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상 기자의 와인다이어리] 현명한 자들은 어떤 와인을 마실까?

입력 2009-09-17 15: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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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 중반 프랑스 보르도 포이약에 미셸 랭쉬(Michel Lynch)라는 사람이 있었다. 랭쉬는 와인을 발효하기 전 줄기와 포도알을 제거하는 작업인 ‘디 스태밍’을 시도하고, 이를 전파한 업적으로 와인사에서 유명한 인물. 그가 일군 와이너리가 바로 ‘샤토 랭쉬 바쥬(Chateau Lynch Bages)’다.

이 와인은 1855년 등급 결정 당시 그랑 크뤼 5등급 판정을 받았고, 랭쉬는 와인으로 유명 인사가 돼 포이약 지역의 수장(현재 시장에 해당함)이 됐다.

1934년 초 앙드레 까즈(랭쉬 가문과 관련 없음)는 샤토 랭쉬 바쥬를 인수했고, 그의 아들 장 미셸 까즈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불러온다. 마케팅의 귀재인 장 미셸은 저평가된 와인의 가치를 알리는 데 혼신을 다했고, 그 결과 와인스펙테이터 등 와인전문지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단숨에 ‘5등급이지만 2등급에 버금가는 와인’으로 신분 상승했다.

1980년대 장 미셸은 중요한 결정을 한다. 대중적인 보르도 와인을 내놓으면서 ‘미셸 랭쉬(미셸 린치로도 불린다)’로 이름을 붙인 것. ‘가난한 자들을 위한 무통 로칠드’라는 수식어까지 달았다. 맛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샤토 무통 로칠드에 ‘무통 카데’가 있다면 샤토 랭쉬 바쥬에는 미셸 랭쉬가 있다.

사실 랭쉬 가문은 보르도로 이민하기 전까지 원래 아일랜드에서 대대로 빵을 구웠다. 빵과 와인, 왠지 잘 어울리는 궁합이다. 그래서인지 미셸 랭쉬의 레이블을 보면 아일랜드 국화인 샴록(우리에게는 토끼풀로 익숙하다)이 세 개 그려져 있고, 그 위로 자신의 가문을 상징하는 동물인 스라소니(고양이과 포유류)가 서있다.

2009년 한국에도 미셸 랭쉬가 들어왔다. 발음하기 쉽게 ‘미셸 린치’를 내걸었다. 론칭과 함께 장 미셸의 아들인 장 샤를 까즈가 내한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이 무슨 돈으로 와인을 사냐. 난 현명한 자들을 위한 와인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주위에서 좋다는 평가가 이어졌고, 이후 미셸 린치 앞에는 ‘현명한 자들의 와인’이란 수식어가 들어섰다.

미셸 린치


▶마셔보니=‘미셸 린치 보르도 화이트(2008)’의 맛은 근사했다. 훌륭했다. 소비뇽 블랑 100%로 만든 와인은 복숭아 향과 벌꿀 향이 코를 황홀하게 자극한 뒤 신선한 맛과 적당한 산미로 기분을 끌어올린다. 한마디로 도시락을 싸 당장이라도 피크닉을 가고 싶게 만드는 와인이다. 그라브와 앙트레-듀-메에서 자란 포도를 저온발효법으로 만들어 과실의 아로마가 풍부하다. 5만5000원.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KISA)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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