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지원. 사진제공 | KLPGA
‘개미허리’ 페어웨이에 빠른 그린, 그리고 100㎜가 훌쩍 넘는 러프. 특히 러프가 ‘무서웠다’. 발목까지 빠지는 러프에선 레이업을 한 볼이 다시 러프로 가기 일쑤였다. 나흘 동안 언더파를 친 선수가 단 한명도 없는 ‘악마의 코스세팅’에서 투어 2년 차 홍지원(22)이 신데렐라로 화려하게 탄생했다.
홍지원은 28일 강원 춘천시 제이드팰리스GC 웨스트·이스트 코스(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2022시즌 하반기 첫 메이저대회 ‘한화 클래식 2022’(총상금 14억 원) 4라운드에서 버디 3개와 보기 3개를 맞바꿔 이븐파 72타를 쳤다. 합계 1오버파 289타를 기록하며 박민지(24¤5오버파)를 4타 차로 따돌렸다. 데뷔 첫 우승을 메이저 퀸으로 장식하며 우승상금 2억5200만 원을 획득했다. KLPGA 투어 오버파 우승은 2015년 제29회 한국여자오픈 박성현(29¤1오버파) 이후 7년 만.
홍지원은 정윤지(22), 하민송(26¤이상 4오버파)에 3타 앞선 1오버파 단독 1위로 4라운드를 맞았다. 경험이 적은 홍지원이 난코스에서 부담감을 어떻게 극복할지 관심사였지만, 추격자들이 타수를 잃고 뒷걸음질을 치는 사이 오히려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6번(파4) 홀까지 파 세이브 행진을 이어간 뒤 7번(파3) 홀에서는 12m 거리의 프린지에서 친 웨지샷이 그대로 칩인 버디로 연결되며 공동 2위 그룹에 6타 차로 달아났다.
바로 앞 조 박민지가 7번(파3) 홀 더블보기 이후 8~10번(이상 파4) 홀 3연속 버디로 5타 차로 따라붙었지만 홍지원은 12번(파5) 홀에서 이날 두 번째 버디 사냥에 성공하며 2위에 6타 차로 다시 달아나는 등 이렇다 할 위기조차 없는 완벽한 우승을 만들어냈다.
홍지원은 지난해 루키 시즌을 상금랭킹 35위(2억660만 원)로 마쳤지만 올해 정확한 샷에 비해 퍼트가 좋지 않아 고전했다. 직전대회까지 그린 적중률 7위(78.25%)에도 불구하고 최하위권인 120위(32.0213개)에 그친 평균퍼팅수가 보여주듯 퍼트가 문제였다. 이전까지 19개 대회에서 10번이나 컷 탈락하며 상금랭킹 82위(5731만 원)에 그쳐 시드 유지에도 빨간불이 켜진 상태였다.
하지만 한화클래식과 제이드팰리스GC은 ‘약속의 무대, 약속의 땅’이었다. 2년 동안 톱10 진입이 4번뿐이던 홍지원은 지난해 이 대회에서 공동 3위로 개인 최고 성적을 냈고, 기분 좋은 기억을 가진 코스에서 감격적인 데뷔 첫 우승컵을 손에 넣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는 골프 팬들에게 ‘홍지원’이란 이름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우승 덕분에 3년 시드를 확보한 홍지원이 받은 상금 2억5200만 원은 이 대회 전까지 47개 대회에서 챙긴 2억6392만 원에 육박하고, 지난 시즌 벌어드린 상금보다 훨씬 많다.
어렸을 때 피겨를 한 경험 탓에 큰 경기를 앞두고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피겨 퀸’ 김연아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 그는 “오늘도 아침에 김연아 선수의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영상을 보고 나왔다”며 “나도 담담하게 플레이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우승 확정 후 진한 눈물을 쏟은 그는 “코스 세팅이 너무 어려워 보기를 해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으로 쳤더니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앞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좋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춘천 |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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