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와권상우그리고바보온달

입력 2009-04-12 09: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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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문화비평 KBS ‘꽃보다 남자’가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러나 ‘꽃보다 남자’가 표방한 ‘왕자님 전성시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향후 청춘 트렌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왕자님’ 캐릭터는, 정확히 말해, 극예술 형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시점부터 존재해 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의 현실도피적 욕망과 변치 않는 인기 아이템 ‘사랑’ 코드가 만나면 자연스레 탄생되는 게 왕자님이다. 그러나 ‘꽃보다 남자’로 폭발한 왕자님 캐릭터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지난 세월 왕자님들과는 사뭇 다른 면모다. 시대와 환경적 요구가 더 ‘뻔뻔스럽게’ 반영된 형태다. 과거와 비교해 보기로 하자. 지난 세월 왕자님들은 몇 가지 고정요건을 따라 계속 재생산돼 왔다. 이런 식이다. 일단 외모 면에서 출중해야 한다. 낭만적 사랑의 기본이다. 다음으로, 부유해야 하지만, 부에 종속된 삶을 살아선 안 된다. ‘반항적 부잣집 아들’ 캐릭터가 그렇게 탄생했다. 이것이 ‘왕자님 집합소’ 격인 일본만화 ‘캔디 캔디’의 ‘테리우스’로 이어졌다. 캐릭터에 지성과 낭만성을 부여시키기에도 좋고, 신데렐라 워너비들의 공포심을 누그러뜨리기에도 좋은 코드여서 애용됐다. 굳이 말하자면, 배우자를 통해 사회적 상류계층으로의 편입만 바라는 형태다. 경제적 풍요까지 얻기 위해 적응하기 힘든 상류사회로 들어가 도외시 당해야 한다는 건 손익이 떨어지지 않는 계산이었다. 그 밖에 어두운 과거의 보유, 애정을 모르고 사는 성격 등 ‘나쁜 남자’ 캐릭터를 완성시켜 주는 요건들은 부차적으로 선별돼 적용됐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이후부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외모에 대한 조건은 여전했다. 그러나 부의 측면에서 조금 달랐다. 고도자본주의 사회는 신흥부호들을 수없이 탄생시켰다. 따라서 ‘집안’ 연연해 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조건에 동의가 줄었다. 자수성가한 신흥부호가 이상형으로 등극하며, 이성적 매력과 경제적 여유를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왕자님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들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캔디렐라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는? 일에만 몰두하다보니 인간미가 사라져 제대로 된 사랑을 못해봤기 때문이다. 외모·공부·일 우등생-사랑 열등생 구조가 나왔다. 이 풍조는 1990년대까지도 이어져 영화 ‘귀여운 여인’의 리처드 기어까지 이어졌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도묘지 츠카사는 이와는 다르다. 이들은 정상적 환경 내에서 나올 수 있는 왕자님이 아니다. 경제 불황기 대중 정서를 감안해 재편된 캐릭터들이다. 또한 이런 캐릭터들이 처음 등장한 것도 아니다. 이미 21세기 초반 ‘귀여니’로 대표되는 인터넷 소설 열풍을 통해 한 차례 소개된 바 있다. 이들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외모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빠지지 않는다. 그 다음, 부의 측면에서 조건이 달라졌다. 신흥부호들을 제치고 다시금 부잣집 아들 캐릭터들이 살아났다. 초장기적 경제 불황기에 결국 살아남는 것은 ‘집안 내력 튼튼한’ 이들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만 보더라도, IMF 이후 속속 등장했던 테헤란로 IT 키즈들은 불과 5,6년을 못 버티고 차례로 쓰러진 바 있다. 신흥부호란 ‘위험한 코드’가 됐다. 여기에 새롭게 추가된 조건이 있다. 싸움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 하는 걸 넘어서 아예 불량아 수준까지 가줘야 한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남성성 부각의 코드가 돼서 그렇다. 성적 능력에 대한 암시로도 작용한다. 