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슈만, 브람스 그리고 박유신”…첫 솔로앨범 시인의 사랑 [나명반]

입력 2022-03-18 1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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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속에서 울고 있었다. 그대가 무덤 속에 있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지만 눈물은 계속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48)’ 중 열세 번째 곡 ‘나는 꿈속에서 울고 있었네(Ich hab‘ im Traum geweinet)’의 가사 한 구절을 옮겨 보았다.

평생 피아노 작품만 썼을 것 같은 슈만이지만, 사실 그는 250여 편에 달하는 가곡을 작곡한 가곡의 명인이었다. 그 중에서도 ‘시인의 사랑’은 슈만 가곡의 정점을 찍는 작품. 슈만은 연인 클라라 비크와 결혼해도 좋다는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며 - 아마도 떨리는 손으로 - 이 연가곡을 썼다. 동변상련의 아픔을 그린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였다.
슈만이 서른 살이 되었던 1840년. 사랑을 알기엔 넘치고, 인생을 알기엔 부족한 나이였다.

이 음반은 ‘시인의 사랑’ 전곡을 사람이 아닌 첼로의 목소리로 노래했다.
이 멋진 기획의 주인공은 첼리스트 박유신. ‘슈만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는 피아니스트 플로리안 울리히가 함께 했다.

가사가 없는 가곡은 어떤 느낌일까. 자칫 건더기 쏙 빠진 국 같은 맛이 나지는 않을까.
그럴 리가. 박유신의 첼로는 우리가 알던 ‘시인의 사랑’을 심연으로 끌고 들어간다. 소리는 단단하고 깊어 슈만의 밑바닥까지 긁어내는 느낌이다.

들으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주억주억. 통사 첼로(다른 현악기도 매한가지지만)와 피아노의 듀오를 듣고 있으면

첼로=짜장면
피아노=단무지

이런 느낌인데, 박유신과 울리히의 조합은

첼로=라면
피아노=스프

라는 기분이다.

박유신의 첼로와 울리히의 피아노는 완전히 독자적이면서 완전히 유기적이다. 덕분에 대단히 개성적이면서 ‘슈만스러운’ 슈만이 완성되었다. 귀가 스윽 빨려 들어간다.

박유신의 첼로에서는 가사의 부재로 인한 결핍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사가 제공하는 이미지의 한계를 벗어나 청자로 하여금 상상의 폭을 끝없이 확장할 수 있게 해준다.

눈을 감으면 한 곡 한 곡 그림이 펼쳐진다. 황량하고 쓸쓸하지만 결국 미소 짓게 만드는 장소, 기억, 소리, 냄새. 30대 슈만의 사랑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이 황홀한 경험이 끝나고 나면 브람스를 만날 수 있다. 첼로 소나타 1번. 이 작품을 썼을 때 브람스의 나이 역시 30대 초반이었다.
박유신이 들려준 브람스는 슈만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그는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슈만 속으로, 브람스의 속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이 음반은 슈만, 브람스 그리고 박유신이라는 세 명의 예술가가 시공간을 넘어 ‘30대의 정서’로 의기투합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이왕이면 혼자 있을 때 이 음반을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이 음반이 지닌 사랑, 그 황량하고도 황홀한 고독은 결코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 이 코너는 최근 출시된 음반, 앨범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코너의 타이틀 ‘나명반’은 ‘나중에 명반이 될 음반’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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