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가 만난 사람] 정상진 대표 “아트나인 ‘영화관주의’란, 종속되지 않는 문화공간 만드는 것”

입력 2017-01-20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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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진 대표는 인터뷰 내내 많은 말을 했다. 말은 영화에서 영화로 이어지는 진지한 논제이기도 했다. 그리고 열정이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영화수입배급사 엣나인필름 대표 정 상 진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아트나인. 다양한 미술작품을 내걸고 향내 나는 레스토랑과 카페를 갖춘 이곳은 예술영화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를 운영하는 정상진(49) 대표는 영화 수입배급사 엣나인필름을 통해 예술·독립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배급사 완력 등에서 벗어나려 영화관 운영
감독 이름만 보고 영화수입하고 싶지 않아

영화 통해 생각 나누려 관객과도 많은 대화
영화진흥위 독립영화 지원정책은 비현실적


그가 최근 화제에 올랐다. 하지만 영화가 아닌, 안타깝게도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는 사실 때문이다.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0년대 겪은 고문의 고통을 담은 영화 ‘남영동 1985’를 배급한 탓이었다. 지난해 10월 한국영화수입배급사협회를 출범시키는 데 일조한 그는 그래도 굴하지 않고 ‘영화관주의’라는 또렷한 가치 아래 예술·독립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가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해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어떤 생각이 드나.(최근 정상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당시 선거 캠프 대변인이었던 조 장관과 겪은 일화를 공개했다. 조 장관은 한 모임에서 정 대표가 ‘남영동 1985’를 배급한 사실을 알고 “왜 다른 편이 여기 와서 이러느냐”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쓸 데 없는 소리를 한 것 같다. 당시 조 장관은 캠프 대변인 자격으로서 얘기한 건데…. 어쨌든 한국사회가 빚어놓은 결과다. 내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오르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블랙리스트’는 사찰이다. 암묵적으로 영화와 문화와 사회를 지배하려 한 거다. 더 중요한 건 최근 불거진 ‘모태펀드(한국벤처투자)의 영화 사전검열 논란’(정부가 불편해하거나 비판적인 내용의 작품 등에 대한 투자심사에서 이를 배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이다. 그와 관련한 심사 과정의 자료와 그 위원들을 공개해야 한다. 김기춘 실장과 조윤선 장관만 나쁜 사람인가? 투자자들은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게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한 건 아닌가?”


-문화체육관광부나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에서 배제되는 등 실질적으로 받은 불이익이 있나?

“영화는 기본적으로 지원으로만 자생할 수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도 독립영화를 지원하면서도 산업 자체를 키울 수 있게 하는 부분은 적었다. 우리가 문체부로터 3400만원을 지원받았다고 하는데, 몇 년 전 주한 외국인의 추석 필름페스티벌을 기획하면서 주최 측을 대신해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받은 것뿐이다. 재작년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위로공단’은 지원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는 받지 못 했다. 그렇다고 억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영화가 받았으면 된 거다.”


-지난 연말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항소 기금을 마련하는 일일호프를 주최했다.

“권칠인 감독, 변영주 감독 등 몇몇 영화관계자들과 해가 가기 전에 이 위원장과 술 한 잔 하자고 해 마련한 자리였다. 다행히 얼마간 기금도 마련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다이빙벨’이란 영화가 좋든 그렇지 않든, 당대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알아야 할 것을 영화를 통해 기억하고 담론화할 수 있다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산국제영화제도 지켜야 한다.”


-이제 본격적인 인터뷰를. 아트나인의 문을 연 지 4년이 지났다. 영화관 홍보용 영상을 통해 ‘아트나인의 영화관주의는 계속된다’고 말했다. ‘영화관주의’란 뭘까.

“영화관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남들보다 조금, 아주 조금 더 한 것 같다. 스쳐 지나는 동네극장처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대학 시절 강의가 없을 때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게 낙이었다. 헌데 어디를 가도 대사가 잘 안 들리더라. 짜증이 났다. 적어도 대사가 들려야 배우의 연기를 볼 수 있고 그래야 감성도 공감할 텐데. 불 꺼진 공간에서 오롯이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소리도, 영상도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중국집 주방장이라면 밀가루 선택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전에 경기도 파주 씨너스라는 멀티플렉스를 운영하면서 그런 걸 느끼지 못했다. 은행 대출로 영화관 만들었지만 소프트웨어 선택권이 없으니 진정한 주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트나인의 문을 열면서 배급사의 완력 등으로부터 벗어나서, 소프트웨이에 종속되지 않는 문화공간을 만들자고 했다.”


-대출은 얼마나.