성적 코드가 만연한 사회의 반영일 수도 있고, 경제 불황기에 으레 일어나는 본능적 욕구에의 집착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여성이 접근하기 힘든 코드들의 연속이 된다. 잘 생기고 성적 능력이 강해 이성적 매력이 있다. 이런 남성에겐 다른 여성의 유혹이 끊이지 않고, 선택의 여지도 많아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집안’ 코드가 살아나다보니 또다시 계층 간 갈등의 공포가 일어날 수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새롭게 추가된 코드가 ‘머리는 나쁘다’다. 열등생에 기본적 판단능력조차 미미하다. 그래야 여성이 ‘브레인’이 되어 남성을 조종하고,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코드 내에서 여성은 미적 감흥도, 섹스도, 돈도, 모두 얻고, ‘나쁜 남자’ 코드까지 첨부시켜 주면 모성애까지 충족된다. 이 코드를 그대로 따른 것이 인터넷 소설가 최수완의 원작을 영화화 해 500만 관객을 끌어모은 대히트작 ‘동갑내기 과외하기’다. 경제 불황기 정서를 정확히 뀄다. 그리고 이 코드의 ‘드라마판’이 바로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도묘지 츠카사다. 윤지후-하나자와 루이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5000만부가 판매된 가미오 요코의 원작만화 역시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10년’ 초기인 1992년부터 연재됐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 미국 영화산업 중심인 만화원작 블록버스터도 ‘아이언 맨’, ‘다크 나이트’ 등을 통해 ‘부잣집 아들’들을 일제히 주인공으로 포진시켜 놓고 있다. 경제 불황형 왕자님-영웅이란 결국 어느 문화권에서나 비슷한 요건들을 필요로 하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현재의 ‘왕자님’ 열풍은 일시적 현상이 될 수가 없다. 시대와 환경이 만들어낸 대세라 딱히 거스를 길이 없다. 남은 것은, 이 새로운 왕자님을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 할지다. 이들 4대조건(외모, 돈, 섹스, 무뇌) 왕자님들은 워낙 반발이 심한 요건들을 지니고 있다. 특히 남성층의 분노가 심하다. ‘집안’ 코드의 부활로 경제 양극화-계층이동 불가에 따른 분노를 일으키기 쉽다. ‘무뇌’ 캐릭터도 문제가 많다. 경제 불황으로 인한 정서 보수화 탓에 여성주의 진영에 대한 남성의 혐오가 거센 시기다. 바보 남성을 조종하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반발은 당연하다. 폭력적 요소가 들어갈 수?謗?없는 섹스어필 방식 역시 드라마 심의에서 꾸준히 문제제기가 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코드의 변경이 불가피하다. 가장 먼저, 폭력 구사 코드부터 제어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심의에서 문제가 되면 빠져나갈 길이 없기 때문이다. 섹스어필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틀 필요가 있다. 무식하게 싸움질 시키지 말고, 수영장 신이라도 넣어서 근육질 몸매를 보여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남성성 부각 역시 싸움판보다 냉철한 판단을 내리는 콘셉트로도 얼마든지 교체 가능하다. 무뇌 콘셉트도 교정이 필요하다. 여성의 남성 조종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바보 아들이 아버지 재산으로 잘 나간다는 건 부의 부당한 세습 이미지가 크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사랑만 열등생’ 코드로 돌아가는 것도 낡은 판단이니, 여성이 가장 먼저 포기할 수 있는 요소를 빼서 틀어주는 게 좋다. 외모 콘셉트를 빼야 한다. 부잣집 아들이고 똑똑하긴 하지만 촌스럽고 못생긴데다 오타쿠 기질이 있어 잘 나가지 못하는 콘셉트도 좋다. 여성의 노력으로 점차 사회화되고 세련되어진다는 콘셉트가 된다. 이렇게 되면 여성의 경제적 여유 추구와 모성애 충족도 가능하고 외모지상주의도 궁극적으로 해결된다. 남성의 온달 콤플렉스도 보상받는다. 똑똑한 사업 후계자는 남성층도 인정한다. ‘왕자님’처럼, 팔리는, 그러나 반발이 많은 대중문화 코드는 언제나 업계의 골칫거리다. 놓을 수도 쥘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인지해야 할 건, 그런 코드는 방치해 둘수록 이미지 저하가 따른다는 점이다. 이른바 ‘불량식품’ 이미지가 된다. 꾸준히 좋은 이미지로 장기간 팔기 위해선 버리고 고쳐야 할 부분부터 생각해보는 것이 옳다. 대중의 시대적 요구에 대한 고찰부터 시작해볼 필요가 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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