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프하게 혹은 섹시하게…‘쎈언니 뮤지컬’로 새해 시작해볼까

입력 2021-12-3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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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숙-서지영-아이비-박혜나-백주연-김영주(맨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바야흐로 ‘쎈언니 전성시대’다. 영화, 드라마, 예능, 넷플리스 오리지널 시리즈, 웹툰 가릴 것 없이 쎈언니 천지다. 임인년 새해에도 암호랑이 같은 쎈언니들의 강세는 계속될 것 같다. 그런데 쎈언니들은 TV 속에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요즘 잘 나가는 뮤지컬들을 보면 쎈언니 캐릭터들이 하나씩 포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 뮤지컬 쎈언니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상당히 터프하면서 적당히 섹시하고, 어김없이 각자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 현재 공연 중인 여섯 편의 뮤지컬 작품 속 여섯 쎈언니 캐릭터를 골라 보았다.

● 신영숙 광기의 ‘레베카’ 소름 그 자체…‘레베카’ 댄버스 부인(신영숙·충무아트센터·2월27일까지)

‘레베카’는 어느덧 국민 뮤지컬로 자리 잡은 느낌. 맨덜리 저택의 집사 댄버스 부인은 죽은 여주인 레베카에 집착한 나머지 저택 주인 막심 드 윈터가 데려온 새 안주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광기에 찬 댄버스 부인이 부르는 넘버 ‘레베카’는 관객이 가장 열광하면 명장면. ‘신댄(신영숙)’의 교과서 연기는 밑줄 쳐 가며 봐야 한다.

# 신영숙: 댄버스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존재가치가 곧 자신의 목표이자 전부인 인물이지만 그저 이상하고 무서운 사이코 캐릭터라 볼 수만은 없다. 그의 비뚤어진 자존심과 신념의 과정을 관객들에게 설득시켜야 한다.

● 욕망 충실한 가식 없는 빌런, 마음에 쏙…‘프랑켄슈타인’ 에바(서지영·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2월20일까지)

한국 창작 뮤지컬의 걸작 ‘프랑켄슈타인’의 쎈언니는 단연 에바. 로마 콜로세움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격투장의 여주인으로 잔혹한 성격의 소유자다. 돈에 집착하는 것은 기본이요 괴물(프랑켄슈타인)과 하녀 까뜨린느를 조롱하며 쾌감을 느끼는 악녀. 새디스트의 냄새마저 풍긴다.

# 서지영: 에바는 가식없는 빌런이라 좋다. 인간의 이기적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 극 중 남편인 자크와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괴물에게 주는 상처가 작품에 매우 중요한 만큼 찰떡호흡으로 부부사기단(?)의 목표를 잘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다.


● 쎈 이미지 속 쓸쓸함, 더 성숙해진 루시…‘지킬앤하이드’ 루시(아이비·샤롯데씨어터·5월8일까지)

‘지킬앤하이드’는 정작 고향인 미국보다 한국에서 활화산처럼 흥행 폭발한 작품이다. 루시 해리스는 레드 랫의 쇼걸.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준 지킬을 연모하게 되지만 지킬의 또 다른 자아인 하이드에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아이비의 루시는 2018년 때보다 한결 성숙하고 풍성해진 느낌이다.

# 아이비: 극 중 루시의 서사가 부족해 아쉬움이 있다. 쎈 이미지는 내가 가수활동 할 때와 비슷한 것 같기도. 루시의 경우 직업상의 이미지일 뿐 이면에는 외로움, 쓸쓸함이 있다. 사랑과 관심을 받아보지 못하고, 남자들은 그저 돈으로 자신을 사려고만 한다. 루시의 외로움, 지킬을 만났을 때의 설렘을 보여드리고 싶다.

● 알코올중독 터프레이디, ‘짠한’ 쎈언니…‘하데스타운’ 페르세포네 (박혜나·LG아트센터·2월27일까지)

‘하데스타운’은 서양문화의 화수분으로 기능해 온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대략 현대판’이다. 박혜나가 맡은 페르세포네는 봄과 생명의 여신이자 하데스의 아내. 여신이지만 이 극에서는 남편에 대한 불만과 지루한 삶을 견디지 못해 술병을 끼고 사는 알코올중독 터프레이디다.

# 박혜나: 신이지만 인간에 가까운, 사랑에 진심을 다하는 봄과 여름의 여신. 신과 인간 사이의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술과 약에 취하지만 거기에 휘둘리면 안 된다. ‘오늘 만의 무대’를 위해 매 회 새 호흡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 단 두 번의 등장만으로 무대 장악 ‘감탄’…‘잭더리퍼’ 폴리(백주연·한전아트센터·2월5일까지)

19세기 실존했던 연쇄살인범 ‘살인마 잭’을 다룬 뮤지컬. 폴리는 런던 강력계 수사관이자 마약 중독자인 형사 앤더슨의 옛 연인으로 매춘부다. 겉은 쎈언니지만 속은 깊고 사람들을 챙기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극 중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다. 뮤지컬 ‘삼총사’에서 악녀 ‘밀라디’를 맡아 전설적인 명연을 남겼던 백주연은 이런 캐릭터 해석의 전문가다.

# 백주연: 폴리는 극 중 딱 두 번 등장하기 때문에 무대에 있는 짧은 시간 안에 관객들로 하여금 폴리라는 인물에 대한 서사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사 한 마디, 노래 한 소절, 얼굴 표정, 몸짓, 호흡까지 디테일하게 감정을 표현하려 하고 있다.

● ‘거친 말 툭툭’ 골초 아줌마의 변화 주목…‘빌리 엘리어트’ 미세스 윌킨슨(김영주·대성 디큐브아트센터·2월13일까지)

빌리의 발레 스승. 아이들에게도 거친 말을 툭툭 내뱉는 골초 아줌마지만 빌리의 재능을 발견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빌리와 함께 엄마의 편지를 읽는 장면은 이 작품의 숨은 명장면. 김영주의 연기는 윌킨슨의 심경을 단층이 아닌 겹겹이 쌓아올린 복층으로 만들었다.

# 김영주: 과거의 상처로 인해 감정적으로 그 누구와도 섞이는 걸 원치 않는 사람. 빌리를 지도하면서 빌리로 인해 감정을 회복하게 된다. 연기를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공연 내내 연민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투박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로지 빌리에게만 집중하려 하고 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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