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무한동력’ 박희순 “포기하려 했던 배우, 돌아갈 곳 무대뿐이더라”

입력 2015-09-13 08: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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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이자 연출가인 박희순은 “인생이란 계단을 하나씩 밟고 가는 건데 그 걸음을 옮기는 데 좌절하고 실패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그 과정 가운데 우리는 성장한다. 실패 자체가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한동력’처럼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면 된다”라고 말했다.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뮤지컬 ‘무한동력’의 주인공들은 녹록하지 않은 현실을 살아간다. 고3 수험생부터 취업준비생, 공무원 고시생, 그리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까지 TV 뉴스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 중 하숙집 주인인 한원식은 20여 년째 비현실적인 기계인 ‘무한동력’을 만들어오고 있다. 누군가는 그를 괴짜라 웃어넘기고 또 누군가는 한심하다고 혀를 끌끌 차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이번 공연으로 연출가로 데뷔하게 되는 박희순은 작품을 보며 자신을 ‘한원식’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한원식에게 ‘무한동력’ 기계가 있다면 자신에겐 ‘연기’가 포기할 수 없는 존재였다.

“어렸을 때 정말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 극단에 잠시 쉬겠다고 말하고 나온 적이 있었다. 며칠을 쉬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했는데 할 게 없더라. 할 게 없다기보다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연기’밖에 없더라. 어느 순간 내 발은 대학로로 향해있었다. (웃음) 극장 주변을 기웃거리는 모습을 발견하곤 그냥 이 길을 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멈추지 않고 끝까지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그가 연출가로 무대에 서게 됐다. 참으로 그와 닮은 ‘무한동력’을 말이다. ‘박희순이 연출을?’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20대부터 연출가를 꿈꿔왔다. 극단에서도 조연출을 했었다. 그러다 ‘일단 배우나 잘하고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배우를 하면서 연출가적으로 생각을 하니 양쪽으로 도움이 안 되더라. 연출은 숲을 봐야하고 배우는 나무를 봐야 하는데 자꾸 내가 숲을 보더라. 경험을 쌓고 배우로서 안정기에 접어들면 다시 생각해 보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우연찮게 기회가 온 거다”라고 말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이지혜 작곡가의 콘서트에 초청 받았다. ‘무한동력’ 넘버들을 미리 듣는 자리였는데 아무 생각 없이 갔다. 하하. 그런데 음악 들으니 머릿속에 작품이 그려지더라. 장면이 떠오르고 캐릭터들이 생각나더라. 뮤지컬로 만들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에 이 작곡가에게 ‘작품 나오면 꼭 보러갈게’라고 했는데 연출을 제안하는 게 아닌가. (이)지혜가 ‘오빠가 잘 만들 것 같아!’라고 했다. 속으론 ‘얘가 날 뭘 믿고…’라는 생각을 했다.(웃음)”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박희순 역시 작품이 엎어졌겠거니 생각하며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그런데 영화 ‘올레’를 찍으러 가는데 이지혜 작곡가에게 전화가 왔다. 작품이 올라간다는 소식이었다. 박희순은 “수화기 너머로 지혜가 ‘오빠, 계약서 보낼 테니까 빨리 도장 찍어요’라고 하더라. 얼떨결에 연출가라는 자리를 맡았지만 이지혜 작곡가에 대한 신뢰가 남달라서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연출가로서 섰던 첫 연습에 대해 묻자 “나만 떨리고 흥분하고 들 떠 있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미 원작인 웹툰이 인기 있었던 터라 부담감이 상당했다. 박희순은 원작을 보진 않았다. 도움도 될 테지만 원작에 너무 치중하다보면 오히려 갇혀버릴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물론 원작을 무대로 옮기는 과정을 가장 많이 신경 썼다. 이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꿈’에 대해 중점을 뒀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꿈꾸고 있는가, 아직도 꿈을 간직하고 있는가, 진정한 꿈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그리고 꿈을 꾼다면 과정은 아름답지 않겠냐고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 와중에도 원작이 작품이 교과서가 되길 원치 않았다. 그래서 가져와야 할 것과 쓰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했다. 우리만의 작품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


앞서 말했듯, ‘무한동력’은 꿈에 대해 말한다. ‘취업이 꿈’이라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서 ‘무한동력’은 ‘죽는 순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느냐,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느냐’라는 대사를 관객들에게 던지며 우리가 살면서 잊고 있던, 잃어버렸던 꿈을 상기시키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5명의 젊은이의 모습을 보며 희망을 전한다. 박희순 연출은 “현실적인 이상이 없고 각박한 세상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꾸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한동력’이라는 연료 없이 돌아간다는 기계를 만드는 하숙집 주인 한원식을 중심으로 5명의 젊은이들이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선재는 원서를 넣지만 취업에 계속 실패하고 기한은 공무원 시험을 볼 때마다 족족 떨어진다. 우리가 말하는 ‘실패’를 통해 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여주고 싶다. 또한 6명을 제외한 외부에서 들어오는 방송국 PD나 투자가 등이 등장하기도 하지 않나. 그 순수하지 않은 압박감에서 이들이 어떻게 살아남는지 봐주셨으면 좋겠다. 또한 ‘돈키호테’와도 같은 하숙집 아저씨의 양면성도 볼거리 중 하나다. 내 꿈을 지키는 것이 어떤 사람에겐 위대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정작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람들에겐 피해를 줄 수 있을 테니. ‘꿈’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가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무한동력’ 이후 연출가로서 박희순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시는 안 하려고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작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참견을 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동시에 보람도 있었음을 언급했다.

“배우는 자기 것만 고민하면 되는데 남의 고민을 들어주는 입장이 되니까 잠을 못 자겠더라. 죽을 것 같다. 앞으로 감독님한테 잘 할 거다. (웃음) 그런데 확실히 연출가로서 배우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냈을 때 마음은 정말 뿌듯하고 희열이 넘친다. 행위자, 그러니까 배우와는 또 다른 만족감이 있다. 연기자의 모습을 보면 내가 할 때보다 2~3배의 기쁨이 있다. 그 벅찬 감동은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연출을 하겠다, 안 하겠다는 말은 못 하겠다. 또 모르지 않나. 그 감동을 찾아 다시 돌아오게 될 지도.”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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