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악인이 될 수 없다

입력 2011-06-1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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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개봉 ‘악인’

마운틴 픽처스 제공

인간 감정의 흐름은 위태로운 줄타기다. 주변에 따뜻한 빛을 비출 수 있는 사람도 순간적인 감정의 동요로 무자비한 악인(惡人)이 될 수 있다.

영화 ‘악인’(9일 개봉)의 남주인공 유이치(쓰마부키 사토시)는 잠깐의 감정적 동요로 돌이킬 수 없는 악인의 길로 들어선다.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조부모 슬하에서 자란 유이치는 인터넷 채팅으로 보험회사 영업사원 요시노(미쓰시마 히카리)를 만나 하룻밤을 보낸다.

유이치는 그녀에게 진지한 만남을 원하지만 요시노는 부잣집 도련님 마스오(오카다 마사키)에게만 관심이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을 뒤쫓던 유이치는 요시노가 마스오로부터 버림받자 그녀를 위로한다. 하지만 요시노는 “너 같은 게 어떻게 나를 넘보느냐”며 싸늘하기만 하다.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유이치는 그녀의 목을 조른다.

살인을 저지른 유이치는 태연하게 선량하고 소심한 청년으로 살아간다. 유이치는 또다시 인터넷으로 옷가게 점원 미쓰요(후카쓰 에리)를 만난다. 섹스만을 원하는 유이치와 달리 미쓰요는 진실한 만남을 꿈꾼다. 유이치는 미쓰요의 선한 눈빛에 마음을 열어가고, 경찰의 좁혀오는 수사망을 피해 함께 도망가자고 제안한다.

두 사람이 도피한 곳은 어린시절 유이치가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던 등대. 유이치는 세상을 향한 미움이 싹튼, 한편으로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는 그곳에서 미쓰요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악인의 가면’을 벗는다.

영화는 일반화된 악과 선의 구분을 거부한다. 살인자 유이치보다 하룻밤 유흥을 위해 여자를 만나는 부잣집 도련님 마스오에게 더 따가운 시선을 보낸다. 딸을 잃은 요시노의 아버지는 마스오를 찾아 응징에 나선다.

영화의 시선대로라면 ‘악인’의 반대말은 ‘애인(愛人)’이 맞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악인이 될 수 없다고 영화는 말하기 때문이다.

재일동포인 이상일 감독은 전작 ‘훌라걸스’ ‘스크랩 헤븐’처럼 인물의 섬세한 심리묘사로 눈길을 끈다. 화면 가득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관객들이 등장인물에 감정 이입하도록 돕는 솜씨가 돋보인다.

사랑의 눈물을 가득 머금은 후카쓰 에리의 시선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그는 이 영화로 2010년 몬트리올국제영화제 최우수여배우상을 수상했다.

극 전개가 느리고 후반부가 지루하지만, 선과 악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천착한 감독의 뚝심이 이런 약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18세 이상.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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