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신기하게도 길이와 모양에 따라 맛의 차이가 조금씩 난다. 긴 면발을 자랑하는 스파게티와 짧은 마카로니를 차례로 씹어 먹으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마카로니가 보다 쫄깃하고, 씹히는 맛이 좋다. 마카로니 표면을 나선형으로 파내 만든 ‘리가토니’ 역시 식감이 우수하다.
들쑥날쑥한 표면 덕에 소스가 더욱 잘 묻어나 요리된 음식의 맛은 더욱 훌륭하다.
팔라조 델라 또레(왼쪽)와 리가토니.
최근 경기도 곤지암 리조트의 동굴 레스토랑 ‘라그로타’에서 가진 ‘허영만과 함께 하는 밥상머리 토크 10번째 시간’은 리가토니와 이탈리안 와인과의 환상적인 궁합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됐다. 이날 라그로타의 셰프가 내놓은 ‘호두를 곁들인 고르곤졸라 크림 소스 리가토니’는 완벽했다. 고르곤졸라의 자극적인 발효 맛과 호두의 마일드한 고소함, 크림 소스의 크리미한 구성은 쫀득거리는 리가토니에 착착 감겼다. 예상치 못한 놀라움이다.
하지만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함께 서브된 이탈리아 와인 ‘알레그리니 팔라조 델라 또레(Allegrini Palazzo Della Torre·왼쪽)'을 만나 리가토니의 맛은 더욱 극대화됐다. 입 안에서 싸악 퍼지는 기분 좋은 산미는 리가토니를 격정적으로 감싸 안았고, 우아한 바디는 다시 포근하게 어루만졌다. 마치 리가토니와 와인이 춤을 추는 듯 했다.
토착 품종인 코르비나, 론디넬라, 산지오베제를 블렌딩한 알레그리니 팔라조 델라 또레는 말린 포도 30%를 추가해 숙성시켜 맛과 향이 더욱 근사해진 게 특징인 와인. 치즈와 마셔도 좋지만 리가토니와 어울려 더욱 근사한 풍미를 발산했다.
이어진 메인 요리인 안심구이와 양갈비에는 ‘카스텔로 델 테리치오(Castello del Terriccio)', ’콜도르치아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리제르바‘, 알레그리니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클라시코’ 등 세 와인이 매치됐다. 가격이 꽤 나가는 와인인지라 모두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카스텔로 델 테리치오’가 특히 맘에 들었다. 미디엄 풀바디의 드라이한 붉은 액체는 쇠고기 육즙과 하나의 ‘피’처럼 어울렸다. 좋은 이탈리아 와인은 스테이크와 대게 절묘한 궁합을 이루지만 이 와인은 그 중에서도 훌륭하지 않았나 싶다.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KISA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