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디밴드 나쁜오빠’, 그들의 음악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입력 2017-01-12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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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오빠라는 이름이 생소하다. 가장 먼저 ‘왜 나쁜오빠일까’라는 호기심과 ‘정말 나쁜오빠 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밴드 이름을 나쁜오빠라고 지은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그들의 사연이 있다. 오사는 “원래 나쁜오빠가 아니었어요. ‘아는오빠’라는 이름으로 하고 싶었죠. 정가가 군대에 가면서 저와 (최)승리가 아는오빠의 유닛 같은 ‘나쁜오빠’로 활동을 하게 됐어요. 근데 나쁜오빠로 활동하는 게 생각보다 잘 됐어요”라고 운을 뗐다.

그는 “그러던 찰나에 멤버들이 모두 모이면서 다시 아는오빠로 돌아가려 했으나, 정말 그 사이에 아는오빠라는 가수가 등장한 거예요. 이후에 수많은 대안들이 나왔어요. 근데 결론은 항상 나쁜오빠였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지금은 애착이 가요. 나쁜오빠라는 이름에 좋은 점이 뭔지 아세요? 공연장에서 저희가 쓰레기를 줍거나 착한 행동을 하면 ‘나쁜오빠가 착하다’라면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신 것처럼 말씀하시는 거죠”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쁜오빠 멤버들은 나이도, 하던 공부도 다 다른 학생들이 모여서 형성된 밴드다. 그렇게 각기 다른 사람들이 나쁜오빠라는 그룹으로 탄생할 수 있던 이유에 대해 “원래 오사, 정가, 천재민 이렇게 셋은 동네 친구예요. 같이 자랐던 친구들이 군대 가기 전에 막연하게 팀을 만들어 보자고 해서 홍대의 튀김 집에서 ‘홍대결의’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고 하면서 학교 내에 동아리를 만들었죠. 또 거기서 같이 밴드를 할 인재를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다른 멤버들이 합류하게 됐고요”라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같이 알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다른 멤버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오다가 밴드에 합류했다. 각기 걸어온 길이 달랐기에 그 길 위에서 음악이라는 길을 선택한 이유도 다를 수밖에 없다. 리더 오사는 “그냥 처음에는 음악이 좋았어요. 부상으로 하던 운동을 못하게 되면서 카피라이터가 되려고 대학교에 진학했죠. 근데 또 막상 그게 하기 싫어져서 군대에 가서 하고 싶은 걸 찾았는데 그게 바로 음악이었어요”라고 답했다.

또 보컬을 담당하는 최승리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축제 때 무대 위에 오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정말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에 대학교는 경영학과를 전공했지만 기회가 되면 음악을 업(業)으로 삼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물론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지만 대화로 풀어나가면서 설득했죠. 제 인생이니까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맞다 생각했어요”라고 회상했다.

이어 기타를 맡는 박평제는 “생각해보면 음악이 좋다고 느껴져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어느 날 엄마와 길을 가다가 악기상에서 통기타를 샀어요. 그게 재미있다 느껴졌고, 투자한 시간만큼 제 흥미도 늘어갔어요. 그렇게 고등학교 가서도 밴드부를 하고 그 길이 대학교까지 이어져온 거죠. 집에서는 음악과 학업이 주객전도 되는 걸 원치 않으셔서 지금도 학업을 이어가면서 하고 있어요”라고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언급했다.

나쁜오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교내 동아리를 처음으로 만든 정가는 “친가, 외가 모두 음악을 하는 집안이에요. 음악 하는 집안이라 여러 악기도 배우고 듣는 것도 많이 들으면서 자랐죠. 하지만 음악을 업으로 삼으려고 하진 않았어요. 그냥 동아리에 들어가서 음악을 하는 정도에 그쳤죠. 그러다가 음악 하는 친구의 공연에 갔는데 정말 제가 하고 있는 음악과는 급이 다르더라고요. 감동적이면서 한편으론 분하고 억울하기도 했어요. 이후 부러워하느니 직접 한 번 해보자란 생각과 동시에 끝까지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팀에서 드럼을 연주하는 천재민은 “원래 이런 거 저런 거에 흥미를 잘 붙이는 편이에요. 그러던 중 교회에서 악기팀을 하다가 드럼을 배우게 되면서 음악적인 활동을 시작했어요. 이후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원래 공부하고자 했던 체육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음악이 좋아지던 찰나에 지금의 밴드 구성 제의를 받게 됐죠. 인생 한 번 사는 거 좋아하는 쪽으로 해보자면서요”라고 덧붙였다.



이들의 주요 활동 범위는 신촌과 일산이다. 일산은 멤버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고 신촌은 이들이 전부터 활동해오던 무대이기도 하다. 정가는 “저희 홍대는 안 가요. 거기는 10m 간격으로 춤추는 사람부터 랩하거나 노래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어요. 저희가 하고 싶은 음악을 전달하기가 힘들죠. 일산에 광장이 있는데, 고양시에서 버스킹을 지원하는 사업을 해요. 거기에 저희가 들어가서 그쪽에서 공연을 하죠”라고 설명했다.

그런 공연을 하기 위해서 이들은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한다. 공연지를 물색하는 일부터 곡을 쓰고 장비를 옮기는 등 하나부터 열까지 각자가 맡은 역할에 충실하게 움직인다. 특히나 가장 중요한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 묻자 멤버들은 “다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쓸 돈을 아껴서 앨범 만들 때 투자를 하죠”라고 입을 모았다.

“리더인 오사는 행사섭외나 연락을 도맡아 하고, 멤버들 중에서 가장 귀가 발달돼있는 평제는 음원을 만들거나 프로듀싱을 도맡아 하는 편이에요. 승리는 문서작업을 맡았고 정가는 SNS로 소통하는 부분을 담당하죠. 재민이는 금전적인 관리를 처리하고요.”

A부터 Z까지 스스로 해결하고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업으로 삼기로 결심한 이들에게 ‘나쁜오빠’라는 호칭은 분명 반어적 표현이다. 이들의 2017년은 어떤 한 해가 될까.

“올해를 나쁜오빠라는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키는 한 해로 삼자고 했어요. 미니 앨범을 두 개 내고, 단독콘서트도 했는데 오신 분들의 만족도가 정말 높았어요. 아는 사람들은 저희를 좋아하시는데 아는 사람들이 적다는 게 함정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홍보도 많이 하고 대회에도 많이 나가서 저희를 알리는 한 해로 삼으려고요. 또 좋은 회사를 만나게 된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번 주 네이버 뮤지션리그에 첫 콘텐츠를 올렸어요. 그렇게 온라인으로도 저희를 알리기 시작하려고 합니다.”

사진 | 나쁜오빠 제공
동아닷컴 최윤나 기자 yyynn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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