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 장르적 재미와 묵직한 메시지…탁월한 팩션 사극 [리뷰]

입력 2022-11-15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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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NEW

현란한 액션이나 거대한 특수효과도 없다. 화려한 볼거리가 쏟아지는 영화도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러닝타임 118분 동안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촘촘한 이야기가 만들어낸 스릴과 서스펜스 덕분이다. 호러 영화를 보는 듯 섬뜩함을 자아내다가도 어느 새 가슴을 뜨겁게 울리기까지 한다. 당신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영화 ‘올빼미’(감독 안태진, 제작 씨제스엔터테인먼트)다.

23일 개봉하는 영화는 1645년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 8년 만에 조선에 돌아온 뒤 급서(急逝)한 소현세자와 관련한 미스터리를 스릴러로 풀어냈다. 맹인 침술사가 소현세자 독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봐선 안 될 것을 본 자와 보여선 안 될 것은 본인 자들의 팽팽한 대립 속에 스릴러의 장르적 재미와 우리가 침묵해서 안 되는 것들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까지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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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 사극의 좋은 예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팩션 사극이다. 앞서 팩션 사극을 표방한 여러 작품들이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며 비판이 대상이 됐었기에 일각에서는 ‘올빼미’에 대한 우려 역시 흘러나왔다. 하지만 영화는 논란에 휩싸였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다. 실록에 기록된 ‘사실’은 철저하게 고증하되 오직 ‘실록에는 없는 공백’만 상상력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사실을 상상력으로 ‘대체’하는 많은 팩션 사극들이 범하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가상의 인물인 맹인 침술사와 그와 얽힌 이야기들로 ‘실록의 공백’을 채우되 소현세자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설정들은 철저히 ‘실록에 기반’했다. 중심사건인 소현세자의 죽음을 독살로 정의한 것도 “(소현세자가) 약물에 중독 돼 죽은 사람 같았다”라는 인조실록에 의한 것이다.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극중 소현세자의 최후 모습까지도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붉은 피가 나왔다”는 실록의 기록을 그대로 고증했다. 소현세자를 향한 인조의 불만,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비정상적인 후계자 책봉 등 역사를 알면 알수록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이야기를 구성했다.


●재미와 의미 갖춘 웰메이드 스릴러


사실 맹인이 범죄 현장을 목격하면서 벌어지는 영화의 이야기가 신선하다고 할 수는 없다. 시각장애인이 싸이코패스 살인마를 목격하는 이야기를 그린 2011년 김하늘 주연의 ‘블라인드’와 장님인 척 하는 사람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2018년 ‘블라인드 스토리’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다만 영화는 목격자가 밝은 곳에서는 앞을 전혀 보지 못하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희미하게 볼 수 있는 ‘주맹인’이라는 설정으로 새로운 재미를 준다. 자신의 의지와 달리 주변 밝기에 따라 때로는 앞을 보거나 때로는 보지 못하면서 스릴과 서스펜스를 더욱 극대화 한다.

잘 빠진 스릴러 영화의 외피 안에 담긴 묵직한 메시지도 인상적이다. 본 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살아야 하는 미천한 맹인 침술사에게 확대경을 선물해 제대로 된 글자를 배우게 한 소현세자와, 그런 소현세자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침묵하지 않으려는 맹인 침술사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영화가 감정 과잉이나 감동으로 포장한 가학적 표현 없이도 코끝을 시큰거리게 만드는 이유다.


●놀라운 배우들의 연기

맹인 침술사 역의 류준열은 영화의 중심축으로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힘 있게 끌고 간다. 맹인을 표현하는 연기의 테크닉도 뛰어나지만 그보다 뛰어난 건 감정 연기다. 소현세자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목격 후 겪는 여러 딜레마 등의 섬세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올 여름 ‘외계+인’으로 받은 상처를 이번 영화로 말끔히 씻을 전망이다.

아들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변해가는 왕 인조를 연기한 유해진의 연기는 놀랍다. 관객에게 익숙한 유쾌하고 친근한 얼굴을 완전히 지우고 욕망, 불안, 질투, 후회, 미움, 지질함 등 모든 불경한 감정들의 총집합 같은 인물을 완성했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완전히 새로운 왕의 모습이다. ‘광기 연기’라고 단순히 정의내릴 수 없는 다층적인 얼굴이다.

소현세자 역의 김성철은 이 영화의 최고의 발견이다. 악랄하고 센 캐릭터가 아니라 선하고 자애로운 캐릭터로도 관객의 뇌리에 박혀 절대 지워지지 않는 ‘신스틸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였다.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변화하는 맹인 침술사의 행동에 관객이 더욱 이입할 수 있는 건 소현세자와 완전히 동화된 김성철의 따스한 연기 덕이라 할 수 있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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