“어마어마하다. 영화 종사자로서 가장 많을 거다. 하하. 다만 남들과는 다르게 멀티플렉스에서 얻는 소득이 조금 있다. 거기서 번 돈으로 아트나인을 운영하고 있다. 오른쪽 주머니에서 왼쪽 주머니로 돈을 옮기는 거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걸 지킬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


-지난해 영화전문지 대담 기사를 통해 해외 마켓에서 감독을 확인하지 않는다고 했다. 관객이 얼마나 들지 생각하게 된다면서. 수입업자로서 경제적인 걸 무시할 수 없지 않나.

“그렇다. 감독의 이름만 보고 영화를 수입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다.한국영화 시장도 그렇지만, 신인감독의 영화가 더 좋을 때도 많다. 그래서 챙겨보려 노력한다. 어떤 이야기이고, 어떤 내용의 그림이 그려질까 고민한다. 그게 맞다면 그런 감독의 영화를 보려는 관객도 분명 있을 거다.”

엣나인필름 정상진 대표.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대체 예술영화의 기준이란 뭔가.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아트나인 상영작 가운데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나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도 있었다. 난 예술영화라고 생각한다. 감독의 연출 마지막 작업은 엔딩크레딧이라고 본다. 그것에 무엇을 넣고 어떤 여운을 줄 것인가 하는. 사실 나도 이해 못하는 영화도 많다. 그래서 영화를 많이 보려고 노력하는데, 가급적이면 스크린으로 보려 한다. 그게 영화를 하는 데 있어 지켜야 할 태도이다. 감독이 쥐어짜듯 한 장면 한 장면, 많은 스태프와 배우들이 참여한 작업의 결과물을 컴퓨터 모니터나 휴대폰으로 본다? 심지어 기자나 평론가도 그렇다. 그건 아니지 싶다.”


-반성하겠다.

“아니, 그렇게까지….(웃음)그런 부분이 안타깝다는 거다.”


-아트나인의 관객은 그동안 얼마나 늘었나.

“많이 늘었다. 대체로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평균 객석점유율은 33%가량 된다. 아트나인은 20%까지 올렸다. 목표는 멀티플렉스의 점유율이다. 관객과의 대화 등 행사를 많이 하는 것도 영화를 통해서 다른 사람과 생각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전체 예술영화관 관객도 증가했나.

“작년에 줄었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예술영화 관객이나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하는 다양성영화의 관객은 늘었다. 하지만 예술영화관 자체로는 줄었다. 새로운 창작자가 나와야 한국영화의 힘이 된다. 독립영화의 안정적인 유통과 상영을 지원해야 하는 게 영화 진흥이다. 하지만 현재 지원 정책(영화진흥위원회가 위탁한 사업자가 선정한 26편의 영화를 전국 35개 스크린이 의무상영한다)은 현실적이지 않다.”


-최근 외화 재개봉의 흐름이 열풍에 가깝다. 어떻게 보나.

“좋은 영화는 유통기한이 없다. 20대에 본 영화를 40대가 되어 다시 보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람을 위로하는 게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재개봉에는 마케팅비 등이 덜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직배사까지 뛰어들었다. 이제 조금 브레이크를 걸 시기가 됐다. 영화관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재개봉 영화를 일반 상영관 말고 다양성영화관에서만 상영토록 하면 어떨까. 그럼 더 안정적인 상영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재개봉 열풍은 오히려 새로운 창작자를 발굴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아쉽기도 하다.”


-한국수입배급사협회 출범을 이끈 주역 중 한 사람이다. 이후 가시적 성과가 있나.

“시사회 때 각 회사의 수입작 예고편을 묶어 상영하는 것이나 관객과 소통하는 앱 등 플랫폼을 만드는 일, 좋은 영화라면 현재 회원사 10개사가 조합처럼 공동구매하고 공동마케팅하는 방식, 또 이를 해외에도 알리는 일 등에 관해 논의 중이다. 영화를 구매할 때 필요한 표준계약서 마련 방안도 어느 정도 합의했다.”


-아트나인, 엣나인필름. ‘나인(숫자 9)’은 무슨 의미인가.

“10점 만점에 9점만 하자.”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영화. 사람들을 바꿀 수 있는 영화. 다른 생각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걸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 정상진 대표

▲1968년생 ▲중앙대 연극영화과 ▲1990년대 광고 및 홍보대행사 씨에이엔대표 역임, ‘스톰’ ‘보이런던’ 등 론칭 ▲1996년 엣나인필름 설립 ▲1998년 남산자동차극장 개관 ▲2004 년 멀티플렉스 씨너스 개관 ▲2009년 외화 수입 시작. 외화 ‘님포매니악’ ‘세 얼간이’ ‘로렐’ 등, 한국영화 ‘우리들’ ‘글로리데이’ ‘자백’ 등 배급 및 상영 ▲2017년 3월 ‘눈길’ 개봉 예정.

엔터테인먼트 윤여수 부장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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