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사진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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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재민(39)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누구보다 뜨겁게 보냈다. 배우가 아닌 스노보드 해설위원으로서다.

KBS에서 5일부터 15일까지 하프파이프, 슬로프스타일, 빅에어 등 각종 스노보드 종목 경기들을 해설했다. 시청자들이 스노보드의 매력을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도록 밤잠을 줄여가며 해설에 매진했다.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그의 해설은 올림픽 내내 화제가 됐다. 다양한 어록들이 묶여 온라인상에서 끊임없이 공유되는가 하면, 해설 장면을 한데 모은 영상들은 유튜브에서 최대 270만 뷰를 훌쩍 넘겼다. 시청자들은 ‘감동 해설’이라며 호평을 쏟아냈다.
박재민. 사진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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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시 서대문구 스포츠동아 사옥에서 만난 박재민은 “예상치 못했다”면서 기쁨을 드러냈다. 열흘간 고군분투했던 나날들을 떠올리며 “다음엔 더 잘하고 싶다”고 의지를 다졌다.

“250여 선수들 정보 줄줄 외워”

스노보드 경력은 올해로 27년째다. 2010년 국제심판자격증도 취득해 매년 국제심판들과 연수를 받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해설위원 마이크를 잡았다. 수많은 선수의 생일부터 독특한 이력, 좌우명까지 줄줄 외는 ‘TMI(투 머치 인포메이션)’ 해설이 특히 재미있다는 반응을 얻었다.


-해설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

“시간과의 사투예요. 올림픽 개막 사흘 전에야 각 국가대표 최종 명단이 나와요. 그때부터 250여 명에 달하는 참가 선수들의 정보들을 미친 듯이 수집하죠. 기본 사항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홈페이지에 나오지만, 그것들로는 턱없이 부족해요. 모든 선수의 SNS 계정에 접속해보는 건 기본이고요, 때로는 선수들에게 직접 SNS로 다이렉트 메시지(DM)를 보내 물어보기도 했어요. 미국의 클로이 김, 대구 출생의 노르웨이 국가대표 한네 아일러츤에게 한국 팬들을 향한 응원 한 마디를 부탁한 게 기억에 남네요.”

박재민. 사진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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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보드를 음식 조리 과정에 비유해 설명하는 등 친근한 해설이 주목받았다.

“저도 다시 찾아보면서 스스로에게 ‘이 녀석, 꽤 잘했는데?’ 말해준 멘트들이 있기는 해요. 하하하! 딱 붙는 랜딩을 가리키는 ‘찰떡랜딩’이 대표적이죠. 모두가 100% 애드리브에서 비롯된 말이랍니다. 국내에서는 스노보드가 대중적이지 않으니 해설도 누구나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했어요. 국내 스노보드 산업은 정말 작아요. 전 종목 선수가 200여명 남짓밖에 되지 않을 정도죠. 동호인이라도 늘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노력했습니다.”


-슬로베니아의 글로리아 코트니크를 언급한 해설은 ‘명장면’으로 꼽히는데.

(스노보드 알파인 여자 평행대회전에서 출산 이후 은퇴했다가 복귀한 글로리아 코트니크가 동메달을 따자 ‘대한민국의 많은 어머니가 아이를 출산하며 경력단절을 겪지 않나’라며 ‘코트니크는 아이를 낳고 은퇴했다 돌아와 10대와 20대도 아닌 2022년에 최고 커리어를 만들어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에서도 출산 이후 운동이나 연기를 그만둔 경우를 자주 봐왔어요. 그래서인지 지난 시즌까지 시합에 나서지 못했던 코트니크가 동메달을 획득할 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와 가족들이 들였을 노력이 생각나 벅차올랐죠. 저도 모르게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분들을 향해 ‘이제 시작하셔도 늦지 않다. 여러분도 할 수 있다’고 외치게 됐어요.”

박재민. 사진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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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와 해설 잘하는 이야기꾼”

특기는 스노보드만이 아니다. 14세부터 비보잉을 췄고,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재학 당시 농구에도 심취했다. “하나를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 때문에 브레이킹 국제심판, 대한농구협회 공인심판 자격까지 일찌감치 땄다.

연기는 2003년부터 시작했다. “모든 분야가 나의 ‘본캐’(주력하는 캐릭터)”라며 웃는다.


-해설과 연기의 공통점은?

“모두가 ‘이야기’의 일종이라는 점이죠. 제 목표는 좋은 ‘이야기꾼’이 되는 것이에요. 연기자와 해설위원 모두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역할이라고 봐요. 이를 위해서는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현상을 많이 보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행위의 매력을 알게 됐어요.”

박재민. 사진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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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위원으로서 고충은 없나.

“사실 선수들이 주목받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큰 관심을 받아 마음이 복잡했어요. 무척 감사한 일이지만 선수들을 스타로 만들어야 하는 제게는 숙제가 많아진 느낌이죠. 연예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스포트라이트가 옮겨진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스노보드 후배들에게 적게나마 장학금을 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힘을 보태려고 노력해요.”


-이후 계획은?

“배우로서는 영화와 드라마에 계속 나설 예정이에요. 24일에는 앞서 출연한 영화 ‘광대:소리꾼’이 재개봉합니다. 해설위원으로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브레이킹, 3대3 농구 등에 참여할 예정이에요. 모두가 취미 겸 생업이어서 즐겁게 ‘밥벌이’를 하고 있답니다.”


-활동을 통해 드러내고 싶은 메시지는?

“저를 보면서 누군가는 확고한 꿈을 가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종종 꿈이 없다며 고민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명확한 꿈이 없어도 멋진 삶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 또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목표보다 내 앞의 일에 집중하다보니 지금에 다다랐거든요. 흘러가는 대로 살되, 매순간을 진심으로 살면 분명 빛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