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 인터뷰③] 손예진 “현장에선 투사처럼”

입력 2017-01-02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배우 손예진. 스포츠동아DB

[손예진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1982년생 1월생, 음력으로는 닭띠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유년(丁酉年), 닭띠 스타를 만나고자 했던 건 아니다. 새해 포부를 묻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지난해 누구보다 성과가 많았던 소감을 듣기 위해서라면 이미 숱한 말들 속에 담겨 있을 터. 굳이 되풀이할 이유도 없었다. “12년 전, 닭띠 기대주”로 묶이기도 했다며 웃는 배우 손예진. 그에게서 ‘여(성)’배우로서 살아가는 일상과 살아갈 미래에 관해 듣고 싶었다. 여배우가 주도하는 무대가 그리 많지 않은 현실, 여전히 어엿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표적인 배우에게 세상은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를 엿보려 했다. 지난해 12월29일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말이 새해를 맞는 많은 이들에게도 또 다른, 작은 힘이 되리라 생각했다.


-숱한 여배우들 사이에서 당신의 포지션은 무엇일까.

“하하하! 기자들이 인터뷰할 때면 꼭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을 하더라. 활자화해야 해서 그런가?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에 답을 하면 또 엄청난 의미가 부여된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우문(愚問)이었나보다.

“전작은 어떤 걸 했고, 그걸로 관객에게 이런저런 모습을 보이고 평단의 평가도 받았으니, 다음에 어떤 걸 하고 싶다 그런 생각.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다만 힘들었던 전작을 뛰어넘는 연기 변신할 수 있나 하는 두려움은 있다. 그 고통스런, 깊은 이야기보다 더 깊은 걸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래서 밝고 편하게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는 정도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어떤 배우인지는 1년, 2년이 지나야 실감할 수 있다. 가야 할 길이 뭔지 모르지만, 오래 하고 싶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느 순간 내가 주인공 못하는 날이, 하고 싶은 연기를 하지 못할 날이 올 거다. 배우로서 엄청나게 큰 그림 그려서 어떻게 해야지? 내 맘대로 안 된다. 실제 그리 안 되면 속상할 것도 같고. 언제까지나 좋은 배우로 인식될지도 알 수 없는 거잖아. 그저 일을 열심히 해왔고, 그걸 많은 이들이 칭찬해줘 감사하다. 그걸 원해서 달려온 것도 아니지만, ‘너무 잘하고 있어’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책임감을 갖고 해야 하겠구나 생각도 든다. 순간순간 마음이 무겁다. 어떤 점에서는 너무 무서운 일이다. 윤여정, 전도연, 김혜수 등 다른 선배들 얼마나 수많은 세월을 견뎌왔을까.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계속 하는 게 중요하다. 이것저것 생각해보고 안 하는 것보다는, 그게 베스트다.”


-정말 그런 생각을 하나? 언젠가는 주연할 수 없고, 시나리오도 많이 안 들어오고?

“(고개를 끄덕이며 힘주어)응! 응! 당연한 것 아냐?”


-어느 시상식에서인가, 배우 윤여정은 “주인공만 하려고 하지 말라” 했다.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하고 싶고…. 하하! 선생님 말씀의 의미를 잘 안다. 내가 중심이 되어서 뭔가 할 수 없는 날이 언젠가는 올 거다. 그래서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정말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다. 나이 들어 연기를 하게 되면 인간을 더 알게 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오랫동안 보여주고 싶은 건 있다. 그때가 되면 더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


-제작자나 감독이 손예진에게 무엇을 원해 출연을 제안하는 것일까.

