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소장님회식비아껴써요”

입력 2008-11-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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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선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본사가 서울에 있고, 매해 1월이면 1년 치 예산이 한꺼번에 내려옵니다. 저는 사무실의 유일한 여자인데, 그 예산을 관리하고 분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에 저희 소장님이 새로 부임해 오셨는데, 이 분이 회식을 너무 너무 좋아하는 분이신 겁니다. 그래서 예산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배분할지 생각도 안 하시고 무턱대고 회식만 하셨습니다. 그러던 지난 9월 결국 예산이 바닥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내년 1월이나 되어야 예산이 채워질 텐데 남은 달을 어떻게 채워 갈 건지… 저희는 그야말로 쫄쫄 굶어야 할 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소장님이 “우리 이번 달 회식은 어떻게 할까?” 이러시는 겁니다. 다들 돈도 없는데 무슨 회식이냐 그랬고, 저희 소장님은 새우 눈처럼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시더니 “사무실에서 회식을 하면 되지” 이러시는 겁니다. 아니 사무실 회식이라니! 저는 솔직히 좀 불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소장님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시며 “내가 원래 낚시 광이잖아. 주말에 낚시로 매운탕 거리 잡아올 테니까 밥이랑 반찬 같은 건 각자 한사람씩 맡아서 싸오는 거야. 어때? 괜찮겠지?” 이러셨습니다. 다른 직원들도 색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다며 좋아했습니다. 그 때 새신랑인 직원이 손을 번쩍 들면서 “저희 집이 농사를 지어서 쌀이 많거든요. 밥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했고 노총각 아저씨가 “저는 자취해서 뭐 해올게 마땅치 않으니까 후식으로 과일이나 조금 사올게요” 그리고 이어서 김 씨 아저씨가 “내가 곱창을 기가 막히게 하는 디를 아는디. 그라믄 나는 곱창이나 쪼매 사 오믄 쓰것그마” 했습니다. 결국 소장님께서 저를 보시며 “그라믄 밑반찬이 남았는디 재현 씨가 아무래도 여자니께 반찬은 잘 만들것제? 밑반찬은 재현 씨가 준비해 오믄 쓰것네” 하셨습니다. 그렇게 밑반찬을 담당한 저는 집에 오자마자 엄마를 졸라대기 시작했습니다. 밑반찬이 말이 밑반찬이지 은근히 손이 많이 갔습니다. 거기다 각자 입맛에 맞게 이것저것 준비하자니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대충 해가자니 저희 엄마 음식솜씨 없다고 흉볼 것 같았습니다. 이래저래 고민도 많았고, 그렇게 고민하다가 그래도 기왕 하는 거 저희 엄마 음식솜씨 좋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정성껏, 돈도 많이 들여서, 다양한 반찬들을 준비해갔습니다. 드디어 회식하는 날!! 다들 가져온 음식들을 잔뜩 풀어놓았습니다. 소장님은 잡아온 붕어와 작은 물고기들로 매운탕을 끓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양념도 별로 없이 거의 고추장에 물고기만 넣어 끓인 매운탕이었습니다. 의외로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무실에서 먹으니까 서로 가족 같은 느낌도 들고, MT온 기분도 들고, 분위기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저희 소장님, 사무실 회식한지 일주일 만에 또 회식을 하자고 그러십니다. 아무리 즐거운 회식이었지만 집에서 뭘 자꾸 싸와야 하는데, 귀찮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하고 다들 표정이 별로 안 좋았습니다. 좋은 것도 한 두 번이지, 이러다 거의 매주 사무실 회식하자고 그러실까봐 겁이 났습니다. 예산이 모두 바닥나도 소장님의 회식사랑은 끝이 없는데, 앞으로 두 달을 어떻게 버틸지 정말 걱정입니다. 내년 1월이 되면 다시 예산이 내려올 텐데 그 때는 소장님께 간곡하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예산 좀 아껴 쓰자고 말입니다. 회식도 좋지만, 예산 배분도 중요하다는 거! 소장님 제발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북 전주 | 홍재현(가명)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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