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할머니의 구수한 일상, 지친이들에게 힐링

입력 2021-10-18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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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골에 사는 68세 할머니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한창나이 선녀님’이 20일 개봉한다. 뒤늦게 한글을 배우고, 홀로 집짓기에 나서는 등 할머니의 도전이 뭉클한 위로와 울림을 안긴다. 사진|트리플픽쳐스

20일 개봉하는 다큐영화 ‘한창나이 선녀님’이 주목받는 이유

소 키우고 집짓고 한글 배우고
24시가 부족한 ‘임선녀 할머니’
수묵화같은 삶에 뭉클한 감동
‘워낭소리’‘님아…’ 뒤잇는 명작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당당히 홀로 살아가며 여전히 새로운 꿈을 꾸는 68세 할머니의 이야기가 관객을 찾아온다.

‘나 혼자’ 사는 게 너무나 바쁘고, 그래서 모두 ‘계획이 있는’ 임선녀 할머니가 주인공인 ‘한창나이 선녀님’(감독 원호연·제작 큰물고기미디어)이 20일 개봉한다. 최근 열린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최고 흥행을 기록한 ‘워낭소리’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을 잇는 웰메이드 작품으로도 호평 받고 있다.

‘선녀님’이라 불리는 할머니의 일상은 특별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꿈을 가지라고!” “잘∼살아보라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정겨운 시골 풍경
‘임선녀’. 하늘로 올라가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열여덟 나이에 시집와서 소 키우고 농사지으며 살아온 게 전부인 할머니이다. 하지만 소먹이 주고 소똥 치우며 땔감도 만드는가 하면 어느새 지붕에 널어둔 도루묵을 걷는 할머니의 하루는 24시간도 부족하다. ‘선녀’가 아니라 그야말로 ‘천하장사’이다. 못하는 게 없는, ‘열혈’ 할머니이다.

평범하지만 바쁜 일상은 평양냉면처럼 ‘슴슴한’ 맛을 느끼게 한다. 그 위에 그가 툭툭 내뱉는 투박한 강원도 사투리는 되레 숭늉처럼 구수한 맛을 안긴다. 집 뒤로 펼쳐져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강원도의 사계가 담아내는 풍광은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할머니의 일상과 어우러져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감동은 할머니가 한글을 깨우쳐가는 과정에서 더해진다. “이제 와서 택시비 아깝게 무슨 공부냐”는 자식의 말에도 그가 한글을 배우는 건 몇 년 전 사별한 남편의 유언 때문이다.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꿈꿔가는 여정은 결국 집짓기에 ‘도전’하는 데에까지 이른다.

“혼자라도 좋은 집 지어 살아봐야 하지 않겠나?”

할머니의 뚝딱뚝딱 망치질과 톱질은 이를 바라보는 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다.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선량하고 선한 사람들의 삶이 감동적이다”거나 “선녀님의 소탈한 활기 앞에서, 삶은 애쓰면 충분히 넘을 수 있는 만만한 고개가 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부재의 기억’으로 미국 아카데미상 단편다큐멘터리 부문에 후보로 올랐던 이승준 감독은 “세상을 설명하려 하고 누군가를 설득하려 하는 것에 지칠 때 담백한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감독의 여백이 한없이 반가운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호평했다.

4년의 제작 기간
연출자 원호연 감독은 4년의 시간을 촬영지인 강원도 도계에서 보냈다. “휴먼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10년 동안 해오다 5∼6년 전쯤 한 방송에서 “평생 힘들게 살았는데 늦게나마 한글 공부를 하게 되어 무척 기쁘고 즐겁다”는 임 할머니의 인터뷰를 보고 울컥해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산 많고, 물 맑고, 사람들이 순수한 강원도가 주는 느낌이 좋았다”는 그는 “글을 배운다는 건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닿아있는 일이기도 해 지역을 생각했을 때 바로 강원도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임 할머니를 만났다. 혼자 소를 키우며 농사를 짓는 임 할머니에게서 “살아가는 에너지”를 느꼈다고 한다. 원 감독은 “그분의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집중했다”며 “영화를 보는 관객이 다른 그 무엇이 아닌 오직 주인공에게만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엔딩 부분에 할머니가 환하게 웃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모습을 통해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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