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 ‘패션넘버5’ 개그우먼 됐더니... 재봉틀, 관절염이 웬말?

입력 2012-01-24 09: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엣지 넘치는 패션, 이것이 바로 하이패션이다. 스똬~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카페에 한껏 멋을 부리고 우아하게 앉아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리며 아이패드를 꺼내는 언니들에게 배알이 꼴렸다. 기죽기 싫은 세 여인이 뭉쳐 패션계를 발칵 뒤집었다.

바지에 팔을 끼워 넣고 셔츠를 여러 장 겹쳐 입는 것은 기본. 크리스마스에는 머리에 선물을 얹어 ‘인간 트리’ 패션을 완성했다. 이 엽기의상을 ‘하이패션’이라 외치는 이들은 KBS2TV ‘개그콘서트’의 코너 ‘패션넘버 5’다.

박나래, 허안나, 장도연 중심 코너 ‘패션넘버 5’에서 8등신 몸매를 담당하고 있는 장도연(27)을 만났다.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 뷰티 샵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머리에 힘도 줬다. 코디네이터에게 여성스러운 원피스도 협찬 받았다. ‘개콘’ 무대가 아닌 진짜 런웨이를 끝내고 온 듯했다.

뜻밖에 쭈뼛쭈뼛 카메라 앞에 선 그의 첫마디는 “저는 웃기게 찍어야 편해요.”

장도연은 셔터소리에 맞춰 기괴한 각도가 살아있는 포즈를 선보이며 어느새 기자를 하이패션의 세계로 인도했다.

▶ “강남녀에 배알 꼴려”

“첫 틀은 가로수길 카페에 과하게 치장한 언니들의 모습을 재미있게 풀어보고 싶었어요. 그때 마침 ‘해피투게더’에 출연한 장윤주 씨가 찜질복을 리폼해서 출연한 걸 봤죠. 멋지지만 우리가 보기엔 난해해 보이는 것. 대부분 여성들은 공감하잖아요?”

장도연의 말에 따르면 개그맨, 개그우먼들은 대부분 강남이 아닌 여의도와 가까운 홍대, 신촌 근처가 주 놀이터다. 때문에 가끔씩 강남에 가면 적응도 안 되고 괜스레 기가 죽는다고.

“강남 갈 땐 특별히 꾸며요. 촌스럽죠? 강남엔 유독 예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뒤지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하는 거죠”

‘패션넘버 5’는 이런 사회 현상을 엽기적인 의상을 이용해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하지만 첫 무대부터 의도나 방향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과거 선배 개그맨 강유미, 안영미, 정경미 김경아가 출연했던 ‘분장실의 강선생님’과 비교되는가 하면 인기 웹툰 ‘패션왕’ 표절시비까지 걸렸기 때문이다.

“감히 ‘분장실의 강선생님’처럼 돼야겠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여자와 패션이라는 코드가 같다보니까 비교가 되는 것 같아요. 저희는 차라리 ‘꽃미남 수사대’의 여자 버전으로 생각해요.”

장도연은 웹툰 ‘패션왕’ 표절 시비 이야기에 아직도 생생한 듯 흥분된 목소리로 심경을 털어놨다.

“정말 순수하게 전부터 노력하고 아이디어를 짰는데 ‘표절’이란 말에 화가 났어요. 차라리 ‘패션왕’의 리메이크, 실사버전이라고 했으면 좋았을 거예요. 그런데 만화를 보고는 재미에 대해선 인정하기로 했죠. ‘기안84’님의 팬이 됐지만 ‘패션왕’에서 아이디어를 얻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표절이라고 할까 봐.”


▶ “멀고도 험난한 패션 무대”

여전히 ‘패션넘버 5’는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패션이 주 소재다 보니 아이디어보다 정작 매주 의상에 들이는 공력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패션에 관심 많은 박나래가 재봉틀을 돌리고, 동대문에서 천을 구매한다. 허안나는 숨겨둔 바느질 솜씨를 발휘하고, 손재주 없는 장도연은 힘쓰는 잡일을 맡았다.

초반엔 KBS 의상실과 소통이 안 돼 난감했다고도 한다. 하기사 이 기이한 의상들을 어떤 디자이너가 이해할까.

“수요일 6시 녹화하기 30분 전까지 의상을 만들어요. 의상에 달린 장식 위치 같이 세심한 것도 은근 신경 쓰이죠. 의상 콘셉트요? 재킷을 밑에 입어보고 바지를 팔에 껴보다가 아이디어가 나와요. 일단 보기에 웃긴 걸로 디자인하죠.”

무대 위에서 의상만큼 중요한 것은 모델의 포즈다. 이들에겐 패션 매거진과 패션쇼 동영상이 교과서다. 심지어 세계적인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패션쇼를 보고 포즈를 따라보기도 했지만 ‘멋지다’라는 말보단 웃음이 터져 나왔다고.

“관절을 심하게 꺾고 늘어뜨렸더니 관객들이 웃었죠. 사실 녹화하고 나선 관절이 뻐근해요. 무대 위에선 신이 나서 더 심하게 포즈를 취하거든요. 힐을 신은 데다 안 쓰던 근육을 쓰잖아요. 티 안 나는 고충을 겪고 있죠.”

“안나 씨는 거동이 불편한 옷을 주로 입죠. 혼자선 무대에 오르기도 힘들어해요. 한걸음마다 한숨을 내쉬죠. 150cm 밖에 안되는 나래 선배는 키보다 더 큰 의상이나 소품을 짊어지고 올 때도 있었어요. 저희를 본 주변 사람들은 ‘애쓴다. 말로 웃겨라’라고 해요. 다 모르는 소리에요.”

▶ “드라마 ‘패션왕’도 탐나”

장도연에게 ‘패션넘버 5’는 고마운 코너다. 2007년 KBS 22기 공채로 데뷔한 그는 코너 ‘키 컸으면’, ‘시간여행’, ‘슈퍼스타KBS’에 출연했지만, 대표 코너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패션넘버5’는 그에게 제격이다. 높아진 인기로 유명 패션 매거진 화보 촬영과 케이블 채널의 패션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4'의 스페셜 방송도 촬영했다.

“디자이너는 감히 꿈도 못 꿔요. 너무 힘들더라고요. 대신 제 전공(시각디자인)을 살려서 일러스트나 캐릭터 디자인 사업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혹시 웹툰 '패션왕'을 드라마화한 작품에 카메오 출연 제의를 받지 않았을까. 이에 장도연은 "제의는 안 들어왔어요. 제가 드라마 제작진에 직접 건의할 예정이요"라며 당차게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앞두고 명절에 어울리는 패션을 물었다.

"음식으로 옷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떤가요? 노릇노릇한 전으로 만든 저고리와 떡으로 속곳을 만드는 거죠. 떡을 많이 넣어서 볼륨 있고 풍성한 한복 맵시를 살려봐요. 찐득한 조청으로 붙여서 온 가족과 함께 뜯어 먹는 재미를 느껴보세요."

글 동아닷컴 한민경 기자 mkh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스마트폰 앱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