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참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생활비 아껴서 소설책이든 수필이든 한 달에 한 권씩은 꼭 사서 읽으려고 합니다.
제가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줘서 그런지, 초등학생인 저희 집 두 아이들도 책 읽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눈뜨면 책부터 손에 잡고, 저녁에 밥 먹을 때까지 책을 들고 올 정돕니다.
제가 늘 하는 잔소리가 “얘 책 덮고 밥 좀 먹어라. 학교 숙제는 했어? 책 그만 보고 숙제부터 해야지∼” 이럴 정도로 저희 애들은 책을 끼고 살고 있습니다.
서울 사는 손위시누이가 저희 집 애들 책 많이 본다고, 시누이 집에 안 보는 애들 책을 좀 보내주셨습니다. 보내주실 때 동대문시장 헌책방에서 새 것 같은 중고책도 사서 같이 보내주셔서, 저희 집엔 갑자기 책이 잔뜩 쌓이게 됐는데, 그 걸 어디다 놔둘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여보! 우리 책장 좀 사자. 애들이 책 꽂을 때가 없어서 그냥 바닥에 쌓아놓고 보니까 책이 다 망가진단 말이야∼” 했더니 남편이 “그거 사면 어디다 놓을 건데? 머리에 이고 살 거야?” 라고 했습니다.
제가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 치우고, 거실에다 놓으면 되지” 했더니 “우리 집이 무슨 도서관이야? 텔레비전도 없이 책장만 가득하게. 나 힘들게 일 하고, 유일하게 쉬는 낙이 바로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보는 거야∼ 쓸 데 없는 소리하지 말고 그냥 살아” 이랬습니다. 아니 애들을 위해 책장을 놓아주자는 건데, 그게 쓸 데 없는 소리라니요?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아이들을 시켜 남편을 꾸준하게 설득시켰고, 마침내 텔레비전을 없애고 거실에 책장을 두는 데 성공했습니다. 텔레비전은 맘 같아서는 그냥 없애고 싶었지만, 그래도 남편을 위해 안방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전 장소가 옮겨지자 한 가지 부작용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우리 딸아이가 학교 갔다 오더니 펑펑 울기 시작하는 겁니다.
제가 “은정아 왜 울어? 친구랑 싸웠어? 아니면 선생님한테 혼났어?” 하고 물어봤더니 애가 서럽게 울면서 학교에서 보고 온 시험지를 한 장 내밀었습니다. 그 시험지를 보니까 다른 건 다 맞았다고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데, 딱 한 문제에만 틀렸다고 표시가 돼 있는 겁니다.
문제를 보니까 ‘우리 집에서 아래 설명하는 공간은 어디일까요?’ 하는 문제였습니다. 예문이 ‘손님이 오면 이곳에서 손님을 맞아 이야기를 나눠요. 가족들이 모여서 대화를 하는 곳이에요. 텔레비전이 있어요!’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기가 ‘ㄱ-거실, ㄴ-안방, ㄷ-작은방, ㄹ-부엌’ 이렇게 적혀있는 겁니다. 설명으로 봐선 거실을 말하는 것 같은데, 우리 딸은 ‘안방’이라고 답을 해놓았습니다.
제 딸아이가 울면서 해명을 하길 “엄마 그게 사실은 나도 거실이라 생각했는데 텔레비전이 있다고 그래서 안방이랑 헷갈려서 고민하다가 안방 했더니 틀렸어!!” 이러면서 막 울어버렸습니다.
더 속상한 건, 이 한 문제 때문에 우리 애가 올백을 맞을 수 있는데, 그걸 놓쳤다는 겁니다. 요즘처럼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시대에, 반드시 텔레비전이 거실에 있으란 법도 없고, 그렇게 못 박아서 시험문제에 내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이미 채점이 다 끝난 건데 어쩔 수 없어서 아이를 다독거리며 “괜찮아.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대신 다른 문제는 다 맞았잖아. 그것만해도 잘했어” 하며 위로를 했답니다. 비록 텔레비전이 안방으로 들어가서 우리 딸애는 올백을 놓쳤지만, 그래도 참 기쁜 일은 하루 종일 리모컨만 잡고 있던 남편이 드디어 책을 손에 잡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거실에 작은 책상 펴놓고, 애들하고 같이 책보는 남편 모습 보면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번진답니다.
대구 동구 | 박은자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