“해당 배역을 잘 소화할 배우가 손예진이라고 생각해서이겠지. 시나리오를 읽고 떠오르는 사람이 손예진이니까. 그것 밖에 크게 생각해본 적 없는데. 아직까지도 ‘손예진은 현장에서 어때?’ 이렇게 물어보곤 하나 보더라. 현장에서 엄청나게 사고 치는 사람이 아직 있나? 현장은 전쟁 같다. 진짜 치열하다.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한 장면 한 장면 찍는다. 아름다운 영화라고 현장도 아름다운가. 그 장면을 찍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일하나. 현장에서 난 누구보다 투사처럼 일한다. 이기기 위해, 전쟁한다는 마음으로.”


-‘비밀은 없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수상으로 인정 받았다.

“촬영회차가 많았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도, 도전해보지도 않은 극한의 감정을 연기해야 했다. 굉장히 다른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영화다. 관객이 너무 많이 안 들었고 속상했다. 지금까지 운 좋게도 대다수 작품은 손익분기점을 넘겨왔다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망하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그런 두려움이 항상 있다. 흥행은 배우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또 절대 연연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 여파는 크다. 아무 생각 없이 연기만 열심히 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 항상 살얼음 같다.”


-그럴 때면 불안한가.

“어떤 작품이든 엄청난 관객이 들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어떤 수치 이하가 될 거라고 생각도 안 한다. 다만 다음 영화는 무조건 잘 돼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불안해질 겨를도 없다.”


-‘청순함’ ‘로코퀸’ ‘멜로퀸’ 등 수식어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슬픈가.

“청순하다는 건 우리 시대 얘기다. 요즘 ¤은 배우들에게도 그런 말 쓰나? 그때는 모든 영화의 주인공은 청순해야 했다. 하지만 그게 미덕이 아닌 시대인 것 같다. 연기가 계속 바뀌는 게 배우 아닌가.”


-슬럼프는 없었나.

“매너리즘과 슬럼프, 순간순간 계속 온다. 시기적인 슬럼프가 물론 있지만, 사람들은 잘 모른다. 계속 끊임없이 작품을 해왔고, 다른 작품 하면서 풀기도 했으니까. 그게 어찌 보면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운이 좋았다.”


-돈은 벌 만큼 벌었나.

“왜 그런 얘길 묻나? 하하! 그런 게 어디 있나?”


-더 벌어야 하나.

“하하! 그런 건 아니다. 이전까지는 돈에 대한 관념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활동했는데 돈을 너무 알고 싶지 않았다. 돈과 일이 결부되는, 누가 봐도 드러나는 일을 하지만, 돈을 많이 준다고 작품을 한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조금씩 경제관념을 갖게 됐다.”


-왜 갑자기. 결혼하려고? 지금 사랑을 하고 있나?

“물론 아니라고 해야지! 하하! 이젠 결혼 생각이 없어졌다. 그런 생각할 시기도 지났다. 여자들은 그렇다. 당연히 결혼해야지 생각도 했고, 하고 싶기도 했다. 청사진도 그려봤다. 결혼은 어떤 숙제처럼 남겨놨는데 쉽게 풀 수가 없겠더라. 결혼해도 일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을 것 같다. 힘든 영화 몇 달 동안 찍는데, 가족이 있고 아이가 있다면 신경을 써야 하지 않나. 아직은 일에 대한 생각이 더 크다. 연애만 하면서 나이 들면 좋겠다는, 하하! 그래도 내가 아예 결혼할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쓰지는 말아라. 하하!“


-가장 최근에 울어본 건 언제인가.

“소설을 읽으면서 울었다. 눈물이 많지 않은 편이다. 사람들 앞에선 특히나. 속상하고 분해서 울고 그런 거 잘 안 된다. 속에 담아두고 지나면 말지.”


-요즘 읽는 책은 뭔가.

“최근 한 시상식에서 모 영화사 대표님께서 주신 책이다. 일제강점기 페미니스트이자 독립운동가의 얘기다.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한 눈에 쭉 이해할 만하다. 공부하는 느낌으로 읽고 있다. 제대로 공부할 필요가 있겠다 싶다. 그동안 역사를 너무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스포츠동아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스포츠동아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