈타워 전경. 사진제공 | 대우건설

이미 두 번에 걸쳐 뼈아픈 실패를 맛봤던 대우건설이 세 번째 매각 작업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우려의 시선이 제기되고 있다.

대우건설의 지분 50.75%를 보유한 최대 주주 KDB인베스트먼트는 25일 대우건설 매각을 위한 본입찰을 시작한다. 대우건설은 이에 앞서 KDB인베스트먼트가 그동안 인수에 관심을 표명한 원매자들에게 25일까지 구체적인 제안서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을 공시했다. 매각대상은 대우건설 지분 50.75%를 포함한 경영권으로 인수 금액은 총 1조8000억 원에서 2조 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23일 투자은행(IB)과 건설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시행업체 DS네트웍스가 중심이 된 컨소시엄과 중견 건설사 중흥건설이 인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KDB인베스트먼트 측은 이르면 7월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올해 안에 매각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매각 발표 이튿날인 6월 2일 종가 기준 대우건설 주가(8870원)는 1년 전보다 128% 올랐다. 올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 1조9390억 원 ▲영업이익 2294억 원 ▲당기순이익 1479억 원을 각각 기록한 대우건설은 매출만 전년 동기 대비 2.4% 감소했을 뿐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각각 89.7%, 138.9% 증가했다. 실적 개선에 주택 시장 호황까지 겹치면서 ‘대우건설 매각은 이번이 적기’라는 게 업계의 공통적 의견이다.

“왜 이렇게 서두르나”…노조도 성명 내고 지적
그동안 대우건설 정상화에는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 3조2000억 원이 투입됐다. 매각하는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몸값을 올려 받아야 그나마 손실을 최소화했다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번이 적기’라는 판단 하에 KDB인베스트먼트 측이 주요 절차를 생략한 채 무리하게 매각 일정을 서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매각 주관사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를 선정한 지 채 한달도 되지 않아 본입찰을 진행하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투자설명서(IM) 배포, 예비입찰, 적격예비인수 후보 선정, 경영진 프레젠테이션 및 현장 실사 등 인수 과정에서 수개월에 걸쳐 통상적으로 펼쳐지는 절차를 건너뛴 채 황급히 마무리하는 분위기다.

대우건설 노조가 성명을 내고 “매출액 8조 원이 넘는 건설사의 인수금액을 25일 만에 결정해 입찰서를 제출하라는 요구가 정상적이지 않다”며 “또다시 잘못된 매각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 것도 그래서다.

이런 탓에 일각에선 KDB인베스트 측이 인수 후보를 사실상 낙점한 뒤 공개 매각을 ‘요식행위’로 진행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DS네트웍스 컨소시엄과 중흥건설 외에 인수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중국건축정공사, 한앤컴퍼니 등이 한 발 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시선도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대우건설 내부에선 유력한 인수 후보 두 곳을 모두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부동산 시행업체 DS네트웍스나 호남에 기반을 둔 중견업체 중흥건설 등 유력한 두 후보 모두 ‘체급’이 떨어진다는 게 솔직한 내부 시선이란 얘기이다.

대우건설 노조가 이번 매각에 대해 ‘밀실 매각’, ‘졸속 매각’을 강조하며 공개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 노조 중 대우건설 노조는 강성으로 소문이 나 있다”며 “상황에 따라 판을 뒤엎기 위해 단체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본입찰을 앞두고 대우건설 주가가 ‘흥행 바람’을 타지 못하고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도 인수 유력 후보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반영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매각 내용이 알려진 뒤 8일 종가기준으로 9050원까지 올랐던 대우건설 주가는 23일, 전날 대비 5.03%가 하락해 8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대우건설의 저주’…매각의 흑역사 소환
다양한 우려의 시선이 제기되면서 대우건설 매각의 ‘흑역사’도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1973년 설립된 대우건설은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2006년 6조4255억 원을 써낸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매각됐으나 인수자금을 감당하지 못한 금호아시아나가 3년 만에 매물로 내놓으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대우건설 인수는 이후 금호그룹이 휘청거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11년 대우건설을 떠안은 KDB산업은행은 2017년 공개매각을 통해 1조6000억 원을 적어낸 호반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인수 과정에서 대우건설의 3000억 원 규모 해외 부실이 갑자기 불거지면서 호반건설이 9일 만에 인수 포기를 선언하는 초유의 사태를 빚기도 했다.

금호아시아나와 호반건설 모두 대우건설 인수과정에서 상처만 안으면서 ‘승자의 저주’, ‘대우건설의 저주’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산업은행은 2019년 사모펀드 형태로 보유하던 대우건설을 구조조정 전담 자회사인 KDB인베스트먼트로 넘겨 관리하고 있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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