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왼쪽), 김예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유영(왼쪽), 김예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는 단연 김연아(은퇴)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싱글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피겨의 역사를 새로 썼다. 2014년 소치대회에선 은메달을 따내며 2회 연속 올림픽 메달의 위업을 달성했다.


김연아가 소치동계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자 많은 이들은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피겨가 사실상 불모지에 가까웠던 과거의 모습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7위를 차지한 최다빈 등 기대주들이 등장할 때마다 많은 이들은 김연아를 언급했다. 그만큼 김연아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의 전성기를 바라보며 성장한 선수들은 자연스레 ‘김연아 키즈’로 불렸다.


2022베이징동계올림픽 여자 싱글에서 6위(총점 213.09점)를 차지한 유영(18), 9위(202.63점)에 오른 김예림(19·이상 수리고)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면 매번 ‘김연아 이후’란 타이틀이 따라붙었다. 이는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이자, 한편으로는 어깨를 짓누르는 요소였다. 그만큼 책임감이 컸기 때문이다.

유영.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유영.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럼에도 이들은 한국 피겨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동반 톱10의 성과를 냈다. 4회전 점프를 구사하는 알렉산드라 트루소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등과 비교해 기술 측면에선 보완해야 할 점이 많았지만, 주어진 프로그램을 완벽에 가깝게 소화했다.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마친 뒤 유영과 김예림의 표정에서 한 단계 성장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관심도 엄청났다. 대중은 유영과 김예림의 몸짓 하나하나에 감동했다. 착지가 다소 흔들리면 함께 안타까워했고, 완벽하게 기술을 구사하면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렇게 한국 피겨의 미래는 김연아의 그늘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음을 알렸다.

김예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김예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선수들의 목표의식은 확실했다. 유영은 3바퀴 반을 돌아야 하는 고난도 점프인 트리플 악셀에 사활을 걸었다. 100%의 점수를 받진 못했지만, 깔끔한 착지로 모두를 설레게 했다. 링크 위에서 늘 씩씩했던 김예림에게는 ‘피겨 장군’이란 애칭이 붙었다. 그는 “나는 키가 큰 편이니 피지컬을 활용한 시원시원한 안무를 지켜봐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은 유영과 김예림에게 엄청난 힘이 됐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는 또 있다. 첫 올림픽을 마친 시점에서 둘 다 10대에 불과한 데다 목표의식 역시 뚜렷하다. 도핑테스트 양성 반응으로 물의를 일으킨 카밀라 발리예바(ROC)에게 엄청난 관심이 쏠린 상황에서 부담을 이겨내고 최고의 연기를 펼친 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멘탈을 장착했다는 증거다. 한국 여자 피겨의 미래를 밝혀준 유영과 김예림의 향후 행보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더 열심히 해서 한국에 올림픽 티켓 3장을 만들도록 하겠다.” 유영의 당찬 포부가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베이징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