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혁의닥.본.사.]장미희의‘재수없는우아함’에반한다

입력 2008-04-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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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난 드라마 속의 캐릭터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것이 연락 끊긴 고등학교 동창들보다 궁금할 때가 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는 아직도 삼식이와 티격태격하고 있는 건지, ‘커피프린스1호점’의 고은찬은 여전히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살고 있는지, ‘뉴하트’의 이은성 선생은 여전히 좌충우돌 중인지 말이다. 현실과 드라마를 혼동하는 정신장애인지도 모르겠으나, 그 만큼 이들의 생생함은 인상적이었다. 영화가 어떤 사건을 겪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드라마는 주위에 있을 법한 인물들의 세상살이를 통해 감동을 준다. 배우 장미희가 연기하는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별나라’ 시어머니 은아는 이런 의미에서 가장 공감 불가능한 인물로서 오히려 연민까지 느끼게 하는 일종의 희귀 케이스다. 자기 아닌 모든 사람을 ‘고작’으로 생각하고, 인사 온 며느리감에게 대놓고 “처지를 안다면 다른 사람을 알아보라”며 웃는 얼굴로 ‘산 사람 포 뜨는’ 안하무인의 시어머니. 오페라 가수가 노래하듯 “미쎄스 문”을 외쳐대며, 아들의 단식 투쟁과 남편의 가출 협박에 마지못해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꼬라지’ 예비 며느리를 데리고 이 옷, 저 구두 입혀보고 신겨보며 ‘인형놀이’에 심취하는 스무 살 감수성의 오십대 준재벌 사모님. 누가 봐도 소위 ‘재수 없고’, 어디다 내놔도 ‘비호감’인 이 주름살 하나 없는 마나님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하는 고차방정식을 노련한 배우 장미희는 하나의 공식으로 풀어낸다. 바로 연극하듯 사는 삶을 연기하는 것. 악역을 단순히 연기하기는 쉬울지 몰라도, 미워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웬만한 내공으로는 어렵다. 극중 은아는 자신의 삶보다 남들이 보기에 ‘우아하고 격조 높은’ 삶을 살기 위해 그녀가 키우는 새처럼 새장에 스스로 갇혀 있다. 그래서 자신이 쌓아놓은 교양의 계단에 걸려 넘어져도 “잔디나 밟자꾸나”라며 종종 걸음으로 도망한다는 것을, 장미희는 마치 연기 같지 않은 연기로 설득해낸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 인생’을 살아가는 여자.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팔불출’ 남편의 여전히 그윽한 시선에 슬며시 웃음 짓게 되는 것은, 항상 일정한 높이와 톤으로 얘기하는 교양 있는 그녀의 말 속에 있는 숨겨진 앙상함을 이제는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닐까? 머릿 속을 맴도는 상상 하나. 극중 은아가 어떤 시상식에 혹시 가게 되면 “여러분, 아름다운 밤이에요”를 외칠 것 같다. CJ엔터테인먼트 드라마 사업팀 프로듀서. 나름 평탄했던 음악 채널의 PD 생활을 조기 종영하고 거칠고 짓궂은 드라마 세계로 인생의 편성표를 바꾼 다소 무모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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