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사커] 이젠 적으로 만나는 아드보카트 감독에 대한 단상

입력 2021-09-0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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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06년 3월의 어느 날,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마주 앉은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또박또박한 말투에 힘이 실린 말끝, 그리고 가끔 툭 던지는 유머는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또 항상 밝고 긍정적인 표현을 썼던 것으로 기억된다. 170cm가 될까 말까한 키에 딱 벌어진 어깨, 동글동글한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네덜란드 출신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었다. 당시 59세였지만 나이보다 젊어보였다.

미드필드였던 그는 선수로선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열여섯 살에 프로 구단에 입단했고, 서른여섯 살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생활이었지만 단 한번도 국가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당시 네덜란드엔 당대 최고로 꼽히는 요한 크루이프와 요한 네스켄스 등이 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20년 넘게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어 ‘행복한 사람’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그가 리뉘스 미헬스 감독(네덜란드)을 만난 건 축구인생의 행운이었다. 전원수비, 전원공격의 ‘토털사커’로 네덜란드축구의 황금기를 연 미헬스 감독(2005년 작고)은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는 지도자다.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뛸 때 사제의 인연을 맺은 차범근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그를 꼽았다. 미헬스 감독이 네덜란드대표팀을 이끌 때 아드보카트를 코치로 불러들였다. 그것도 2번씩이나 감독과 코치로 함께 일했다. 그래서 아드보카트의 애칭은 ‘작은 장군’이다. ‘장군’으로 불린 미헬스 감독 아래서 코치수업을 받아 붙은 별명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 때 많은 걸 배웠다고 한다. 그는 미헬스의 확고한 원칙과 추진력, 그리고 팀 전체를 완벽하게 장악하는 리더십이 대단했다고 강조했다. 또 시간관념이 철저했다고도 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지도자로 승승장구했다. 미헬스 감독의 뒤를 이어 네덜란드대표팀을 이끌었고, 1994년엔 미국월드컵 8강, 2004년엔 유럽축구선수권(유로 2004) 4강에 올랐다. 아인트호벤(네덜란드)과 레인저스(스코틀랜드) 등 클럽을 맡아 리그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대표팀 감독직 제의를 받은 건 아랍에미리트(UAE) 대표팀을 맡고 있던 2005년 9월이었다. 한국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게 부담스러웠지만, 그는 본선행을 확정한 매력적인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월드컵에 이은 또 한번의 월드컵, 그리고 또 다른 신화를 꿈꿨다. 한국 팬들의 기대도 컸다. 같은 네덜란드 출신인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룬 성과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는 대표팀을 지도하면서 창조적인 플레이와 공격적인 축구를 강조했다. 하지만 손발을 맞추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부임한 지 8개월 만에 치른 2006 독일월드컵에서 토고를 2-1로 이기며 원정 월드컵 사상 첫 승을 거두고 강호 프랑스와 1-1로 비겼지만, 스위스에 0-2로 지는 바람에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걸로 한국축구와 인연은 끝이 났다.

이후 다수의 클럽 팀을 비롯해 벨기에, 러시아, 세르비아, 네덜란드대표팀을 이끈 그는 최근 중동의 이라크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이라크는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한조에 속한 한국과 2일 원정으로 첫 경기를 갖는다. 15년 만에 한국에 온 아드보카트 감독은 상대의 장수가 됐다. 그의 나이도 이젠 70대 중반이지만 풍부한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자서전 제목은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다. 스스로 경쟁력을 쌓고 이기려는 마음가짐을 단단히 한다면 그 어떤 목표도 이룰 수 있다는 게 요지다. 이번 경기의 가능성은 한국과 이라크 중 어느 쪽에 더 열려 있을까.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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